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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시인 Feb 10. 2016

티끌 Project #3
5월의 어느 날

예술의 전당에서 일어나는 일들

바람이 산들산들 내 마음을 두드리면, 수줍은 첫사랑의 설렘이 응답한다.

우면산 자락의 영롱한 기운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눈으로는 낯선 예술의 전당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에 지친 우리와 같은 미생에게는 짬을 내어, 고요한 평화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예술의 전당에 와서 봄바람이 주는 설렘을 기억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느 좋은 5월의 봄날, 마주 보는 두 곳의 전시회는 각기 다른 예술의 꽃이 한창 만개하고 있다. 정면으로 보았을 때, 좌측에는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 전”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우측에는 대한민국 만화 장인 “허영만 전”이 손짓한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전시회를 이렇게 좋은 봄날, 일거양득 즐길 수 있는 기쁨은 첫사랑의 기억만큼이나 애틋하고 흔치 않은 경험이다.


나도 그릴 수 있는 그림 vs 누구나 그리기를 바라는 그림

미술책에서 추상 표현주의 작품이라며 소개하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접했을 때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었다. 칸딘스키 그리고 차가운 추상.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폐해이자 수혜인 점은 시험을 위해 외웠던 이토록 얇은 지식을 여전히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암기하고 있다는 신기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왜 차가운 추상인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왜 항상 칸딘스키는 나의 얇은 지식 속에서 몬드리안과 함께 짝을 지어  튀어나오는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몬드리안, 칸딘스키와는 달리,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사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각오는 하셨겠지만, 처음 접하게 되는 추상 표현주의의 작품은 미술시간에 보았던 그 느낌 그대로 사실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형태는 사라지고 단조로운 색감과 구도만 표현되어 거대한 면 속에 일괄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작품은 여러 가지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데, 결국 내뱉는 한마디는 “뭐야,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특히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후기로 가면 갈수록 형태는 사라지고 훨씬 더 단순해진 색감만이 남게 되기 때문에, 현란하고 신기한 회화 기법으로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인상주의 그림이나, 너무나 아름답고 정교한 그림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숱한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의 작품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대중의 탄식과 실소를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처음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게 되는 압도적인 화두가 작품과 나 사이를 진중하게 만든다.


나의 작품과 감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침묵뿐이다.

20세기 초반은 우울한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그로 인해 발생된 대공황, 죽음과 현실이 가장 가깝게 조우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의식 또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성이 중시되던 중세시대를 지나, 인성의 시대였던 르네상스를 통과하고,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 시기에 마침내 머물게 되었을 때, 이미 인간에게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느끼기에 보지 말아야 할 부정의 몽타주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가지고 있는 다른 역할에 대하여 시대의 천재들은 주목하게 된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마크 로스코였으며, 그는 예술을 통해 화해와 통합의 위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찬사를 연발하는 예술의 전당 도슨트의 설명으로는 단 한마디로 ‘위대한 천재’라고 했다. 왜냐하면,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의 감상 기법까지 모든 가이드라인을 전시회에 적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게 했기 때문이란다. 맞다. 과연 그랬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색감들의 나열이었지만, 아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 속에서는 온갖 상념들이 발현되었다. 처음에는 ‘왜 내가 이걸 보고 있어야 하지’라는 기초적인 물음부터, ‘이 색은  온화하다’라는 기술적인 물음, 그리고 이 색을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내 기억 저편의 은은한 색깔까지… 그러다 다시 저절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념무상의 세계까지…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하며, 순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게 나를 도와준다. 내가 경험한 그대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마크 로스코는 감상자들을 배려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원했던 최종적인 목표는 예술로 인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에 반하여 세상의 유토피아를 그림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모순과 갈등의 시대와 삶, 그의 작품 앞에서 겸허해진다 

마크 로스코는 그랬다.  도식화되어 있는 인간의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모순, 갈등 등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다. 가장 신성해야 할 종교마저도 여러 갈래, 종파로 나뉘어 서로 간의 욕심과 갈등으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의식의 세계를 단 하나의 색감, 구도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그리고 이런 단순함 속에서 미를 찾는 것이 아닌, 의를 찾고자 했다.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린 그의 작품에 겸허히 존중의 마음을  놓아두었다. 공교롭게도, 스티브 잡스가 가장 사랑한 작가이자, 삼성전자가 협찬하는 이번 전시회에 LG G4 체험존이 함께한다는 것 또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정신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전시회를 보면, 그의 정신이 더욱 새삼스럽게 빛나는 것 같다.


만화로 만나는 또 다른 일상의 치열함

이제 고개를 들고 우측으로 가보자. 그곳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 만화의 거장, 시대를 뛰어넘는 장인, 허영만이 들려주는 현재의 메시지는 좌측에서 보았던 마크 로스코의 메시지와는 또 다른 일상의 치열함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을 경험할 수 없지만,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소중한 순수의 경험은 살아가는 밑바탕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준다. 미술 교과서를 보면 칭찬을 하는데 만화를 보면 혼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 속에서는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있어서 사회의 정의를 깨우치는 데에 도움을 주고,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굉장한 미인을 발견하여 나의 심미안을 넓혀주고, 향후, 나의 배우자를 만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유독 만화는 어른들에게 미움의 대상이었다



현실의 메시지가 부르는 감동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내가, 만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가진 열등감의 긍정적 표출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펼쳐진 무궁 무쌍한 이야기들이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리워할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은 만화책이 아닐까? 항상 궁금했다. 만화가의 삶은 어떨까? 어떻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신명 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그 모든 답의 힌트를 얻고자 한다면, 이번 창작의 비밀 허영만 전은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허영만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현실의 메시지는 도박, 음식, 야구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서  구체화시키고, 이를 통해 감동을 전해준다. 마크 로스코 전이 힘든 현실을 이겨내기 끊임없이 비워내야 하는 명상의 과정이라면, 허영만 전은 힘든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채워나가는 상상의 과정인 듯하다. 


비움... 그리고 채움

순수함이 채워지는 허영만 전은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희망을 준다.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들의 생활을 추론해 나가다 보면, 한걸음 한걸음을 떼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즐겁고 유쾌하다. 허영만 전의 마지막은 누구나 만화가가 되어 보라고 추천한다. 작은 A4용지에 그림을 그리면 나만의 작품 공간이 생긴다. 마크 로스코의 마지막은 모든 것을 비워내라고 명상할 수 있는 예배당을 두었는데, 이렇게 상반된 두 전시가 결국에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더 잘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하는 것이니,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세상의 진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일맥상통한가 보다. 


그래서  첫사랑을 만난 것 마냥,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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