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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Feb 14. 2018

서른한 살 미국 학부생으로 영화를 한다는 건

꿈을 향해 산다는 것 

내 나이 만으로는 서른 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 KBS 방송국과 미국 영화 예고편 회사들을 걸쳐 편집자로 일하던 안정된 삶을 정리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보스턴 대학으로 와서 영화전공 학부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지났다.(캘리포니아에서 편입을 했기에 실제로 보스턴에서 생활한지는 만 1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제 벌써 올해 5월이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공부를 쭉 하고 작업 현장에 뛰여 들것인가 아님 나처럼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나도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경험이 많으면 현장에서 편한 부분은 일단 말귀를 잘 알아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한참 어린 (실제로 10살 차이가 난다.) 학생들과 일을 하다 보면 무책임한 모습에, 또 가끔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하는 학생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나름 장점들이 많다. 선생들도 우리 같은 학생들이 책임감도 있고 작업 결과물도 다른 학생들보다 높아서 좋아하신다. 다른 장점은 또 그동안 일했던 경력으로 프리랜서로 일을 구하기가 쉬운 장점이 있다. 내가 가진 경력으로 보스턴에 온 이래 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영화 관련 현장도 있지만 사소한 conference 나 웨딩, 학교 이벤트 촬영이 다였지만 근근이 살아갈 용돈 벌이는 충분했다. 


내가 학교를 다시 돌아온 이유는 미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고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 등 전방위적인 지식을 쌓지 않는다면 내가 그냥 technician으로만 끝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기술자로 일한다는 것 또한 벌이도 대우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미국이 그리고 영화판이 아무리 졸업장보다 경력 위주라고 하지만 높은 위치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무시할 수 없는 게 학력임을 실감했다. 실제로 내가 일한 5년 동안 이력서에서 학력 부분은 항상 맨 하단 마지막 줄에 있었다. 가까운 경력 위주로 위로부터 아래로 쭉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력서를 작성했었다. 그래서 기본으로 학사 학위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오랜 고민 끝에 안정적인 생활을 박차고 돌아왔다. 


그런데 늦게 공부하고 현장에서 뛰려고 보니까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아무리 내가 열정이 뛰어나고 어린 친구들보다 잘한다고 해도 하나 못 따라가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체력이다. 밤샘을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는 해도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 paper 더미 속에서 내 개인적인 삶,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는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쉬어버리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그 시간 뒤에는 몰려오는 죄책감과 괴리감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 나이에 공부하는데... 그리고 아직도 이 나이에 부모님한테 손 내밀어야 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특히 내 또래 친구들은 돈을 모아서 집을 샀네 여행을 다니네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또한 흔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격지심은 내가 비틀거릴 때마다 나를 잡아주고 내 맘대로 회복되지 않는 머리와 육체를 이겨서 싸워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비난할 수도 있다. 그래도 넌 네가 좋아하는 공부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냐고 배부른 투정 좀 그만 부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군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꿈을 쫓아가는 사람도 때로는 지친다. 이 길이 분명 내가 좋아서 가는 길인데도 그 과정은 힘들 때가 있다. 다만 영화 만드는 모든 창작과정이 고통처럼 느껴지다가도 다 만들고 나서의 희열이 있기에 다시 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길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보적이 없다. 이 필드 안에서 어느 정도 다른 길을 가보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이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편집일을 했지만 지금은 제작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런 삶을 살다 보니 그 어떤 누구의 선택과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자신이 맞다고 믿는 그 길을 꾸준히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내 나이 서른, 어쩌면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 것일 수도 있다. 이제야 학부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월에 헛된 시간이 없었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들 속에서도 나만의 타임라인에 맞게 꾸준히 열심히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자리에 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글은 나에게 또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많다고 놀림받을 수 있고 체력이 달려서 남들보다 회복이 느려도 즐겁게 내일을 준비하면서 산다면 이 시간들은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나이 그깟 서른이 뭐 대수냐고 말하고 싶지만 가끔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웃픈 상황들도 있기에 쉽게 말은 못 하겠다. 그냥 달팽이처럼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라고 조용히 응원해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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