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면 각본상 받는다에 건다”
“난 감독상도 가능할 것 같음"
단톡 방이 뜨겁다. 때는 2020년 2월 9일,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4관왕을 휩쓸던 그 날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조용하던 사무실에 탄성이 터졌고(전부 아닌 척하지만 실시간 라이브를 보고 있었다), 단톡 방에서 내기하던 친구들은 그 누구도 결과를 맞히지 못했지만 기뻐했다. 모두가 자축하며 한껏 ‘국뽕’에 취해있던 순간,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과감한 열기 앞에서 “그런데 왜 받았어? 왤까?”라고 감히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한참이 지나고서였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도 ‘가난 포르노’라며 혹평 아닌 혹평(?)을 하고 다녔던 나는, 천천히 영화의 성공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 기생충의 숨겨진 장르. 히어로물!?
‘기생충’의 정식 장르는 드라마로 표기되어 있지만, 나는 <엉성한 히어로 4명의 탐험 물>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 기택 네 가족은 모두 한 분야에서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심지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어렵다!) 이것이 바로 히어로가 지닌 비범한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히어로들은 얼렁뚱땅 계획을 세우고, 나름 치밀하게 그것을 이행하고, 악당의 본거지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장애물을 해치우며 미션을 성공해내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며 ‘히어로물’처럼 진짜로 보스 빌런이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악당(동익)이 의외로 손쉽게 물리쳐지고, 진짜 ‘보스몹’을 나왔을 때 긴장은 배가 된다. ‘기생충’에서 근세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동안 기택은 악당들은 모두 자신의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라? 근세는 자신(반지하)보다도 더 깊은 아래, 진짜 지하에 존재한다. 과연 선과 악은 어떻게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우리가 누군가를 악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관객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현실적인 배경에 참으로 판타지스러운 서사. 이 두 가지의 믹스 앤 매치가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 관음 하기 좋은 캐릭터, 기택과 동익
또 하나 영화의 성공 요인은 기택과 동익이 관음 하기 좋은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기택은 일반 서민에 비해 과하게 가난하고, 동익은 과하게 부유하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는 대부분, 그리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중산층이라고 가정하면 기택과 동익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다. 때문에 관객은 둘 중 누구라도 비판할 자유가 있다. “기택이가 너무 찌질하네. 왜 저렇게 음침해?” “동익이 진짜 가식적이다. 하여튼 부자들이란” 본인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평하고 재단할 수 있는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다 쉽게 즐기도록 한다.
# 기생충 시상에 한류 지분율은 몇% 일까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 재밌는 건 알겠어.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갑자기 상을!?” 그 답은 영화 외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K-POP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진정한 ‘한류’를 일으키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류가 퍼졌다면, 이제는 영미권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된 것. 대중성이 높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를 후보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열과 성을 다해 뛰었던 기생충 마케팅 팀의 열정도 있겠으나 바뀐 글로벌 분위기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작은 아시안 국가가 아니라, K-POP 아티스트를 키워낸 문화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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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너무 시니컬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분석해 보고서야 기생충의 성공이 납득이 갔다. 영화 내적으로 흥미로운 설정과 캐릭터, 외적으로 열정적인 마케팅과 한류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기생충이 K-MOVIE라는 또 하나의 포문을 열었으니 전 세계에 또 한 번의 한류가 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