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환 Sep 02. 2020

'시험 감독관'은 처음이라

바이러스 속에서 치러진 자격증 시험 간접 체험기

자격증 시험 감독관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고 응모했었는데,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시험은 많이 봤었지만, 감독한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직업이 선생님이 아닌 이상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해 보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긴장이 되었다. 혹시 늦게 도착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토요일, 평소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가야 했기에 조금 일찍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깬 시간이 새벽 3시 반이었다.

다시 잠들었다가 늦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아 이것저것 하며 아침을 맞았다.




시험장으로 사용될 중학교 앞에 도착했다.

시험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는데, 교문 앞에 벌써 수험용 사인펜을 파는 아주머니가 한분 나와계셨다.

부지런함에 놀라기보다는, 유명 자격시험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 궁금해졌다.


"시험 보러 오셨어요? 감독하러 오셨어요?"

"감독하러요."


시험이 치러지는 학교에 갔더니 교문에서 경비를 담당하시는 분으로 보이는 분께서 물어오셨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다.

앞으로도 평생 답해볼 수 있을지 모를 대답을 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로 인해 몇 차례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다시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험이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손 소독제를 뿌려주고, 체온을 측정하는 진행요원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던 손 소독을 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석부에 서명을 하고 담당 시험장을 확인했다.

내 이름 옆에 시험장 호실과 함께 '부 감독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부 감독관, 이렇데 두 명이 들어가서 감독을 하는 것 같았다.

'정 감독관'이 아니라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각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이른 시간이었는데 시험장에는 이미 2/3 정도 자리가 차 있었다.

마무리 공부를 하려는 듯 책상 위에는 시험 관련 도서와 노트들이 올려져 있었다.

간간히 내가 공부할 때 보던 책도 눈에 띄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같은 자격증 시험, 시험을 치르는 사람에서 시험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가며 유리창을 열었다.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환기를 위해 유리창을 열어둔 상태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른 감독관 선생님이 수험생들에게 여러 가지 공지를 시작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발열이나 기침 등 의심 증상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세요. 격리된 다른 시험장에서 시험을 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잠시 후 시험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교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시험이 시작되자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실은 몇 년 전 아이가 입학할 때 들어가 본 적이 있었지만, 중학교 교실은 중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앞에 커다란 TV가 있고, 천장에 시스템 에어컨이 있는 것 외에는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칠판 옆에는 한 번도 시행해 보지 못했을 수업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이라니. 왠지 모를 씁쓸함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 시험지 제출하시고 나가셔도 됩니다."


감독관 선생님이 제출 시작 시간이 되자 다시 한번 공지를 했다.

내가 시험 볼 때에는 포기한 듯 대충 답을 쓰고 30분 만에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한 명도 나가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

힐끗 쳐다보니 주관식 문제 중 어떤 문제는 대부분 같은 답을 썼는데, 어떤 문제는 답이 제각각이었다.

역시나 주관식 문제는 어려운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도 주관식 문제는 거의 답을 적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도 합격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았다.


시험 종료 시간을 조금 남기고 마지막 사람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자 나와 또 다른 감독관 선생님은 교실 뒷정리를 하고 시험 본부로 이동했다.

지급받은 라텍스 장갑을 벗으니 손이 땀에 불어 있었다.

이 장갑을 몇 날 며칠 하루 종일 끼고 있을 의료인들이나 코로나 관계 종사자 분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마스크로 인해 여기저기 얼굴이 까지거나 퉁퉁 불어 있는 간호사들의 손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데, 고무장갑을 착용한 지 세 시간도 안된 내 손 상태를 보니 안타까운 기분이 더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차례 연기되었다가 다시 시작된 시험.

약간의 용돈과 경험을 얻고자 해 본 시험 감독관.

긴장도 되고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전염병이 일상이 된 사회의 모습을 평소보다 더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책상 서랍 속 '주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