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나오는 낭만 반쯤만 있어도 살만한 세상일 것 같다.
두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노희경 작가님의 명작 드라마는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10년도 더 지난 이 드라마를 10번 이상을 보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대본집까지 샀다. 이번에 다시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대본집을 같이 보면서 이 글을 쓴다. 사실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감히 건드릴 엄두가 안 나서 자꾸 미뤄왔던 글을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할 말이 너무 많은 작품이라 몇 편에 나눠서 하려고 한다.
2008년도에 나온 드라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드라마다.
당시에는 시청률이 낮아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수 있어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10번 보고 100 번봐도
질리지 않은 명작 중에 명작이다. 지금 와서 보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조연들부터 주연까지 모두 짱짱하다. 최다니엘 배우가 무려 조연이고 김영광과 정석원이 단역으로 나온다. 역시 그때에도 작가님과 감독님은 배우 보는 눈이 굉장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는 노희경 작가님 특유의 내레이션과 대사들이 명품이다. 특히 소싯적 나같이 드라마 제작에 환상을 품고 있던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화젯거리고 환상을 부풀려 주는 소재다. 한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지오 같은 선배를 만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주준영같이 열정적인 감독이 되고 싶었다. 다행히 꿈꾸던 대로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드라마 현장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니까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 소개되는 상황이나 동료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가 낭만 같고 아직도 보면 설렌다. 주위에 드라마에서 나오는 동료들이 있으면 정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다.
정지오(현빈)는 왠지 대학교에서 한 명은 있을 법한 정말 멋있고 공부도 잘하고 학교 사람들이 모두 알법한 유명한 선배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옆에는 감히 넘볼 수도 없게 예쁜 여자 친구가 있고 방송국에 들어와서도 누구나 따르고 싶어 하는 그런 훈남의 정석이다. 주준영(송혜교)은 이기적이고 좀 철은 없지만 자기 일만큼은 똑 부러지게 잘 해내는 일중독 커리어 우먼이다. 드라마 내용의 깊이보다는 그림 하나는 끝내주게 뽑아낼 줄 아는 해외에서 상도 받은 적 있는 떠오르는 샛별 감독이다. 세상에서 드라마가 제일 재밌는 놀이라고 말할 만큼 드라마를 사랑하는 순수한 캐릭터이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이 드라마를 봤을 때엔 한없이 순수하게 사랑했다가 힘들어하던 주준영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세상 때 물씬 묻은 지금은 자존심 세고 약간은 비겁한 정지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됐었다.
"다음에도 나 써줘요!"
1회에 나오는 이 스턴트 맨의 대사다. 주준영이 정지오 드라마의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대신 촬영을 하게 되는데 급하게 찍다가 스턴트 맨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주준영은 사람이 다치긴 했으나 촬영도 잘 끝냈고 생방송같이 찍던 시스템 속에서 방송사고도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친 사람 병문안도 가지 않고 조감독이랑 피시방에 앉아서 안일하게 모든 전화를 씹고 게임을 한다. 그리고 뒤늦게 정지오에게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비난받고 나서야 병문안을 가서 다리에 깁스를 한 스턴트를 마주한다. 깁스를 하고 누워있으면서도 자신을 다음에도 써달라고 하는 스턴트맨을 보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스턴트라는 직업이 그렇다. 몸이 부서져라 촬영을 해도 화면에는 주인공만 나오고 월급이라고 해봤자 쥐꼬리만큼인 어쩌면 방송가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스턴트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하고 다치고 나서도 다음에 자신을 안 써줄까 봐 불안해하는 스턴트들의 삶을 첫회에 잘 보여줬다. 할리우드에서야 그래도 A급 배우들의 스턴트로 일하면 높은 수입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정말 위험은 위험대로 감수하면서 월급은 박봉인 직업이다. 정두홍 무술감독님 같이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 빼고는 그 무술팀에 있는 스턴트들이 과연 제대로 된 밥벌이나 하고 살지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치열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드라마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남들에겐 그냥 맨날 하는 드라마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들은 매일 밤잠을 설치는 건 기본이고 삶에 많은 아기자기한 부분을 포기해가면서 만들어간다. 여러 사람들이랑 소통하면서 컨펌받고 일을 진행하는 데에도 스트레스가 만만치가 않다. 막상 이렇게 치열하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혹평하거나 내용이 탐탁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면 시청자들은 또 냉정해서 금방 채널을 돌린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서 영화든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그 작업을 한 사람들은 직업적 소명과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라는 생각 말이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보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나는 뉴스를 대체로 안 보고 인터넷 기사로만 뉴스를 본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보면 8시 뉴스 9시 뉴스를 차지하기 위해 아나운서끼리 그리고 기자들끼리 정말 엄청 치열하게 경쟁한다. 시청자들이 보지 않는 뉴스를 그들만의 리그들처럼 치열하게 싸워서 살아남은 자가 최종 뉴스 데스크 화면에 나온다. 발음과 이미지가 중요하고 여자 남자 앵커의 케미도 중요해서 선별 자체가 엄청 까다롭다.
어쩌면 모든 직종이 그렇지 않을 가 싶다.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그 업계가 아니라면 길가에서 지나가도 옆에 지나가는 행인뿐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나도 목에다 주는 파란 명패 (정규직이라는 상징으로 불리는) 그것이 낭만 같았고 방송국에서 나눠주는 KBS라고 적혀 있던 다이어리를 받으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물론 명함에 내 이름 석자 들어가고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들어서서 영화에서 나오던 장소에서 커피 한잔 들고 출근하는 그 허세 같은 아침이 주는 소중함이란 가끔 생각해도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눈물 나게 행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직위가 주는 혜택 하나만을 바라보고 하루에 12시간에 14시간을 뼈 빠지게 일하진 않는다. 이런 류의 기쁨은 첫 3달 가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만 유효한 류의 기쁨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도 고작 4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나보다 연봉을 몇 배는 더 받는 상사와 부대끼면서 끝나지 않을 업무를 하루 종일 뺑이쳐 가면서 일한다. 대기업이라고 해봤자 일하는 사무실은 거기서 거기고 모두 사람들 때문에, 업무 때문에 치이다 보면 이 회사가 정말 그리 대단한 회사인가 잊게 되고 (물론 대단하다.) 내 말의 요지는 일하다 보면 겉으로 주는 그 위시 감보다 내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정말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과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쉬이 잊어버린다는 뜻이기도 한다. 삶의 질과 행복은 이런 겉치레에서 오는 뻔지르르함이 아니라 내가 그 가운데서 누구랑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무엇을 창조해나가냐에 따라 더 치우치게 되니까 말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울대라고 표현하지만 서울대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사시 고시를 패스하고 어렵게 방송국에 입사했다. 그래도 짐승같이 조감독으로 몇 년을 지내고 잠도 못 자고 연애도 바로 못하면서 남들보다 여유 없는 하루의 일과를 보낸다. 이들이 진짜 그냥 방송국에서 주는 뱃지나 다이어리에 만족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정말 그렇게 어렵게 공부하고 어렵게 사시 공부를 몇 년씩이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업적 소명을 찾지 못하고 조직에 불만이 많을 때 이렇게 어렵게 입사한 회사도 나가는 게 방송가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짐승같이 일해야 하는 순간들을 버티는 이유는 드라마의 파급력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무엇인가 세상에 이로운 일을 창조해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직업이 돈벌이 수단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또 수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하는 소명도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나도 가끔은 카드빚이나 생활비 때문에 버티는 순간들도 많다. 모든 스텝들의 마음들이 다 이렇게 직업적 소명을 따져가면서 일하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들도 분명히 있다. 운이 좋아서 좋아하는 스텝들과 일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면 행운이지만 가끔은 한 드라마에서 다른 드라마로 옮겨가면서 기계처럼 움직이고 그냥 내 일이 끊기지 않으면 되는 생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순간순간 드는 회의감과 절망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항상 내가 몸담고 있는 드라마라는 현장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내고 있는가를 고민한다. 처음에는 방송국만 들어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지옥 같은 조감독 시절이 있듯이 나도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 들어만 간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짐승 같이 일해야 하는 조감독 시절을 아주 오래 버티고 거쳐야 진짜 내가 원하는 일들을 펼쳐낼 수가 있다. 거기까지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을지 가끔 너무 멀게 느껴져 지칠 때도 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징징대는 대신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받으면서 실력을 키워야 하는 때임을 자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적이 된 적이 없는가?"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부러웠던 점이 큰 실수를 해도 잘리지 않는 조직문화였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얼마나 얄짤없고 냉정한지를 봐서 그런지 한국의 이런 문화만큼은 정말 부럽다. 조연출을 오래 하는 대신 일을 익히고 배우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조연출로써 오래 열심히만 하면 자연스럽게 감독이 되어가는 것도 부러웠다. 미국은 조감독은 조감독으로만 일하는 게 대다수고 절대 감독으로서의 재질을 배워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 통솔 능력만 키워간다. 그래서 감독이 되려면 감독 크레디트를 만들기 위해 그냥 영화를 많이 만드는 감독으로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루트를 통해서 감독되는 경우는 많다고 해도 조감독을 오래 했다고 절대 감독이 되는 지름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선배 감독이 후배 감독과 팀이 돼서 가르치는 시스템이라 그것도 장점으로 다가온다. 나도 만약에 오랫동안 조감독 하면서 고생한다고 해도 먼 훗날 감독이 된다고 하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끌어주고 배워주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을 수 있게 하는 문화와 시스템에도 폐해가 있을 수 있지만 외부인의 눈에서 봤을 때 초보에게 이 일을 시작하기에는 정말 딱인 좋은 시스템처럼 보이다.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렘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 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렘은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론 설렘이 무너지고 두려움으로 변질되는 것조차 과정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나도 일하면서 내가 거대하게 돌아가는 공장의 부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내 상사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같이 해내가는데 동료라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프로덕션 막내들이 하는 일들이 대체로 허드렛 일이고 다른 프로덕션 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서포트해주는 역할이다 보니 다른 드라마 "구여자친구클럽"에서 송지효가 맡은 프로듀서의 대사처럼 "내 인생 이렇게 쓰러기만 줏다가 끝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 저절로 공감된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조감들처럼 이런 허드렛 일을 하는 것조차도 이렇게 등용문이 높으니 이미 그 중심에 들어간 사람들로서 불평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 단편영화를 돈도 못 받고 새벽 2시에 배우와 스텝들이 다 떠난 뒤 쓰러기를 치우고 있다거나 밤샘 촬영을 하면서 더러운 카펫에 누워서 조금이라도 눈을 부쳐보겠다고 쪼그릴 때 말이다. 아래에 나오는 주준영의 대사처럼 정말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모두 짐승 같던 조감독 시절이 있는 것 같다.
"내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조감독 때 나의 아킬레스건은 조금이라도 잘 나가는 모든 동료와 그 외 나에게 수시로 태클을 거는 세상 모든 것이었다."
짐승 같은 조감독 시절이라 정말 하루에 14시간을 일에 투자하고 자고 일어나서 또 일하러 가는 패턴에는 연애든 취미생활이든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바닥에서는 재능이 있는 자들이 정말 표가 확실하게 난다. 그 미세한 차이에는 어릴 적부터 받았던 교육 탓인지 아님 타고난 예술성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날고 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좋은 영화를 보면 본능적으로 그 작품이 좋은 건지 나쁜지 느낌이 팍 오는 순간들이 있다. 조명을 달지 않고도 좋은 그림들을 뽑아내는 촬영감독이라던가 같은 졸업작품 만드는 학생인데 이미 대런 아로노프스키(블랙스완 만든 감독) 영화에 스틸 포토그래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하면 정말 작아진다. 물론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는 정말 재능 없고 눈치도 없으며 어떻게 이 자리까지 안 잘리고 왔지 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일을 더 길게 해 봐야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는지 아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노력형들이 승리할지 알 것 같다. 아직은 좀 더 해볼 일이다.
"주준영, 나는 네가 말이다, 나랑 드라마국 사람들하고 날밤 까고 술 마시면서 목에 핏대 세우고, 이 세상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진정성이 중요한 거 아니에요, 배우에 대한 애정도 없이 어떻게 카메랄 들이댈 수가 있어, 우리가 풀지 못한 인생의 진지한 고민, 그게 작품에 녹아나야지, 염병... 여기가 시장바닥이야, 웬 장사?! 할 때... 그게 니 진심인 줄 알았다?"
어쩌면 주준영은 계산적이고 속물이고 단순 똘기가 넘치는 캐릭터이지만 젊은 감독이 그 정도 야망도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기획사에서 드라마 들어갈 때 이름 값하는 배우랑 인지도 낮은 배우들을 끼워 팔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그 뒤로 버릇이 생겼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생기면 어느 소속사이고 같은 소속사에 누가 있는지를 찾아본다. 한 작품에 같은 소속에서 몇 명의 배우가 들어갔는지 그리고 작품에 참여한 스텝들이 얼마나 겹치는지도 찾아본다. 내가 한국에서 작품 할 것도 아니면서도 그냥 혼자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꾸려가는 소소한 재미라고나 할까 그냥 그렇게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됐다.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드라마를 볼 때 항상 제작사, 작가, 감독이 누구인지 제일 먼저 찾아보고 작품을 보는 편이다. 작가나 감독님에게 신뢰가 가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도 믿고 보게 된다. 물론 배우들도 자기 몫을 200% 함으로 그 드라마가 사는 것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작가나 감독이 더 중요하다. 배우와 제작사, 방송사, 작가 들과의 미묘한 힘 겨루기를 잘 보여준 회차들과 에피소드들이 이 드라마에서는 정말 많다. 화려해 보이는 방송가가 사실은 암투와 비즈니스 마인드로 버물려진 동네라는 것을 알 법도 한데 보지 않은 이상 어떻게 다 이해하겠는가.
"자유분방을 주장하며 성희롱이 횡행하는 이놈의 방송가"
정지오가 주준영에게 어깨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 주준영이 한 대사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정말 애교에 가깝다. 동료끼리 충분히 어깨를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선을 무너뜨리게 되면 사람은 방심하게 되고 안주하게 된다. 방송가에서 미투가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악습들이 공공연하게 이어졌을 것이다. 술자리도 많고 회식문화도 많아서 말이 많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기기 딱 십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위해 뭐든 하려고 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지위 높은 사람들이 야만적인 요구들을 할 때 자신의 꿈을 위해 자진해서 타협하거나 아님 타의로 의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무엇보다 정의롭고 바른 도덕성을 갖추고 방송을 다뤄야 하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추문에 휩싸이는 것을 많이도 봤다. 누군가는 10년 전에 일어난 일로 매장돼서 다시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억울하게 프레임 당하는 것도 봤다. 미국에서 시작한 미투에서도 보듯이 이런 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에도 정말 오래 뿌리 깊게 잔재해 있음을 보았다. 부디 미투라는 칼이 썩은 곳은 도려내는 정의로 사용되고 억울하게 묻지 마 살인을 하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려면 최근에 리뷰한 "Hollywood"라는 드라마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내 영혼을 파괴하는 선택들을 하지 말고 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나 자신이 조금은 손해 보더라도 나를 덜 괴롭히는 선택들을 해야 한다. 때론 내가 잘한다고 해서 피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안다. 그래서 서로가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 싸움에서 이길 힘과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도 달게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인 셈이다.
이번 회차는 전체적인 방송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썼다면 다음 회차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선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좀 더 적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