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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Dec 12. 2021

'오늘은 북쪽으로 가볼까?'

멀어져 봐야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

1. 행선지
  1) 서해, 2) 남해, 3) 동해

2. 여행 방식
  1) 어느 한 곳 숙소 잡고 머무는 여행
  2) 정처 없이 매일 이동하는 여행


여행 계획을 세우기 전 직장 동료에게,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 결정장애가 있어서 못 고를 것 같으니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결론은 3) 동해, 1) 어느 한 곳 숙소를 잡고 머무는 여행.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며칠 간의 시간이다.

딱히 어디를 가거나 하고 싶은 것 없이 그날그날 발길 따라 움직이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고 싶을 때 잔다.


'오늘은 북쪽으로 가볼까?'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으며 생각했다.

요 며칠 강릉 송정 쪽에 머물면서, 바다는 남쪽인 안목까지만 갔다가 다시 올라오곤 했다.

송정에서 북쪽으로 걸어올라 가면 경문을 지나 경포까지 갈 수 있다.


평소에는 하루 일정이 미리 정해진다.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하면 그만이지만, 외근이 있는 날이면 몇 시까지 구체적으로 어느 건물 몇 층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고, 이후에는 또 어느 곳으로 가야 한다는 등, 시간이나 동선이 보통은 날이 시작하기 전에 결정된다.


아침에 가고 싶은 방향만 정하고 길을 나설 수 있다니!

직장인,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평소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오늘은 '북쪽'으로, 혹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은 방향만 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

빨리 걷거나 늦게 걷거나 내 마음이고,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일부러 TV를 켜고 나왔다.

숙소가 혼자 외로울 것 같았다.

그보다는 다시 돌아왔을 때 아무런 기척이 없으면 적막할 것 같았다.

이미 며칠 숙소에 도착하면 그런 느낌이었다.




"OO가 이상해. 이리 와서 좀 봐."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가보니 강아지가 유난히 불안해하고 몸을 떨었다.

왠지 한동안 제 '단짝'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처음 입양했을 때는 혼자서도 집에 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 처가에서 맡겼었는데, 가족과 오랜 시간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봐서인지, 이후에 가끔 가족들이 주섬주섬 외출 준비를 하면 낑낑대고 떠는 등 분리불안 증상을 보였다.

나와 떨어져 있을 때 가장 많은 불안감을 느낀다.


"며칠만 있으면 돌아올 거야."


안고 달래주었더니 조금은 괜찮아졌다.


집을 나서기 전 아내와도 가벼운 포옹을 하며 말했다.


"잘 다녀올게."




바다로 나와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제까지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바다를 보며 소나무 숲을 거닐어야 한다.


낯선 바다를 보며 낯선 길을 낯선 노래 리스트를 랜덤으로 들으며 걸었다.

바뀌는 노래 분위기에 따라 마음이 평온해졌다가 즐거워졌다가 슬퍼졌다가 한다.


이렇게 낯선 곳에 있는데도, 떠올려지는 생각들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하고 있는 업무들, 아픈 동료들, 내가 챙겨야 하는 사람들...

조직 분위기를 망치는 직원을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 부서장은 마음이 여려서 직원을 잘 내치지 못하는데, 잠깐이라도 인사권을 달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되려면 조직을 개편해야 하는데, 조직도나 한번 짜 볼까?...


헤어지고 나서 그 아픔의 강도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는 연인들처럼.

멀어져 봐야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낯선 곳에서 계속 익숙한 사람들과의 일들만 떠올려지는 것을 보면...




손님이 나 밖에 없었는데, 테이블이 어느새 다 찼다.

슬슬 커피를 마저 마시고, 다시 좀 더 북쪽으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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