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아는 사람들을 대체로 아는 터라 주소록이 연동되어 보이던 말던 큰 상관은 없어서 놔두려고 했는데, 같은 사람이 다른 관계로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가 문제가 되었다.
내 폰으로 누나들한테 전화가 오면 "민환 큰누나", "민환 작은누나"라고 아내가 저장한 이름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누나들한테 오는 전화야 3인칭 느낌이지만 그러려니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하면 '시어머니'라고 떴다.
처음 전화를 받은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남편 엄마'의 전화를 받는 며느리의 기분을 상상하게 되었다.
바로 주소록 연동을 해제했다.
(스마트폰은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스마트워치에는 아직도 '시어머니'라고 뜬다. 해결 방법을 모르겠다.)
생각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남편', '아들', '아빠'의 입장에 익숙해져 있지만 말을 할 때, 또는 상대방을 대할 때 잠시나마 '아내', '부모', '자식' 입장에서 이 대화나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때는 어떤 선배, 어떤 직장 상사가 되어야 할지 자주 고민하곤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선배나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떠올려 본 다음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차근차근 하나둘 모두 가르쳐 줄 수 있는 선배가 좋을 수도 있고, 묵묵히 스스로 일을 해나가며 성장하기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상사를 더 필요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내가 그랬으면 하는 사람이 모습이 있다면 따라 하기도 어렵지 않고, 적어도 나와 비슷한 스타일의 후배라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다.
아들로서 '시어머니'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나와 엄마,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까지 함께 생각해가며 통화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이다.
언젠가는 스마트워치가 정신을 차리면 이런 현상은 사라지겠지만, 그때가 오더라도 나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함께 고려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은 유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