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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Dec 10. 2020

미드에서 다루는 민감한 인종차별 문제들

인종차별을 피하기 위해 하는 노력 

얼마 전 다음 주에 촬영할 시나리오를 읽던 중 인종차별적인 농담이 섞인 대사를 읽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용돈을 벌고 싶으면 제3세계에 가서 일하라는 농담이었는데 제3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싼 노동력과 미취학 아동을 불법 채용 문제를 농담 식으로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읽는 순간 기분이 나빴고 다시 읽어봐도 분명한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도저히 다음 페이지를 이어서 읽을 수가 없어서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직은 촬영을 하기 전이니 시나리오 수정은 매일 있는 일이라 이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문제는 이 것을 어떻게, 누구한테 말할 것인지, 말한다고 해도 고쳐질까 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 몰랐지 이미 읽은 이상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상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고 이 나라 관객들이 보면 분명히 불쾌하게 여길만한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상사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적절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유머라고 생각했다고 하면서 일단은 자기한테 먼저 이야기한 건 잘한 일이고 프로듀서들이랑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본 리딩 때 넷플릭스 쪽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을 그냥 넘기지는 않고 분명히 수정하라고 할 것 같다고도 귀띔해주었다. 


이 문제제기에 대해서 내가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하물며 우리의 직속 상사 프로듀서도 작가진에게 대본 수정에 대한 의견을 웬만하면 내지 않는다는 게 암묵적인 업계 룰이다. 말단 직원인 내가 어떻게 작가진들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내 의견들을 피력할 수 있는지가 고민스러웠다. 내가 상사와 상의를 하면 상사가 그 위의 상사와 상의하고 충분한 파워가 있는 사람이 이야기할 때와 우리 같은 말단 직원이 할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다음번 대본 리딩 때까지 넷플릭스 쪽 사람이 와서 수정하라고 하기를 기다려보자는 확답을 듣고 일단은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고 대본 리딩이 끝난 다음 시나리오 수정본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기대했던 대로 넷플릭스 측에서 부적절한 농담이라 여긴 듯 민감했던 대사들이 대부분 날아갔고 다른 대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시대착오적인 인종차별이 얼룩진 대본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얼마 전 대본에도 러시아에 관한 농담이 있었지만 대본 리딩 후 넷플릭스 측에서 수정을 요구했고 최종 촬영본에는 수정되어서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조심스럽지만 결국에는 이 쇼가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올라가는 것만큼 누가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미리 안 이상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말했다고 해서 대본이 수정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의견은 작가진에게 전달된 적도 없고 다만 본사 측 사람들에게 다시 신뢰감이 생긴 계기가 된 해피엔딩이었다. 만약에 이런 농담들이 아무렇지 않게 통과되고 방송이 된다면 나는 내가 14시간씩 시간을 들여 청춘을 바치고 있는 이 회사에 많은 회의감을 느꼈을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금 일터에서는 유독 백인과 흑인은 많지만 아시안은 나 포함해서 몇 명밖에 되지 않다 보니 일터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는 서로가 다들 조심하는 편이다. 코로나 인해 우리가 수입하는 많은 양의 마스크가 특정 나라의 물건인데 나는 지나쳐서 못 들었지만 상사 중 한 명이 이 물건들은 특정 나라 물건이라고 가볍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직접 듣지도 못했고 들었어도 특별히 마음에 걸리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쳤었는데 한적한 오후에 그 상사가 나를 찾아와 아까 혹시 자기가 말한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하나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라고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오해해서 듣지 않았기에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작은 것들이 서로 간의 오해들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직장에서는 더욱더 조심하게 되고 또 서로의 문화나 배경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 "Lovecraft Country"라는TV쇼에 한국전쟁 관련된 에피소드가 방송이 됐다. 워낙에 새로 나온 드라마가 많다 보니 다 챙겨볼 수가 없어서 잘 모르고 있다가 동료가 이 쇼에서 일했던 작가랑 미팅을 하게 될 건데 이 사람이 다른 문화에 대해 쓴 글들이 충분히 검증이 된 건지, 충분히 자료조사를 하고 쓴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다며 한번 봐달라고 했다. 그날 저녁 드라마를 보고 든 첫 번째 생각은 프로덕션 다지인과 의상은 일본식과 한국식이 믹스됐다는 점과 역사적인 고증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좀 더 리서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1950년대 미군이 대구에 와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에 대한 디테일은 잘 모르니까 말이다. 드라마의 배경은 1950년대 시대 배경에 주한미군들이 북한 사람 - 빨갱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달아 죽이는 등등의 내용이었다. 전체적인 쇼의 주제가 초능력에 관련된 것이기에 한국적인 에피소드에서는 구미호가 주인공이었다. 잠자리를 할 때마다 남자의 혼을 빼먹는 구미호는 100명이라는 남자의 혼을 채우게 되는 될 때쯤 사랑에 빠지게 돼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는 약간은 뻔한 내용이었다. 특히 여자 주인공 구미호의 어눌한 한국어 대사 연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어려웠고 전체적인 서사구조는 다른 에피소드들 보다는 탄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들의 시점으로 묘사하는 다른 나라 문화는 항상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와 역사왜곡의 논란의 여지가 있게 된다. 아무리 역사 고증을 잘한다고 해도 대사를 전달하는 배우나 프로덕션 디자인에서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 나라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 들어서 할리우드에서 스토리를 짤 때에도 대사나 비유에 약자에 대한 불쾌한 농담은 없는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없는지 더욱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며칠 전 뉴스에서도 새로 시작한 앤 해서웨이가 주인공인 드라마 "The Witches"에서 앤 해서웨이가 손가락 세 개인 악녀로 나오는데 그것들이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었고 결국 이 때문에 앤 해서웨이가 공개사과를 했다. 조지 플로이드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지금 인종차별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더 민감해졌기에 할리우드도 발 빠르게 시대상을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다양한 인종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진취적인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나 인종이나 소재의 다양성 영화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할리우드에도 시대를 반영하면서 여전히 고민하고 제대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는 반증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의 갈등을 빚고 있고 할리우드에서 아직도 해결해야 할 성평등과 문제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되 그 농담이 적절하지 않은 가에 대해서는 그전보다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 반갑고 다행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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