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Next step 위해 준비해야 할 때
지금 일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이제 중후반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젠 슬슬 다음 프로젝트가 들어오거나 컨펌이 나면 좋은데 고민이 많아졌다.
내 사수들은 아직 쇼가 끝나기 전인데도 벌써 다음 작품을 결정지어서 연말 연휴의 휴식을 마치고 바로
새 쇼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일이 끝나기 전에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행운이 왔으면 좋겠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다른 회사에서 오퍼를 받기는 했지만 그 길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은 아니라서 안정적인 길을 택해야 하는지 아님 또다시 멘땅에 헤딩하듯이 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서게 됐다.
언제쯤 우리는 이 고민 앞에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을가? 생계가 달려 있으니 항상 쉽지가 않다.
들어온 오퍼는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쯤에 들어왔었다.
디즈니에서 일하는 친한 언니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예고편 회사 사장을 연결시켜주어서 인터뷰 겸 면담하러 갔었다. 캐주얼 면담 같은 거지만 사실상 면접이다 보니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연말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넷플렉스에 발이 묶였고 옮길 의향이 없다는 건 의사전달을 한 상태라 사실은 어떤 대화들이 오고갈지 기대하는 마음이 컸었다. 면접 대신 이런 면담은 나도 처음이니까 말이다. 일단 회사 자체는 업계 사람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회사였다. 주로 영화 예고편 Finishing만 하는 회사였는데 거의 메이저급 영화들만 하다 보니 웹사이트에 들어가도 주로 메이저급 영화사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고만 돼있었다. 회사 CFO과 독대하는 기회는 쉽지 않은 것이고 그분도 자기와 독대하는 20분이 하늘에 별따기지만 친한 언니가 나에 대해 좋게 말해준 덕분에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다. 40대 후반인 사장님은 자기 색갈이 확실하신 분이었다. 자기 경영 철학 그리고 이 일을 대하는 태도나 자기 직원을 생각하는 마음이 유독 인상 깊었다. 자기도 영화 연출부 출신이고 지금도 그 스토리텔링의 매력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네 회사는 스토리 텔링보다는 다 마무리된 작업물에 극장에 걸리기 전에 혹은 티비로 방영이 되기 전에 마지막 믹싱과 영상 Finishing 하는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한 사람이 여러 프로젝트를 담당해서 여러 스튜디오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비전 회사에 대한 비전과 나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상보다 더 길게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만약에 이 회사에 오면 어떤 자리에 어떤 역할들을 하면서 일을 했으면 좋을지에 대해서 다음 미팅 전까지 심사숙고해보라고 했다. 물론 지금 하는 티브이 프로덕션에서도 인맥을 쌓을 수 있지만 그 회사에 가면 메이저급 영화사와 같이 협업을 하다 보면 나에게도 인맥을 쌓는 좋은 기회가 될 거고 그 회사가 내가 꼭 일하고 싶은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11월에 다시 한번 보자고 미팅을 마무리했다. 대화는 생각보다 유쾌했고 그 사람의 생각과 나의 목표에 대해 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유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회사 구경도 시켜주고 그곳에서 일하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배려까지 보여주셨다. 그날은 뭔가 얼떨떨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날이었다. 친한 언니의 덕분에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잠깐 설레었지만 들뜬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진정 원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하고 말이다.
내가 그 회사에서 간다고 한다면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해서 생각 해봤다. 인맥을 쌓을 수 있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어렵게 들어온 TV 쪽을 떠나 다시 예고편 회사 쪽으로 간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일했던 미국 회사가 예고편 회사였으니 그 바닥 업무환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면담이 끝나고 회사 사수와도 고민을 나누었는데 사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이 TV 쪽에 발 들이기가 정말 어렵다고 한다.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도 적어도 쇼를 3, 4개는 거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나처럼 쇼에 일한 경력이 없는 사람이 들어온 건 사실 되게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나 같은 경우는 프로듀서가 직접 연결시켜준거라 UPM도 큰 의심없이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사수의 말을 빌리자면 일단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우리 같은 프로덕션 막내들은 이 쇼에서 다음 쇼에 옮겨 다니는 건 정말 쉬운 일이라고 한다. 나는 1년이라는 시간을 부지런히 프리랜서로 뛰면서 정말 열심히 해서 겨우 들어왔는데 뭐가 자꾸 쉽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ㅠㅠ 다행히 스트디오에서도 한번 일했던 사람들과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게 첫 쇼이고 아직 인맥도 많지 않은데 자꾸 쉽다고 하니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기가 연말에 쇼가 이미 결정됐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도 귀띔해줬다. 내가 미국에서 일하면서 느낀 가장 좋은 장점은 정말 이 곳은 일하는 와중에 좋은 일 오퍼가 오면 상사와 이야기하고 면접 보러 간다. 정말 컬처쇼크이지 않을 수 없다.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내가 정말 즐겨보는 "How to Get Away with a Murderer"라는 쇼에서 2년간 일했는데 그 팀의 작가 어시로 인터뷰가 잡혔는데 상사한테 양해를 구하고 근무시간에 면접 보러 다녀왔다. 최종적으로는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그렇게 이직이 된다고 해도 마지막 축하파티까지 열어줘서 축복하면서 보내준다. 나도 근무시간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내 면접을 다녀올 수 있게 해 줬고 면접 뒤에도 이렇게 진솔한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팀을 만나는 건 참 어렵다고 하는데 처음 쇼를 겪는 내가 이런 팀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다. 모든 팀 멤버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그 날이면 작은 케이크와 함께 전체 작가들, 프로듀서들, 직원들이 다 나와 축하해주는 일만 봐도 정말 좋은 일터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마다 우리가 관객들을 불러다가 라이브 쇼를 진행하는데 그 뒤에 남은 와인을 한잔씩 하면서 프로듀서들과 "우먼파워 인 할리우드"하면서 잠깐의 여유를 부리는 일도 행복한 일중에 하나이다. 총괄 프로듀서 (UPM)과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그리고 막내인 나까지 여자 비율은 전체 200명 스텝 중에 고작 30명쯤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진 모두 백인 남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프로덕션을 꿎꿎이 버티고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동지들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중요하다. 내가 내 사수를 따라서 다음 작품에도 같이 일하고 싶은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상사가 일하는 환경의 톤을 잡아준다고 생각한다. 상사가 유쾌하고 정확하고 친절하면 그 팀의 분위기도 비슷한 바이브로 흘러가게 돼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무실과 현장을 누비며 콘텐츠를 만드는 이 작업 과정이 정말 내가 원하는 자리임을 이 일을 통해 확인했다. 너무 현장에만 있으면 쉽게 지치지만 사무실과 현장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미친 듯이 바빠도 조금의 밸런스가 되는 느낌이랄가. 암튼 그러다 보니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해도 가끔은 궂은일을 해도 이 과정이 다 필요하고 다들 이렇게 다 시작하는 거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임할 수가 있다. 나의 최종목표는 이렇게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서 TV 쪽보다는 영화판 UPM으로 일하는게 내 목표다.
그럼 UPM(Unit Project Manageer/Producer)는 어떻게 되는가? 내 사수가 설명하기론 프로덕션 막내로 시작해서 Production Assistant - Assistant of Production Coordinator - Production Coordinator - Associate Producer - UPM. 이런 순서로 가게 되는데 막내에서 그 윗단계로 오르긴 쉽다고 한다. 쇼 몇 개만 거치면 바로 점프할 수 있지만 문제는 Associate Producer부터 UPM이 되기까지는 한 7-10년이 걸린다. 나를 이 일자리에 소개해준 분 즉 Associate producer는 그 직함으로 일한 지 벌써 8년째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은 같은 UPM과 같이 팀을 이루어 일하게 된다. 올해 초에는 Nickelodeon 쇼에서 일했고 후반에는 지금 Netflix에서 일을 하니 일 년에 두 쇼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막내들은 이 쇼에서 저 쇼로 쉽게 옮길 때도 많다. 경력에 도움이 되거나 월급이 인상 된다고 하면 얼마든지 이 쇼에서 저 쇼로 옮겨다니면서 일 년에 3-4개는 할 수가 있다. 다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빨리 승급할 수가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 UPM 같은 경우는 사람을 빨리 승급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3년이나 막내로 일하게 놔둔 적도 있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적절한 시간은 1년에서 2년 사이에는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로 올라가야 하는 게 맞는데 그런 같은 마인드를 가진 상사를 만나야 빨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 사수도 막내일 때 한시도 편히 쉬지 않고 발등에 불이 나게 일했다고 한다. 할 일이 없으면 주방이라도 청소하고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안보는 것 같아도 다들 보고 있으며 왜 저 친구만 항상 주방을 청소하고 가꾸지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성실하게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 기억을 했다가 다시 다른 쇼가 있을 때 부르게 된다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승급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물론 타이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직급이 받는 보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Wage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막내가 받은 월급은 시간당으로 계산한다. 8시간 이상이면 오버타임이고 10시간 이상이면 1.5배, 12시간 이상이면 2배로 된다. 하지만 Production Coordinator부터는 월급제이다. 한주에 얼마를 받아가는 식이라 야근수당이 주어지지 않는다. 각 팀의 막내들의 월급은 그 윗사람보다 월등이 낮은 편이라 다들 렌트비 내고 학자금 대출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막내들의 월급을 인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로덕션 막내들만 가입하는 Union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감독들, 촬영감독들, 작가들, 심지어 헤어&메이컵, 의상 담당자들도 다 노조가 있는데 유독 팀의 막내들만 노조는 없다. 막내들이 일하는 시간들, 처리해야 할 업무량 이라든지 모든 게 생각보다 훨씬 험하지만 전혀 보호해줄 수 있는 노조가 없다. 그러다 보니 부정당한 근무시간과 업무량을 버텨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팀 막내들은 월급이 90년대로부터 변한 게 없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그렇게 막내 생활을 버티고 버텨서 위로 올라간다. 나도 한동안은 이 막내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 내 경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렌트비에 학자금에 다 내고 나면 오히려 마이나스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버티는 이유는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버티고 나면 그래도 내 사수처럼 형편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수가 얼마를 받고 디즈니에서 일하는 친한 언니의 월급이 얼마인지를 안다.
그러니 그 자리까지 가기 전까지는 그냥 눈 딱 감고 버티자는 생각이다.
할리우드 수익구조는 빈부격차가 심하다. 작가들은 한 회당 그리고 또 한 주당 막내들의 한 달치 월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가져가고 배우들도 이름이 있는 배우가 아닌 이상 배고픔의 연속을 버텨내야 한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배우가 다들 우버택시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그 월급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팀에 Stand in으로 일하던 배우가 작은 역할을 따냈을 때 작가들, 프로듀서들에게 선물을 다 돌린 것도 그만큼 배역을 따내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고마워서이다. 작은 역할이지만 이렇게 선물을 돌림으로 인해 작가들이 자기 이름을 한번 더 기억해 주기를 바래서이다. 어떤 배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음날 마블 영화 "샹치"에 캐스팅돼서 투어를 다니게 되는 큰 행운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몇 년을 이런 생활을 견뎌내야 겨우 작은 배역 하나를 따낸다. 그 어마어마한 갭 차이와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그 수입 자체가 나에게 실감이 잘 나지를 않을 때가 많다. 나는 그냥 큰 욕심 없이 자급자족하고 내 가족들과 나에게 때마다 작은 선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벌 수 있다면 좋겠는데 워낙에 엘에이가 살기에 비싼 동네다 보니 항상 빠듯하다. 그래도 가끔 사이드로 들어오는 프로젝트들을 해야 겨우 작은 사치를 부릴 여유가 생긴다.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매일 기쁘게 그리고 매일 조금씩 성장하면서 일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기회를 봐서 사수와 다음 작품 이야기를 한번 꺼내볼 생각이다. 그리고 슬슬 이력서도 돌리면서 준비해야 한다. 다시는 지난 1년의 시간처럼 불안해하면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퍼 받았던 그 회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자신 있어서거나 돈의 여유가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발전하고 싶은 이곳에서 계속 경력을 쌓아야지 길게 봤을 때 나에게 결국은 도움이 되는 길이기에 이런 선택을 한다. 이 일이 끝나고 바로 일이 연결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난 다시 백수로 돌아간다. 1년 동안 프리랜서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그 기억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내 지금 선택이 후회 없기를 바라면서 다시 맨땅에 헤딩을 해보려고 한다. 오늘 이 선택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나에게 옳은 선택이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오늘도 긴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올리는 글에서는 프로젝트를 정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제가 일하는 환경이 궁금하실 것 같이 몇장 올려봅니다.
왼쪽:넷플릭스 오리지널 팀에서 라이브쇼때 먹는 메뉴, 중간: 촬영스테이지, 오른쪽: 작가들, 프로듀서, 프로덕션 팀이 일하는 건물 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