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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테일 Oct 29. 2019

<돌직구>와 배려의 상관관계

  간혹 SNS를 하다 보면, <돌직구>를 날려준다는 말을 본다.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친하든 친하지 않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해 준다는 그 말은 이따금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이 굉장히 <무례> 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 말다툼을 벌이면 그 글을 쓴 사람은 <돌직구 날린다고 했는데>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그렇게 인터넷 인연이 하나 끊어진다.


<언어>는 <블록 놀이>

  <언어>는 단순한 정보뿐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며, 개별의 어휘가 모여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 같은 말이 주어진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의 <나 안 먹을래>란 말을 들어보자. 단어의 조합만으로는 <식사를 하지 않겠다>라는 거부 의사만이 드러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 가운데 이따금, 이것은 <불만>을 표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밥을 먹기 전에 당했던 일이 썩 유쾌하지 않았거나. 만일 어린아이들이 아닌 어른이 <나 안 먹을래>라고 하면, 위의 의미에 덧붙여 <살 빼는 중이구나>나 <속이 안 좋구나>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나 안 먹는다고!>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 주어지는 정보는 같지만, 감정적으로 상당히 격해져 있다는 사실이 확 드러난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은 단순히 <말조심해라>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같은 말이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박사 과정을 밟으며 많은 논문을 쓰는 나는 이것들을 <블록 놀이>에 비유하곤 한다. 겉보기에는 정육면체이지만 해체하면 완벽하게 같은 정삼 각뿔 두 개가 합쳐진 것일 수도 있고, 작은 정육면체 여덟 개가 모여 커다란 정육면체를 이룬 것일 수도 있다. 또 무의미한 블록들이 모여 커다란 성이나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고, 그 블록들을 해체하여 내가 원하는 다른 모양을 만들 수도 있다. 블록 하나만으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않듯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언어>에 속한 작은 자원들을 수시로 조립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인간관계, 더 나아가 사회생활과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돌직구>에 <배려>의 블록은 필요 없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돌직구>라는 표현을 다시금 살펴보면, 참 재미있어진다.

  <돌직구>는 평소 사용하던 미사여구나 우회적인 표현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상대에게 전달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설령 <이제 운동 좀 하자>라는 말이 <살 좀 빼야겠다>라는 말의 우회표현이라고 하면, 후자의 말을 그대로 상대의 귀에 꽂아 넣는 것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SNS의 <돌직구>는 <무례함>이라는 단어와 동일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우회적인 표현이나 미사여구가 빠지면 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쿠션>을 놓는다는 식으로 비유한다. 의자에 앉을 때 쿠션이 없으면 엉덩이가 아픈 것처럼 말에 <쿠션>이 빠지면 말이 다소 거칠게 들릴 수밖에 없다. 대신, 쿠션이 없으면 그 의자의 촉감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듯, 언어에서 <쿠션>이 빠지면 그 말의 의도와 의미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쿠션>이 빠진다고 <배려>가 빠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말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단어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SNS의 <돌직구>는 곧 <배려 없음>으로 통한다. 욕을 하거나 비하 발언을 하는 건 예삿일이고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질 않는다. <살 좀 빼야겠다>라는 말을 <돼지 같네>라고 말하거나, <욕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입이 걸레 같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이러한 배려 없는 <돌직구>가 도리어 흔하지 않은 예시일 테지만, 그 영향이 너무나도 크기에 머리에 각인되어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본 <배려 없는 돌직구>는 대 여섯 명 정도이다).


<돌직구>에는 <배려> 블록이 필요하다

  <돌직구>는 <배려 없음>과 동일 표현이 아니다. 도리어, <돌직구>이므로 배려를 더 잘 챙겨야 한다.

  이따금 미사여구나 우회적인 표현이 상대를 배려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표현적 방식이 배려의 전부라고 생각한 일부 사람들의 생각이 배려 없는 <돌직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배려>는 표현이 아닌 어휘의 선택으로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드신다>와 <쳐 먹는다>의 사이에는 <먹는다>라는 최소한의 배려가 담긴 단어가 있고, <힘이 험하다>와 <입이 걸레 같네>의 사이에는 <욕을 많이 한다>라는 중립적인 단어가 있다. 언어생활의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임에도, 이것을 지키지 않아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어쩌면, 익명성이 보장되고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이라는 환경 특성상, 즉 특수한 환경 및 문맥에서만 나올 수 있는 언어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런 표현을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단어는 인터넷을 떠나 현실로 나온다 해도 크게 지탄을 받거나 지적을 받을 테니 말이다. <배려 없는 돌직구>는 말하는 사람의 품격조차도 큰 폭으로 떨군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뒤늦게 <돌직구라고 했는데>라며 화를 내어봤자, <아 그렇습니까>하고 넘어가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블록을 모아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도 자신이며, 그 모양을 제시하는 것도 자신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설령 평가를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어서 비로소 변명을 한다 하더라도 평가가 뒤집힐 일은 많지 않다. 이러나저러나 그 블록을 선택하여 모양을 만들어 낸 건 의심할 것 없는 자기 자신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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