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계절

기자 3

by 진현

여름이었다. 쾨쾨한 냄새와 누런 벽지를 처음 마주했던 때가.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 나는 더위로 악명 높은 곳에서, 하필 일 년 중 제일 덥다는 날, 산 중턱으로 ‘쪽방촌’ 취재를 나갔다. 사실 너무 클리셰적인 취재이다. 해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쯤 반복적으로 하는, 특히나 신입 기자들이 전문으로 맡는 연례행사에 가까웠고, 기자였던 시간보다 뉴스 소비자로서의 세월이 길었던 나는 그런 류의 기사에 이골이 나 있었다.


“선배, 이제 이런 기사는 너무 식상하지 않나요? 매번 나오는 건데, 다른 아이템으로 제가 찾아볼까요?”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렇다면 너는 쪽방촌”이라는 선배의 지시에 따라 차를 몰았다. 분명 저 선배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기자실 의자에 반쯤 누워 취재가 끝날 무렵을 귀신같이 알고 “너 지금 어디야? 그래서 뭐 했어?”라고 전화할 것이 뻔했다. 이가 갈렸지만 어쩌랴. 나는 터지는 울화통에 차의 에어컨을 한 단계 높이며 핸들을 몰았다. 쪽방촌에 사는 분들을 도와주는 단체를 먼저 방문해 관계자와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관계자의 뒤를 따라 쪽방촌으로 걸어갔다.


‘씨발, 더워’


찌르는 듯한 햇빛에 음소거로 욕했다. 평소 ‘이 정도 더위는 아무렇지도 않지’하며 덥부심을 부려왔던 나인데, 그날은 욕지거리가 나올 만큼 더웠다. 얼른 차로 돌아가 시동을 켜놓고 누워있고 싶었다. 분명히 아스팔트가 녹을 거라고, 그러다가 내 차 타이어까지 녹으면 집에는 어떻게 가지라는 등 별별 생각이 들다가 나중엔 아무 생각도 없이 걷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걸어가니 한국전쟁까지 견딘 거 아닐까 싶은 낡은 양옥이 한 채 있었다. 대낮이었지만 햇빛이 안쪽까지 들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복도 안으로 6개의 방문이 보였다. ‘낮에도 귀신이 나올까?’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관계자의 뒤에 숨었다.


관계자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나를 제일 바깥방으로 안내했다. 아니 안내할 것도 없었다. 이미 문은 활짝 열려 있었기에. 제일 볕이 잘 들어오는 방인 것 같았다. 나는 ‘다행히 귀신은 안 나오겠군’이라며 나는 툇마루에 조심히 앉아 그 방 주인인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안으로 들어오란 으레 할 법한 예의 섞인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방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것이 서로에게 차릴 수 있는 최대의 예의였다.


나는 문 앞에 앉아 할아버지의 집을 구경했다. 성인 두 명이 누우면 끝나는 공간, 햇빛이 고약하게 침입해 들어오는 조그마한 창(하지만 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작동은 되는 건가 의심스러운 구형 냉장고, 여기서 얼마나 사셨을까 싶은 자질구레한 세간살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누우런 벽지까지. 집안을 덮고 있던 쾨쾨한 냄새는 환기를 하지 않아서 나는 냄새라기보다는 각종 세간살이에 세월이 배 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오기 전 세입자, 그 전 세입자, 그 전전 세입자의 땀 혹은 눈물이 밴 것이다. 그 집은 살기 위해 환기를 너무나 열심히 하는 집이었으나 겹겹이 덮인 여름을 이기기엔 엿부족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쪽방촌에서 여름을 나는 고충을 토로했고 나는 그걸 수첩에 받아 적었고 종종 관계자가 거들었으며 너무 더울 때는 봉사 단체에서 나눠주는 얼린 물병을 안고 자면 된다는 나름의 꿀팁까지 선사하며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여름인데 따로 드시고 싶으신 음식은 없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시원한 물김치 한 사발 먹고 싶다고 했다. 냉장고는 있지만 작동이 시원치 않아 김치가 금방 익어버리고 쉬기 일쑤라고.


그렇게 클리셰적인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관계자와 안면이 있는 앞니 없는 아저씨와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앞니 사이로 바람이 빠져 뭐라고 말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관계자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일 라면하고 얼음물 들어와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소통은 어쩌면 세월의 힘이 아닌가 생각하며, 다시 단체 사무실로 돌아와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얼마 가지 않아 앞니 아저씨와 그의 친구들이 들어와 테이블을 잡고 수다를 시작하셨다. 사실 사무실은 사무실이 아니라 쪽방촌 사람들이 에어컨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돌아와 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에어컨을 켰다. 모든 것이 너무 쉽다. 버튼을 누른다.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왜 어느 누구에겐 세상살이가 이토록 한없이 어렵고, 왜 어느 누구에겐 한없이 쉬울까? 나는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 에어컨 전원을 껐다. 나는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일단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써봤다.


그 집에선 정말 뜨거운 바람이 나왔습니다! 기레기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요? 여러분, 에어컨을 끄고 계셔 보세요. 땀이 줄줄 나고, 쪽방촌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할아버지의 인생에 눈물이 줄줄 나고, 할아버지는 자기 인생 이야기까지 해주시는데 그럼에도 저는 할아버지의 문지방을 차마 넘을 수 없었다고요.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문을 열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그 여름이 뭐라고. 그 뜨거운 바람이 뭐라고.


나에게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아니라 앞니 아저씨의 말을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달랐을까. 냄새와 더위를 넘어 계층과 세대와 성별을 넘어 서로에게 시원한 물김치를 선물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땀으로 미끄덩거리더라도 서로의 몸을 웃으며 안아볼 수 있을까. 나는 다행히 정상적인(?) 기사를 써냈고, 이 취재가 왜 신입 기자들의 루트가 된 건지 깨달았으며, 다음에 들어왔던 내 후배에게도 똑같은 취재를 시켰다. 누군가에게 여름은 호캉스나 물놀이의 계절이거나 싱그러운 청춘의 사랑 같은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일로 카테고리가 더 추가됐다. 생존의 계절 그리고 이해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