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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Dec 13. 2020

여기 순대국밥 하나랑 '소주 반 병' 주세요.

따뜻한 음식과 정겨운 대화가 생각나는 저녁

지인을 한 명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작년 이맘때 1.5개월 정도의 짧은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던 프리랜서였다. 코로나 상황이 좀 좋아지면 만나기로 하면서 약속을 계속 미뤘었는데, 그게 봄이었으니 반년도 더 된 것 같다. 코로나를 기준으로 하면 앞으로도 한참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신경은 쓰이니) 맛없어도 손님 없는 집 찾아서 한번 봅시다."


나는 6시에 일이 끝나고, 그는 영등포에 있는 사무실에서 7시에 퇴근이라고 했다. 내가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 영등포로 가기로 했다. 여기저기 식당을 검색하다가 오래전에 집에서 저녁을 먹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싶을 때 혼밥을 하거나, 근처 친구들을 만날 때 종종 들렸던 순대국밥집이 생각나 식당 지도를 보냈다.


"아 이 집이요? 저도 가보고 싶었는데,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순대국밥을 싫어해서 못 가봤어요. 거기서 보시죠."


식당 앞에 도착했더니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1960년대에 개업했다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식당을 다녔던 당시엔 '영등포시장 순대국밥집'이라고 하면 친구들끼리 다 알아들기 때문에 상호명은 신경 안 썼던 것 같다. 식당 2개가 나란히 붙어서 장사를 했는데, 두 집 모두 하루 종일 커다란 솥에 끓인 순대국밥이 주 메뉴였다. 나는 주로 오른쪽 식당을 많이 이용했던 것 같다.


1990년대엔 순대국밥이 3천 원, 소주가 2천 원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이 소주를 반 병씩도 팔았다.

피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혼자서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한 손님들이 많이 들렸는데, 당시엔 소주 도수가 지금보다 훨씬 높을 때라 한 병을 다 마시기에는 부담되고, 딱 소주 3~4잔 정도 반주로 먹었으면 좋겠다 싶은 손님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 같다.

소주 반 병을 달라고 하면 눈대중으로 절반쯤 담겼다고 보이는 소주병을 내어주거나 새 소주병을 가져다주었다. 새 술병의 경우 마찬가지로 눈대중으로 절반쯤 남았다고 싶을 때 계산하고 나가면 반 병 값인 천 원만 받았다.

혼밥을 할만한 곳이 패스트푸드점 정도였던 시절이라 햄버거 세트 4~5천 원에 먹느니, 추운 겨울이면 이 집에서 4천 원을 내고 따끈한 국밥에 소주 반 병 정도로 몸을 데우고 집에 들어가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25년도 더 된 기억인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인지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많지 않았다. 머리고기 시켰더니 순대국밥 국물이 함께 나왔다. 나온 안주에 소주 한두병 비우고는 술국을 추가로 시켜 먹었다. 즐겨먹던 순대국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기본 국물과 술국이 있어서 예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1년 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곳은 을지로여서 오래된 맛집이 참 많았었다. 점심은 물론이고 일이 끝난 퇴근길에도 근처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술 한잔 하고 헤어지곤 했다. 그때 다녔던 식당들 중 민물매운탕과 과메기를 팔던 집은 아직도 군침이 돌만큼 기억이 난다. 마트에서 파는 과메기가 있지만 식구들이 아무도 먹지 않기에 사지 못한다. 나에겐 1년에 한두 번 제철 때 식성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과메기다.


"저는 그때 먹은 과메기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아직 못 먹었어요."

"저도 그 집은 자꾸 생각나요. 언제 한번 같이 들리시죠."


좋은 음식과 함께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나누고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가족이야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당분간 어려워질 것 같다.

소주 반 병 씩 마셨던 식당의 추억, 1년 전 함께 했던 프로젝트, 그간 서로 지내온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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