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가족이란 존재가 누구한테나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건 아니다.

by 금이양

노희경 작가님이 쓴 "디어 마이 프렌즈"는 당대 내로라하는 시니어 배우분들이 총출동하는 드라마이다.

작가님이 한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시니어분들이 주인공이어서 시청률이 잘 안 나올거라는 우려가 있었을 때 왜 나이 든 어르신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안된다고만 하지? 그럼 그냥 진짜 되는지 안되는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오기로 글을 더 열심히 썼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사실은 너무 리얼해서 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소화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다만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작가님이 그린 세대 간의 상처 그리고 그 안의 얽힌 삶과 우정, 그리고 사랑이야기는 정말 너무 리얼해서 이건 외면하고 싶은 우리들의 문제잖아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내용들이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너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고, 논의하고 싶지 않고, 감추고 싶은 아주 개인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고 또 우리 가족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가족 간의 상처 외에 이 드라마에서는 늙어간다는 건, 이 사회의 약자가 되어간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언젠가는 나도 늙어갈 거고 이 드라마에서처럼 씁쓸함을 이야기할 나이가 올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노희경 작가님의 글이 극 현실주의 이기도 하면서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산다는 건 정말 가끔은 도를 닦는 느낌으로 한 산 너머에 한산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 또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를 이 드라마는 아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감사했다.


결국에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가 노희경 작가님이다.


극 중에서 신구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아버지는 놀랍게도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대체로 가부장 적이고 고집불통이며 큰소리만 낼 줄 알지 가정의 생계는 나몰라라 하고 도박에 취해 살아서 아내가 억척스럽게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도맡아서 꾸렸던 우리의 윗세대의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 말이다. 좀 나은 버전이라 함은 가정의 생겨만 책임질 줄 알고 자녀와 아내와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자녀들과 아내에게 살가운 말을 한 적이 없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아버지 모습 말이다. 극 중 신구 배우님 딱 그런 아버지이다. 집에서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나문희 서생님 즉 와이프가 차려준 밥에 물 한잔도 혼자 따로 드시는 법이 없는 고집불통의 아버지이시다. 그런 분이 딸의 가정폭력을 알고 나서 무너지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이 장면에서 그 시대의 아버지들의 부성애가 잘 드러난다. 아버지는 그동안 딸이 잘 사는 줄만 알았다. 돈 많은 집에 시집보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줄만 알았다. 시집보낸 딸이 사실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그 사위는 아주 파렴치한 인간임을 너무 늦게 알게 되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장 그 길로 사위네 사무실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다가 오히려 사위로부터 냉소적인 비웃음을 듣게 된다. 그리곤 그 옛날 성추행을 당한 딸이 울면서 뭐라도 좀 해달라고 애원한 사건을 떠올리신다. 그는 자신의 일터까지 찾아와 울어재끼는 딸이 귀찮않고 그런 일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왜 치마를 처 입었어?"
"나 바지 입었어! 바지 입었는데도 그랬다고!!
왜 내 말을 안 믿어? "


사장 아들이 딸의 다리를 만졌다고 했을 때 왜 나는 치마를 입었냐고 딸을 욕하기만 했고 울고 있는 딸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 자기가 이렇게 무능하고 무심하지 않았더라면 딸이 그런 폭력을 당하고도 아무 말하지 않고 참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딸이 그렇게 살게 된 건 어쩌면 내가 말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도 없을뿐더러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라는 철저한 절망감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내려와서 사위의 차를 부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분노는 사실 자신의 무지와 무능함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왜 가정폭력이나 휘두르는 남자인지도 모르고 시집 잘 갔다고 남편 한데 잘하라고 했던 건지... 돈 많은 집에 시집을 보낸 거를 자신의 공인 것처럼 자랑했었던지... 돈이 많은 집에 시집보내면 딸이 행복할 거라고 너무나도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화였을 거다. 대부분 부모님은 자녀의 신랑감을 볼 때 경제력을 제일 중요하게 보게 되는데 그게 사실은 딸의 행복을 좌우지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표현도 잘 못하시지만 자녀들이 그런 가슴 아픈 일을 당하면 모두 다 본인의 탓으로 돌리시는 분들이다. 아무리 망나니 같은 아버지라고 해도 딸이 맞고 산다고 하면 눈이 뒤집히는 법이다.


또 노희경 작가의 글에서는 폭력적인 아버지상을 많이 보여주신다. 특히 가정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드라마 라이브에서의 이순재 선생님이 연기하시는 아버지도 젊었을 때 자녀와 엄마를 패는 아버지로 나온다. 실제로 작가님이 아버지의 관계가 힘들었다고 책에서 쓰신 적이 있다. 단연 작가님만이 겪은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우리 윗세대는 대체로 저런 삶이 당연하듯이 살았으니까 말이다. 왜 우리 윗세대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다들 그렇게 폭력적이고 아내들과 자녀들을 때렸는지 모르겠다. 우리 할아버지도 성질이 고약해서 밥 먹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밥상을 엎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한 성질 하셔서 살아계셨으면 우리 엄마도 참 많이 시집살이를 했을 거라고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울 엄마는 시집와서 다른 고생은 하셨어도 시집살이는 하지 않으셨다. 요즘에야 가정폭력으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죄로 보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다들 그게 당연하듯 참고 사셨다. 지금도 여전히 남의 가정의 일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그렇게 남의 가정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방치할 때 매 맞는 아이들이 생기고 매 맞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일들이 생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할머니 김영옥 선생님도 극 중에서 젊었을 때 엄청난 폭력을 당하고 살아온 걸로 나오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 들 때까지 남편을 버리지 않으시고 병든 병시중까지 드신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정말 강하셨고 갖은 수모를 겪었어도 끝내 남편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 같다. 요즘 같으면 맞고는 안 산다고들 하지 않나.요즘 세대인 우리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 윗세대는 미련하기만큼 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끊어내지를 못한다. 그게 꼭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버리는 게 다 상책이지도 않으니 정말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주위에만 봐도 여전히 이런 비슷한 문제로 부모님과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주로 인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폭언 문제 때문에 다들 고생한다. 특히 딸인데도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주로는 다 컸어도 시집까지 간 딸의 살림살이가 맘에 안 들어 냉장고 문을 열면서부터 잔소리 폭격을 하시거나 자녀교육이 탐탁지 않아서 잔소리 겸 폭언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부모님들도 상처가 있다. 누구네의 어머니는 남편이 바람피워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를 감당해야 했고 또 누구는 어려서부터 혼자 가정을 일궈 세웠으셔야 했던 가장이셨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해야 했고 누구 하나 의지 할 데라곤 없어서 자식을 믿고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 자식이 이제는 다 컸다고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화가 날 수밖에... 부모님들이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할 때 비극은 시작된다. 이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모녀관계가 나온다. 바로 고현정 배우님과 고두심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모녀 사이이다.


고두심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어머니는 남편이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난 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장 믿었던 친구는 그 바람을 두둔한 바람에 친구도 남편도 잃은 상처가 있으시다. 그때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살기 힘들어서 인생을 끝내려고 어린 딸 (고현정)과 같이 동반자살을 하려고 약을 먹게 된다. 그때 겨우 6살이었는데도 딸은 그날의 상처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고 쭉 참고 살다가 그 상처를 서른이 넘어서 폭발시킨다.

"난 그때 6살인데도 분명하게 알았어. 난 엄마 거구나.
아무리 무서워도 엄마가 약을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하는 엄마 거구나.
나한테 잘못했다고 그래! 나한테 왜 그랬어?
엄마가 낳았으면 나한테 그래도 돼? "


고두심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어머니는 딸이 그때의 상처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딸에게 놀라고 그 상처가 아직도 딸의 인생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란다. 한국의 문화에서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불효자고 존중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어른을 존중하고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준 부모님에 대한 공경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부모님들은 키워주는 것이 권리인 마냥 당연하다는 듯이 결혼문제 그리고 진로문제 앞에서 권력을 휘두를 때가 있다. 부모님들은 가끔 자신의 못 이룬 욕망을 자녀들이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거나 자신의 희생한 삶을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마음들이 있다. 물론 자녀들이 잘 됨이 그들의 자부심이 되는 것은 좋으나 그걸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으로 종용하거나 지나치게 간섭과 요구할 때 관계의 비극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아침드라마에서도 이 테마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물 싸대기, 김치 싸대기, 돈봉투 건네며 물 뿌리기 왜 유독 한국 드라마와 아시아권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는지 더 이상 이상하지도 않다. 저 폭발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얼마나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히는 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상처의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파멸하는 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대부분 사람들은 저런 폭발하는 감정들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도 못했던 적이 많을 것이다. 부디 이 드라마를 봤던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상처를 폭발시키지 말고 그때그때 화해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반면 김혜자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서도 자신이 자식한테 짐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시는 캐릭터이시다. 치매가 있으면서도 혼자 집에 살겠다고 고집부리시고 혼자서도 뭐든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시다. 보살핌을 주던 사람에서 이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씁쓸한 지에 대해 잘 보여주신다. 그런 우리네 어머니는 이제는 자신이 자식들한테 짐이 될까 남편을 잃고서도 전전긍긍하신다. 남편이 먼저 돌아가고 상을 치른 뒤 자식들이 모여 앉아서 하는 말을 어머니가 안방에서 듣고 만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서야 하는 거냐고 싸우는 철없는 자식새끼들의 싸움을 말이다. 그날 자식들은 서로 내가 엄마를 모셔야 한다고 동네가 떠나가라 싸웠지만 엄마는 그 말 밖에 맴돌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었어야 한다고? 나보고 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날 남편 상을 치르고서도 멍해지셨다. 그나마 이광수가 연기하는 효심 많고 욱하는 막내아들의 캐릭터 때문에 철없는 자식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참 다행이었다.

"걱정 마! 엄마 혼자서도 살 수 있어."
"왜 내가 아무것도 못해? 나도 할 수 있어! "


나이가 들어가고 힘이 빠져가며 이제 내가 옛날과 다르고 힘이 부쳐간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는 데 나이만 늙고 정신은 아직도 한참 때라고 생각 드는 게 우리의 어리석음이다. 나도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이렇게 다름을 느끼는데 나이 들어가는 그 어르신들의 서러움이야 말해 뭐할까. 나는 더 이상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과연 내가 정말 인정할 수나 있을까? 어릴 적에는 자식들이 모든 것을 나한테 의지했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챙겨주어야 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도움도 필요 없고 내 마음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이런 상황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부모 이기전에 사람인데 말이다. 그 갭에서 오는 허무함과 공허감을 김혜자 선생님이 잘 표현해주셨다. 이 드라마를 보면 그냥 밥이나 축내는 골방 노인네가 되기는 싫은데 이젠 진짜 힘도 빠지고,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지 않은데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드라마에서처럼 친구들이 옆에 있다면 그래도 그나마 버틸만한 삶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김혜자 선생님 옆에는 그래도 친구인 나문희 선생님과 윤여정 선생님, 그리고 고두심 선생님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라마 보는 내내 들었다. 치매가 오고 옛날 일찍 세상 떠난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그나마 그런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 김혜자 선생님의 인생이 위안이 된다. 이 부분이 이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나 낭만 같은 것이다. 인생에서 낭만이 없으면 우리는 무슨 낙으로 살까 싶다. 내 친구들과 그들처럼 같이 늙어가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버타운같이 가까운 동네에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현정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박완이라는 캐릭터. 유일한 막내 캐릭터이고 그들한테 비하면 아직은 청춘인 딸의 캐릭터를 고현정 배우님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연기하셨다. 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엄마와의 갈등으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를 슬로베니아에 버리고 온 캐릭터이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조인성)의 사정 때문에 엄마의 병을 핑계 삼아 서울에 왔지만 사실은 자신도 그 상처를 같이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도망쳤다. 그리고 그런 박완(고현정)이 오랜 방황을 끝내고 다시 서연하(조인성)가 있는 슬로베니아로 돌아가는데 장장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너한테 오는데 18시간밖에 안 걸리더라. 너무 쉬웠어."


저 대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 것 같다. 너무 쉬었다고는 말했지만 아픈 엄마를 내팽개치고 한국에서의 모든 커리어를 다 정리하고 유럽 시골 외딴 마을에 가서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진정 있어야 할 자리까지 찾아가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돌아온 자신이 하나도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구는 서연하(조인성) 앞에서 박완은 화장실로 도망갔다가 그 안에서 그는 그들이 함께 썼던 칫솔이며 잠옷이며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오열하게 된다. 오지도 않을 사람의 물건을 그대로 두고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야 했던 연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큼 사랑해야 그런 기다림이 가능한 것이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연하는 박완을 기다리려고 그의 물건들을 그냥 내버려 둔 게 아니라 어쩌면 한 번도 그녀를 떠나보낸 적이 없는, 그녀를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박완은 다시 떠날 때 엄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올 거라고 연하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더 열심히 운동하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해보라고 당부한다.

"장애인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한테.
세상에 나밖에 없는 엄마한테 내가 당당히 말할 수 있게.
엄마, 연하는 포기를 몰라요.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해요."


가끔은 자식들의 선택들이 부모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이런 상황처럼 장애인과 남은 평생을 살겠다고 하는 딸의 선택들 말이다. 분명히 힘든 길인 것을 알기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결코 응원하고 싶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선택들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도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선택해 줄 수가 없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녀들이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주는 사람들이지 자식들이 자신이 말하는 대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로봇 조종사들이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실망스러운 선택을 하더라도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역할과 입장이 다르니까 말이다. 어쩌면 한평생 그분들은 우리가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죽어라 말리실 거고 우리는 또 우리의 생각을 꺽지 않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서 계속 대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를 믿어주고 나의 선택도 존중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그래야 나도 나의 선택에 책임지고 넘어지더라도 책임져 가면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는 자녀들의 삶이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부모님과 분리가 되지 않아서 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린 자신의 감정대로 선택하는 법도 책임지는 법도 잘 모른 채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또 그런 경제적인 구조안에 있는 사회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결혼해서 도 자녀를 부모님에게 맡기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 아이가 된 어른들이 살면서 무책임한 선택들과 어리석은 선택들을 하고 우리는 더더욱 나쁜 사이클을 끊을 수가 없게 된다. 두렵더 라도 자신을 믿고 선택하는 법과 그 선택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법을 배우는 게 진정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걸쳐야만 우리가 진정 어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해봐야 부모님 세대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얼마나 귀하고 숭고한 것인 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누구에게나 달콤한 단어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이름만 들어도 힘이 나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티브이에서 너무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볼 때면 상대적 박탈감을 얻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가정의 상처와 갈등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모두들 결핍과 상처가 있지만 사랑함으로 함께 함으로 인해 그 상처들을 멋지게 이겨낸다. 멋진 배우님들의 연기를 통해 다양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남편과 아내, 친구들과의 우정과 사랑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시 이분들을 다 모아놓고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낭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다. 가끔 인생에서 나쁜 일은 나쁜 일로만 오는 게 아니라 지나가면 좋은 일이 된 기억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가끔은 나쁜 일과 좋은 일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인생에서 죽음과 새 생명의 탄생이 동시에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지긋이 먹었다고 해서 인생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부모라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모두 인생 처음이고 실수도 할 수 있는 어리석고 연약한 사람들이다. 나도 내 인생의 중2는 처음이고 대학생도 처음이며 결혼도 부모도 처음인 인생 초보들이다. 그러니 혼자는 힘드니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보자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함께 일 때 인생의 많은 어려움들을 견딜 힘이 생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생각보다 훨씬 믿음직스럽고 강하게 버텨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할 때 우리의 삶도 주위의 환경도 조금씩 변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살면서 부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갔으면 좋겠다고 이 드라마의 엔딩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시기 우리 서로 부디 서로에게 보탬과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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