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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Mar 18. 2024

유리멘탈 상사를 만났을 때

다들 강해 보여도 아닐 수도 있다.

영화 촬영현장 및 프로덕션에서 여자로서 일하려면

보통은 목소리가 높고 강단이 있으며

사람을 다룰 줄 아는 강한 사람들만 봐왔었다.

아마도 이 험한 프로덕션 광야에서 살아남은

프로듀서들의 모습이 대개는 그런 거니까

물론 부드러우면서 자상한 프로듀서들을 본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장부 같은 스타일의 프로듀서들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나의 롤모델처럼 나도 여자 프로듀서로서

이 바닥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 프로듀서들도 머리를 빡빡하게 밀고

까다로운 민머리가 있는 반면

조곤조곤 일하면서도 디테일을 잡아주고

혼내지 않으면서도 일 잘하는 프로듀서들도 있었다.

까다로운 상사랑만 일하다가 이런 부드러운 팀을 만난 건

나한테는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 두 보스는 모두 민머리이시다.

아마도 그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다들 치열해서

머리가 빠지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워낙에 스트레스가 많고 매일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뻥뻥 터지는 게 촬영현장이니까.

얼마 전에 노조에서 연락받았는데 누군가가

촬영장에서 떨어져 돌아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고 배우(알렉 볼드윈)가 쏜 총에

촬영감독이 사망하는 사건도 너무나 가슴 아픈 소식이다.

이렇듯 촬영현장은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스트레스 요인들이 많다.


아무튼 내가 본 여자 프로듀서들은 하나같이

여장부 스타일이지만 다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도 현장에서 이렇게 건재하는 모습을 보면

그 존재자체가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들 여장부 같고

씩씩하고 강단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난 상사 중에서 유리멘탈을 가진 상사도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분해를 못하는 사람 같았다.

조금만 일이 몰려오고 그 일들을 소화하기가 버거우면

눈물부터 났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쉽게 긴장하고 불안해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농담도

혹시라고 불편했을까 봐 부연설명을 마다하지 않았고

문을 닫고 우는 날이 가끔 있었다.

나도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나는 그래도 덜 예민한 거구나 싶었다.

물론 나도 정신없이 바쁘고 일이 몰려와

밥도 못 먹고 일한 날에 주저앉아서 울었던 적이 있다.

너무 정신없이 바쁜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맨날 있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만난 지 2 달인가 됐을 때쯤

벌써 이런 Mental breakdown을 두세 번은 본 것 같다.

같은 사무실을 쓰고 함께 일하는 거라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고 이런 날은 나도 같이 기분이 꿀꿀해진다.

의연하게 내가 할 일들을 하지만

문을 닫고 훌쩍이고 있으면 참 신경이 쓰인다.

모두들 강해 보여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듀서도 쫑파티 당일

예약한 장소 근처에서 총기사고가 나는 바람에

길을 통제해 버려서 스텝들이 쫑파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린 늘 약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난 이 프로덕션일이 더 좋은 거 같다.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각자의 역량대로 달란트 대로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를 창작해 내고 만들어 가는 일

그래서 의미 있게 느껴진다.

때로는 내가 이 거대한 공장의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너무 혼자 다 하려고

애쓰고 발버둥 치지 않으려고 한다.

자꾸 현장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이제 슬슬 복귀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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