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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Jan 16. 2020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10

첫 번째 넷플릭스 쇼를 무사히 끝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프로덕션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개월이 지나 촬영을 끝내고 사무실 뒷정리만 남아있다. 그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일 기쁜 소식은 그토록 바래고 원했던 대로 내 사수와 함께 다음 쇼로 바로 옮길 수 있게 된 점이다. 덕분에 연말 연휴 쉬고 나서 공백기가 없이 바로 다음 쇼에 취직이 됐다. 다음 쇼도 Netflix Original인데 다만 시즌 1이 잘돼서 시즌 2에 합류하게 되었다. 촬영은 2월에 시작해서 7월 말에 끝나니까 2020년 상반기는 안전하게 보장이 된 거나 다름이 없다. 넷플릭스 프로덕션은 보통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계속 고용하다 보니 스텝들 중에 아는 얼굴들이 있을 것이고 또 새로운 팀을 만나는 것이니 도전이 되는 일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걱정에 앞서 다만 내가 재취직이 된 것에 감사함이 앞섰고 그 경제적인 안정감이 새 해를 시작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내 커리어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인 셈이다. 이 바닥 선배님들이 이 필드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Once you in, you in"이라고 했던 말이 이제야 조금 더 실감 나는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일 년에 쇼 두 개를 하고 중간에 한 달 정도 쉬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만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이 글들을 통해서 미국에서 TV쇼를 제작하는 과정과 현장에 대해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이 과정들이  너무나 소중한 기록이고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소재가 있다면 또다시 다른 시리즈로 돌아올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래도 이 쇼를 끝내면서 느낀 점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있어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1 Politics at Work - 정치적인 요소가 가끔은 실력과 경력을 이길 때가 있다.

먼저 이 할리우드 영화 쪽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정치적인 요소가 참 많은 변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다음 일을 결정할 때에도 이런 정치적인 요소들 때문에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다. 보통 Show Runner 들 즉 쇼를 담당하는 메인 프로듀서들이 배우와 스텝들 그리고 넷플렉스(Client)로부터 많은 청탁을 받게 되는데 그 청탁을 제일 쉽게 들어줄 수 있는 포지션이 바로 Production Assistant 들이다 보니 다음 쇼의 프로듀서도 이력서 20 정도 받았다고 한다. 보통 이렇게 뽑는 사람들을 Political Hire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꼭 무조건 뽑아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내 사수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힘써주고 싸워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자리에 가기는 참 어려웠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프로덕션이 잘 돌아가는데 가끔 저런 Politically Hire 된 사람들 중에는 이 일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태도가 안 좋은 사람이 올 수도 있으니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실무 담장자가 거절할 수 있는 포지션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프로덕션 막내들을 뽑을 수밖에 없다. 나랑 같이 일했던 동료도 Political Hire로 들어왔다가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야 돼서 그만둔 적이 있다. 또 다른 동료도 프로듀서의 인맥으로 뽑혔다가 태도가 안 좋고 직무태만이라 중도에 잘리기도 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특정 제작사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제작사 측에서는 그 팀 전체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반면 다른 제작사는 또 자기가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서 다시 팀을 꾸리기를 원하는 때도 있다. 지금 쇼에서 일했던 프로듀서와 그 바로 밑에서 일하던 프로듀서는 같이 일한 지 7년이나 됐지만 이번 쇼를 마지막으로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스튜디오에서 먼저 원하는 UPM/Producer를 뽑고 나면 그 프로듀서가 자기 팀을 짜는데 이 프로듀서가 우리 프로듀서 중의 한 명 만을 데려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무한경쟁 사회라고는 하지만 매번 이런 일들을 보는 게 익숙지가 않다. 35년을 쇼 비즈니스에서 일한 우리 보스도 이런 일들이 익숙지가 않은지 요즘 좀 많이 감정적으로 변하신 것 같다. 그렇게 크게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이 분도 힘들어 할 수 있는 그냥 보통의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막내인 나에게는 큰 산 같은 강철 여인 같은 분이었는데 이번에 7년 만에 자기 밑에 프로듀서를 내어줘야 하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해 지신 것 같다. 그렇다고 어떡하겠는가?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자기 밑 프로듀서더러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마음이 안 좋아도 어쩔 수 없이 보내주신다. 이럴 때 보면 관계라는 게 참 어렵다. 특히나 이렇게 이별을 해야 할 때 더 잘 이별해야 하는 것 같다. 누구도 자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이 버려진 기분을 익숙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대처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쇼 비즈니스에 일했던 터라 나이가 있어도 앞으로 커리어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쇼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프리랜서라 보니 큰 직함을 가진 프로듀서든 작은 직함을 가진 나 같은 프로덕션 막내든 다음 쇼가 바로 정해진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우리 팀의 사람들도 이렇게 쇼를 끝내고 각자 다른 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잠깐의 쉼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쇼를 넘어가는 이 과정 가운데서 막내들끼리도 프로듀서나 팀원들 사이에서도 미묘하고도 복잡한 이해관계들 발생한다. 매번 개편할 때마다 이런 감정 소모를 해야 한다니 조금 피곤해지기도 하지만 프리랜서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순리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이 팀을 떠나면서도 걱정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이해관계였다. 내가 다음 쇼에서 일할 제의을 받았을 때쯤 나를 입문시켜준 프로듀서도 다음 쇼가 바로 들어간다고 들었다. 만약에 그 프로듀서도 나에게 일하자는 제안을 준다면 내가 애매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를 입문시킨 팀의 제인인가 아니면 나를 잘 트레이닝시켜주고 계속 한 팀으로 일하고 싶은 사수를 따라가느냐 인데 나는 사수를 따라가고 싶어도 만약에 이 팀에 대한 제안을 거절하게 되다면 나를 입문시켜준 프로듀서가 서운해할까 봐 걱정됐다. 다행히 내가 그쪽 팀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다음 쇼 최종 보스인 프로듀서가 우리 팀 프로듀서를 만나서 자연스럽게 통보해서 내가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난감해질 뻔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프로듀서끼리는 서로 친하다 보니까 그냥 만나는 자리에서 캐주얼하게 이야기가 나왔었거 같다. 막내인 내가 다른 팀이랑 일하기로 했어요 라고 하는 것보단 최종 보스가 너네 팀에 있던 누구누구 내가 데려가기로 했어 라고 통보하는 쪽이 보기에도 더 좋았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축복받으면서 다른 팀으로 옮기는 그림이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이 TV 프로덕션으로 입문시켜준 지금 이 팀을 만난 건 나에게 큰 행운이고 기쁨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팀이랑은 끝내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더 일하고 싶다. 나에게 기쁜 소식이 있을 때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같이 준비해주고 기뻐해 주던 사람들이라 난 아주 오랫동안 이 팀과 동거 동락했던 그 따뜻한 기억과 마음들을 간직할 것 같다. 처음 만난 팀이 이런 좋은 팀이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 건지 새삼 벅차오른다. 그래서 이 팀이 다음에 나를 필요로 한다면 스케줄만 맞는 한 언제든지 한걸음에 달려올 것이다.  

내가 일하는 건물 외무 사진( 옛날에는 Warner Brother 영화사 사무실로 쓰던 곳이다. )

#2 Wrap Gift & Wrap Party 쇼가 끝나면 선물과 종방연이 열린다.

쇼가 끝나갈 무렵이면 쇼마다 열심히 일한 스텝과 배우들에게 이 쇼를 기억할 만한 선물을 하는 게 쇼비즈니스의 전통이다. 우리 팀은 넷플릭스 로고와 쇼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선물로 받았다. 다른 팀은 보통 아이패드를 받을 때도 있고 가방이나 겨울 점퍼 같은 거 받았다고 들었다. 우리가 받은 후드티는 프로덕션에서 준비한 선물이고 프로듀서들은 쇼 로고가 있는 모자를 준비해줬고, 배우들은 쇼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선물해 주었다. 우리 쇼가 마무리한 시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보니 그 외에 보너스나 와인 선물들도 덤으로 받아서 참 훈훈한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날 저녁 전통으로 종방파티가 열리는데 보통 촬영장에서 밥차 같은 거 불러서 할 때도 있지만 우리 쇼는 볼링장을 통째로 빌려서 그 안에서 스텝들이나 배우들이 와서 볼링도 치고 음식과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 풀도록 준비했었다. 가족들과 지인들도 초대해 이 쇼를 무사히 마무리한 모든 스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준비는 프로덕션팀에서 주관하고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관리한다. 선물 포장부터 게스트 리스트, 파티 장소 섭외 및 쇼 로고가 박힌 배너 제작까지 프로덕션이 많이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감독님들 같은 경우 선물을 못 받았다면 집으로 직접 찾아가 선물을 전해주기도 하고 다른 스텝들한테는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미국에서 드라마 촬영은 한 감독이 쭉 끌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고 매회마다 감독이 바뀌다 보니 한 명 한 명 잘 챙겨야 나중에 뒷말이 안 나온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별이 아름다워야 다음이 있는 마련이니까. 이렇게 마지막 종방연까지 끝내고 나면 3주간의 쇼 마무리하는 단계에 돌입한다. 각 부서마다 촬영장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빼주고 사무실을 빼줘야 한다. 보통 우리가 쓰는 촬영장은 다른 쇼가 바로 예약하기 때문에 3주간에 세트를 다 허물고 우리가 썼던 모든 물건들을 빼주어야 한다. 모든 법적 서류들과 스튜디오에서 빌려줬던 컴퓨터와 아이패드, 가구들까지 다 빼줘야 이 쇼가 공식적으로 끝난다.

왼쪽: Show Runner 가 종방연때 기타치면서 노래 부름 / 오른쪽: 크리스마스 시즌때 건물 앞에 데코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

#3 Rate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쇼마다 일하는 보수의 차이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대체로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TV 제작 플랫폼이 영화고 그 다음이 TV Single Camera Show, 그리고 Multi Camera Show, 그다음이 Digital contents 들이다. Single Cam 이란 카메라 한대로 현장과 스튜디오 촬영을 병행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Game of Throne, Modern Family 같은 영화와 다름없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드라마들이다. Multi cam 이란 카메라가 현장에서 3개 정도 있고 동시에 배우들의 마스터 샷, 미디엄숏, 바스트 샷 잡아서 찍는 드라마를 말한다. 대표적인 멀티 캠 드라마로는 Big Bang Theory, Friends 같은 드라마들을 말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멀티 캠 드라마이다. 멀티캠 중에서도 ABC와 같은 방송국 멀티캠 드라마 "Flesh Off the Boat" 나 "Shameless" 같은 드라마는 제작비가 더 많이 드는 걸로 알고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이렇게 많은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각 팀의 막내 보수는 9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거다. 전에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변화의 움직임이 있긴 하나 현장까지 그 변화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TV쇼 "Fresh off the Boat" 같은 경우는 연말 연휴 때문에 프로덕션 막내들이 수입이 없으니까 작가들이랑 프로듀서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한주 월급만큼 줬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쇼에서도 작가들이 돈을 모아서 우리 프로덕션 막내들한테 돈을 나눠 줬고 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렌트비를 감당할 수가 있었다. 미국은 무한경쟁 사회이다 보니 개인주의가 강하고 냉정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따뜻한 사람들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프로듀서 중에 그리고 작가들 중에 명절 연휴 고생하면서 일하는 프로덕션 막내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있으면 그래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보너스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 바닥이 그래도 생각보다 그렇게 야박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우리 팀 작가들 중에도 막내 출신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연말 연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연말 연휴에 받는 보너스는 언제나 옳다.



# Producing 앞으로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

막연하게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왔을 때에는 감독이 되고 싶었고, 영화 공부를 하고 나서는 감독이 내 길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광고 현장과 단편영화를 하면서는 현장을 지휘하는 조감독이 되고 싶었다. 미국에서의 조감독은 감독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조감독으로서만 쭉 일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틀에 박힌 정답은 없지만 내가 만난 조감독들은 대부분 쭉 조감독만 하신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모니터를 보는 일을 평생 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쇼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더 방향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지금은 TV  프로덕션 쪽에서 일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방향은 영화 프로덕션이다. 언젠가는 영화 "Wonder" 나 "Billy Elliot"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게 내 꿈이고 구체적인 방향이다. 나에게는 현장을 지휘하는 역할보다 프로덕션을 서포트하고 관리하는 이 일이 더 재밌고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다. 조감독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스텝들과 조율을 잘해야 하고 스케줄에 맞게 프로덕션을 잘 돌려야 하는데 그게 잘하기가 참 어렵다. 프로듀서나 조감독들이 그 현장의 톤을 정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소리만 지르는 조감독이 있는가 하면 또 부드럽지만 스케줄도 잘 맞추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다. 나는 소리 지르며 윽박지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현장에서 어려움들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프로덕션을 서포트하고 사람을 뽑고 꼼꼼하게 계약서나 서류 관리하는 일이 더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물론 갈길이 멀지만 앞으로 또 10년을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자리 입구쯤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 오래된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그 친구가 그랬다. 20대 초반 작은 방에서 꿈을 꾸며 시나리오 쓰고 감독이 되겠다고 하던 내가 10년 뒤에 진짜로 영화를 찍는 현장에 와있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때 든 생각은 정말 한 우물을 꾸준히 파고 팠더니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랬던 자리에 오게 됐구나였다. 얕게 여러 우물을 파는 사람도 있지만 난 옛날부터 한 우물을 파는 끈기가 좀 있었던 것 같다. 운동회 같은 거 해도 난 장거리를 해서 1등 한 적은 있어도 단거리는 항상 젬병이었다. 그 덕분에 이 꿈을 가지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다. 사실은 그동안 힘들 때마다 나에게 묻고 또 확인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왜 꼭 이 일이 하고 싶은 건지 물었고 이 길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써갔었다. 그러면 너무나 분명하게도 나를 붙잡고 계속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유들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20대 초반부터 이 길 외에는 다른 일이 하고 싶었거나 관심을 가진 일이 없었다. 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고민했었지만 그 큰 틀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감각적으로 뛰어난 천재들을 보면서 내가 이 일을 하기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닌지 의기소침해졌을 때도 있었다. 근데 그때마다 나 스스로 했던 다짐이 10년만 해보자 였다. 정말 10년을 했는데도 재능이 없고 길도 열리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그만둬도 늦지 않다고 나를 달랬다.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파고 꿈을 꾸며 움직였더니 그래도 내가 정말 꿈에 그리는 현장 속 가까이에 들어와 있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참 감사한 10년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정말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빨리 얻었다면 이렇게 매일매일을 감사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나에게 허락된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해서 문득문득 너무 감사하는구나 행복하구나를 느낀다. 내가 얼마나 어렵게 이 자리를 얻었는지를 알고 내가 그 어두움과 기다림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왔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내 주위 사람들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현장에서의 연기들이 극장에서 걸리는 것을 보는 일은 언제나 나에게 전율을 준다. 내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물 내부 사진: 영화 오리지널 카사블랑카 Slate 와 클래식 영화들의 오리지널 필름과 타자기

어쩌면 한참을 돌아서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를 마주한 일도, 그 꿈을 안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도, 늦게 찾아낸 내 적성도, 모든 게 그 과정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큰 구성원중의 한 명으로, 극장에 내 이름이 걸리는 그날까지 열심히 또 10년을 달려보려고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TV 쪽 멀티캠이라는 장르이지만 앞으로는 이 경력들을 거쳐서 영화 제작하는 그 날까지 또 10년이 20년이 걸린다고 해도 그냥 천천히 배우고 경력을 쌓아 가려고 한다. 지금 촬영을 마친 Sunset Bronson Studio를 떠나 다음 주부터 Paramount Studio 촬영장에 입성하게 된다. 그 촬영장은 Forrest Gump 가 촬영했던 장소들도 있고 또 내가 좋아하는 This is Us라는 TV 쇼도 촬영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리고 이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에서만 해도 갓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찾고 있었고 내 돈을 내고 Paramount 스튜디오 투어를 했었는데 1년 뒤인 지금은 당당하게 내 출입증으로 입성할 수 있어서 그냥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표현이 과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일들과 또 쓰고 싶은 소재가 있으면 다시 글을 다시 쓰려한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넷플릭스 건물 뷰 정들었던 이 곳을 이제 떠난다.
앞으로 7개월간 일하게 될 Paramount Pictures 촬영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들게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모두 너무 일찍 자신이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하며 본인의 자질을 의심하면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버티고 또 끊임없이 그 꿈을 향해 움직이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만 꿈을 꾸는 기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계속 꿈을 꾸면서 버티라고 하는 건 어쩌면 너무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응원 같아서 못하겠다. 누구에게나 상황의 변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나 같은 경우에는 감사하게도 늦깎이지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부모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버티라고 하기에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어두운지를 알기에 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 가는 그 10년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완벽하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도록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가끔은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는 걸 내 10년이 증명해준다. 무명을 거친 배우들도 이런 비슷한 말을 하는 걸 인터뷰로 들은 적이 있다. 버티는 사람에게는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의 기회가 올 것이다. 다만 꿈을 이루어가는 기간을 정해놓고 조금은 돌아가더라고 가고 싶은 방향이 확실하다면 어떻게든 그곳까지 도착하시게 되실 거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으시고 후회 없는 선택들을 하시길 바란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시고 따뜻하게 응원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새해에는 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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