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코로나 19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모든 프로덕션이 스톱됐다.
쉬는 지난 4주 동안 밀린 드라마 영화들을 보고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은 드라마도 영화도 없어서 나른한 오후 책을 집어 들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놨던 책들을 모아놓고 골라가면서 몇 장씩 읽었다.
다행히 사는 집은 베란다가 있고 햇빛 좋은 오후에 창을 열고 있으면 정말 평화롭다.
책 보면서 글도 쓰고 또 그것이 질리면 또 영화 보고 드라마를 보고 낮잠도 자고
해보고 싶은 음식도 해 먹고 요즘은 정말 그야말로 내 생에 처음으로 누리는 아주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동안은 하루에 12-14시간씩 일하다 보니 집에 와서도 잠만 자고
지난 8개월 동안 주방에서 딱 한번 밥솥을 써봤으니
이 집에서 내가 활용한 것은 침대와 집이 주는 조용함과 아늑함밖에 없었다.
이런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을 누릴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
마음껏 게을러져도 누구 하나 비난하지 않고 다 같이 게으른 삶을 살아도 되는 이런 시간이 또 올가 싶다.
이런 시기에 나만의 공간인 집이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지...
특별히 속 끓이는 일 없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어서 감사하고
온전히 나의 필요로 인해 쓰이는 시간과 공간이 있어서 또한 감사했다.
다만 사선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일해 주시는 소방관님들, 간호사, 의사님들의 수고가 있어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이라 생각한다.
그들한테는 정말 마음의 빚을 진 것 같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이런 시기에 집에 있는 것과
빨리 이 사태가 진정될 수 있게 기도하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로 밤낮이 없는 삶을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 이젠 이런 무질서한 삶에서 벗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해볼까 싶어서 이 매거진을 만들었다.
오늘 픽한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중에서 나온 대사다.
되게 씁쓸한 대사인데 왠지 모르게 난 이 대사 참 좋다.
작가로 나오는 장재열(조인성)이 정신과 의사였던 지해수(공효진)에서 말하는 대사이다.
자신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글로 써버린 재열에게 지해수가 화가 나 따져 물을 때 장재열이 말한다.
“내 상처도 글로 팔아먹는데 남의 상처쯤이야"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의 가정사, 연애사가 그가 쓴 글로 드라마 대사나 캐릭터로 노출이 된다.
우린 그 글을 넘어 그 사람이 산 인생에 공감하면서 그 삶의 상처를 같이 보면서 성장해간다.
상처는 누구나 있는 법이지만 그 상처를 극복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지하는 것 같다.
쉽게 치유되지 않는 감정의 골은 정말이지 질리도록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 가운데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으며 풋내 나는 사랑의 기억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상처의 쓴 맛을 본 사람만이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사람을,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대사가 기억이 남는 이유는 내 친구 브런치 작가를 도전하면서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해야겠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그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뻔히 알면서
나는 그 상처를 글로 승화하라고 했다. 정말 지독하고 잔인한 말이었다.
근데 그때 나도 모르게 이 대사가 생각이 났다. 나도 내 상처 들먹이면서 글을 쓰는데 남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나의 상처에 대해서는 함부로 쓸 수 있어도 남의 상처는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것이다.
정말 인간은 이기적이고 모순적이며 추악하기도 하고 또 아름답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노희경 작가님의 글도 드라마도 좋아한다.
그의 글에서는 그냥 겉도는 캐릭터가 없다.
악역이라도 하나같이 말이 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1차원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치밀하게 디자인됐는데도 인위적이지 않고 또 인간미가 살아있어
결국에는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는구나를 인정하게 만든다.
어떤 대사들이 왜 좋은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다.
"그들의 사는 세상"이란 드라마에서도 처음에 봤을 때에는 송혜교의 캐릭터 주준영에 더 감정이입이 됐었는데
두 번 세 번 볼 때부터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비겁했던 현빈의 캐릭터 정지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됐었다.
이렇듯 한 번 두 번 보고 나면 더 할 말이 많아지고 더 생각할 거리들이 늘어나는 게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다.
앞으로 이 매거진을 통해서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들과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그분의 드라마를 문학이라고도 한다.
정말 공감 가는 표현이고 수식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런 작가로 남아있다.
어쩌면 이 매거진은 그분의 드라마에 바치는 내 헌정글 같을 거일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분의 드라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지금 이런 시기에 한번 써보려고 한다.
그분과 작업해볼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성공한 인생일 것 같다.
아직도 한국 드라마 현장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가끔 내가 다시 한국에 들어가 이분과 작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내 실력을 좀 키우고 싶다. 내가 그분을 당당히 일로 마주하는 그날까지 지금은 일단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를 한 편 한 편 보면서 대사, 캐릭터, 인생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볼 생각이다.
앞으로도 종종 오셔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면 참 행복할 것 같다.
잘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