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3
“내가 글만 알았어도 너거 할배하고 안 살았다”
할머니와 엄마, 나. 셋이 커트머리를 해서 더 똑같아진 모습으로 거실 바닥에 누워있던 그 순간이었다. 점심을 거하게 먹어 배를 통통 치며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툭하고 균열을 냈다. 할머니의 말은 단호하지만 서글프게 들렸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학교를 다닌 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가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는 같이 TV를 봤고, 장을 보고 화투를 쳤다. 할머니의 삶은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한 번은 더운 여름날 밖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신 할머니가 맥을 못 추고 겨우겨우 물에 밥을 말아먹고 있는 걸 봤다. 할머니는 지독한 더위에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돌아다녔다고 했다. 이를 생각하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할매, 식당 드가서 뭐라도 하나 사묵지! 왜 이제까지 암것도 못 뭇노”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며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할머니는 이내 얼굴을 붉히고는 내게 큰소리로 역정을 내셨다.
“뭐라 쓰여있는지 알아야 묵제! 뭐 파는지도 모르는데 우예 드가노…”
뒷말을 흐리는 할머니의 말을 듣는 그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워져 정적이 흘렀다. 나는 할머니의 불편을 실감하지 못했다는 것이 민망했고 할머니는 나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덜컥 들킨 것 같아 입을 닫았다.
“여 뭐 하는 교? 제일 맛있는 걸로다가 하나 주이소 하면 되지! 와 그걸 못 하노”
부끄러움에 민망해져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글을 못 읽는 할머니가 아니라 숫기 없는 할머니의 성격을 꼬집어가면서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할머니의 시야로 보는 세상은 어땠을까. 아이들의 숙제를 봐줄 수도, 식당의 메뉴도, 자신의 집 주소도 읽을 수 없는 세상이라니. 같이 TV를 보았어도 할머니는 화면 속의 정보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 손녀와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던 것이 화투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른 방법으로 불편함을 이겨냈다. 시험을 코앞에 둔 이들이 모르면 통째로 외우는 것처럼 외우기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할머닌 금방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버렸다.
“할매는 우째 그걸 다 외우노? 내는 봐도 못 외우겠는데”
“내가 글은 못 읽어도 한번 들은 거는 절대로 아 이자뿐다”
할머니는 엄청난 집중력과 암기력으로 불경을 외웠고, 스님들이 “외워 볼 보살님?”이라고 이야기하면 손을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대단하게 살아나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딱 하나 할아버지의 일만큼은 할머니는 꼼짝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무슨 돼도 안 되는 말을 하든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든 할머니는 침묵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가 일 나갔다 귀가가 조금 늦어진 할머니를 향해 빗자루를 붕붕 돌리면서 다가왔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휘두르는 빗자루를 감당해야 했다고 했다. 그 시절 웅크렸던 것만큼이나 굽어진 어깨를 보면서 어린 나는 어떤 말을 덧붙여야 하는지 몰랐다. 단지 넋두리할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듣고만 있었다. 지금이 되어서야 그녀의 삶을 짐작해 보자면 그녀의 모름은 약점이 되었고 어느 관계에 있어서나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은 티 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할머니에게 지성의 상징이었고, 그런 지성을 갖추었다면 맨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 할아버지와 애초에 만날 일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만난다 할지라도 진즉에 갈라섰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일정 부분 동의했다. 우리 할머니가 소설 ‘삶의 한가운데’ 속 니나를 만날 수 있었다면 할머니는 다른 꿈을 꾸었을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왜 우리가 나란히 누워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그 순간 그런 말을 했을까? 이보다 더 나은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님 행복의 순간까지 도달하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해 줄 수 있었을 무언가를 머릿속에서 찾고 있었던 것일까. 이에 질세라 엄마가 한소리 거들었다.
“내는 대학만 졸업했으면 ㅇㅇ아빠하고 안 살았다”
우리 엄마는 고등학교까지 꽤나 성적이 좋았던 학생이었다. 고교평준화가 되기 전 그 동네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3이 되면서 엄마는 손에서 책을 놓았다고 했다. 굳이 공부할 필요가 무엇인가, 오빠들 대학 등록금도 못 내서 아등바등하는데 자신도 대학에 가겠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어서 포기했다. 그 후 좋아하던 책도 읽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고 지금의 현실이 달라지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고 엄마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선을 보고 지금의 아빠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하고도 엄마는 책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버릴 수는 없었던 책들은 그저 누렇게 빛바래져 갔다. 소녀 시절 열심히 읽었던 책들을 여전히 한켠에 놓아두고 3개월 만난 아빠하고 동등하게 살기 위해 지독한 싸움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생기지 않는 아이 때문에 시댁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그것이 오롯이 여자만이 겪어야 할 비난이 아님을 항변했다. 엄마가 쏟아지는 독설을 맞았듯 책장 속 토마스 하디의 ‘테스’도 누렇게 변해갈 때까지 세월을 맞았다. 책을 펼치면 펼치는 페이지마다 책벌레가 나올 것 같았지만 엄마는 그것을 끝끝내 지켜냈고 나에게 엄마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이라고 자랑했다.
“근데 이거 너무 오래되지 않았어? 버려도 될 것 같은데?”
“아니, 책은 버리는 거 아냐”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는 것을 죄스러움으로 여겼던 성숙한 그녀에게 책은 시간이 지나도 간직하고 싶은, 겉으론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결코 버리지 못하는 꿈, 또는 당당한 여성의 다른 말이었다.
그녀들에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무기였다.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무기, 충만한 순간에 조금 더 일찍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 자신들은 가질 수 없었어서 간절했던 무기.
“내는 대학도 졸업했는데, 그럼 누구랑 안 살아야 되노”
엄마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제는 대학원까지 졸업하여 우리 가족 내에서 가장 가방끈이 긴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유독 날 많이 예뻐한 것 같다.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의 은은한 미소와 서울로 대학을 가고, 글을 가까이하는 직업을 가졌을 때 보였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나는 못다 이룬 꿈이자, 신화였다.
나는 그녀들이 바라던 무기를 쥐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글을 읽고 읽으며 심지어는 쓰기까지 한다. 글은 내 머리 안에서 뿌옇게 흩어져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주고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과 슬픔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원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녀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래서 쉬이 행복해졌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무기를 갖는 것과 행복을 쟁취하는 것과는 다른 결이었다. 다만 내 삶에 관해 내가 결정할 수 있으며 내가 힘들여 공부하고 일한 값으로 온전히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딸들은 종종 자신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지금 우리의 눈엔 벗어날 수 있는 고통을 계속해서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보이니 마음 아파 나오는 말임을 알지만 나는 모진 말 대신 몇 초라도 가만히 그녀들이 일으켰던 작은 균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할머니처럼 살 거고, 엄마처럼 살 거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할머니처럼 살 거고, 고된 삶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는 가치를 딸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엄마처럼 살 것이다. 그녀들은 나에게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방법을 그녀들의 삶으로 알려주었다.
나에게 그녀들은 원망의 대상도 연민의 대상도 아니다. 그녀들은 약하게 혹은 강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투쟁해 왔고 그 투쟁의 결과 지금의 나로 있게 도와준 존재들이다. 가방끈 길면 결혼 못한다는 말에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소리하노!“ 라며 성 한번 내고 나를 자랑스럽게 바라봐준 그녀들에게, 내가 끊임없이 내 존재를 탐구할 수 있도록 나만의 시간과 방을 내어주었던 그녀들에게, 그리하여 내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여성이 되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 한없는 애정과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