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이양 Sep 26.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8

아직도 미생, 아직은 어설프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 쇼에 취직이 된 지 어언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 팀에 합류하고 나서 우리 Production Assistant 팀원 중 한 명은 잘렸고

다른 한 명은 학교로 돌아가야 돼서 그만두고 나니 3주 만에 내가 제일 선임이 되었어요.

그렇잖아도 모르는 것도 많고 아직 어설픈데 모두들 나한테 질문을 하니 참 난감하기도 했었지만

고민할 시간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어느새 안정적인 업무환경 기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느낀 건 아직도 내가 갈길이 멀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은 나의 영어실력도, 업무능력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아서 이 큰 쇼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게 되었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면 그리고 사람들과 자신감 있게 소통하고

그곳의 완벽한 일원이 되려면 지금의 실력 가지고는

프로덕션 막내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음을 느꼈습니다.  


넷플릭스 본사 빌딩, 매주 화요일에 오는 커피트럭, 세트장과 대본리딩 현장 스틸


일단 첫 번째로 영어의 문제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부분의 문서상의 영어는 일단은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

혹시라고 모르는 단어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찾아보면 그뿐이니까요.

하지만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로 하는 업무영어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전화로 말하면 정말 잘 못 알아듣겠단 말이에요.

정말 간단한 심부름이었는데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묻거나 해야 할 때에는

정말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한 생황 영어들도 헷갈리거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문제는 이들이 내가 틀려도 절대 고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 그냥 틀리게 말하는구나 라고 넘기지 애정을 갖고 고쳐주지는 않죠.

이들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남의 사생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엄청 친절하고 웃고 같이 떠들고 하지만

사생활에 대한 부분은 실레가 된다고 생각해 그런지 잘 묻지도 관심도 가지는 편이 아닌 거죠.  

가끔이 이런 점이 인간관계를 맺어감에 있어 정말 편한 것도 있지만

또 조금은 정 없어 보이기도 하는 건 사실입니다.

한국은 또 그 거리가 너무 좁아서 숨 막히고 힘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니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저는 이런 일하는 관계가 훨씬 깔끔하고 신경이 덜 쓰여서 편하고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몇 안 되는 아시안이다 보니

가끔은 아 이 사람이 내가 초보라서 그러나 아님 아시안이라 그러나 싶을 정도로 행동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우리 팀의 전체 간식을 담당하는 분이 우리 팀의 백인 여자애한테는 먼저 인사도 하고 정말 살갑게 대하는데

나한테는 별로 안 좋은 태도와 성의 없는 인사로 대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흠... 두 번 생각하게 되지만

암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면서 넘기는 편이에요.

그 대신 우리 팀원들 중 내 사수는 아시안인데 이분은 완벽한 영어와 업무능력, 및 사교 능력을 지녀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장점은 정말 유치원 아이 가르치듯이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서 내가 실수를 하지 않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일에도 칭찬을 잘하고 부드러우며 절대 아랫사람들의 공을 가로채지 않는다는 것이 아주 큰 장점이죠. 내 사수가 모시는 프로듀서가 총괄 프로듀서인데 이 프로듀서에게 필요한 작은 업무를 내가 맡아서 하고 나서 꼭 직접 저더러 업무보고를 하게 하고 옆에서 이 친구가 잘 해냈다고 거들어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때 이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구나를 느꼈습니다. 사실 쉬운 일처럼 보여도 이 쉬운 일을 안 지키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에서처럼 요즘은 정확한 사람이 착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일한 만큼의 보수를 주고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남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고 또 가로채지도 않는 정직하게 일을 일로만 대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거지만 잘 지켜지지가 않아 대단한 일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 사수는 내가 멘토처럼 많이 따르게 될 것 같은 사람입니다. 다행히 큰 쇼에 처음으로 만난 사수가 이런 사수라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정말 좋아서 말로만 듣던 이 바닥도 그리 듣던 것처럼 험하지만은 아닌가 라며 생각하지만 앞으로 더 길게 봐야 하겠죠? ^^


둘째 나의 업무능력이라 함은 세상에는 정말 작은 일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단순 노동 같아도, 별로 중요한 일 같지 않는 일들처럼 보여도 모두 중요하고 모두 꼼꼼하게 해내야 하는 일들임을 이번에 잘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Production Assistant로 일하면서 보는 업무는 주로 아래 몇 가지가 있는데요.

 

1. 작가들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200명 가까이 되는 스텝들에게 시나리오 복사 및 전달하기

2. 프로덕션에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고 사러 가기

3. 작가들, 프로듀서들의 점심 및 저녁 픽업 가기

4. 영수증 붙이기 등등 사무실 잡일들을 보기

5. 프로덕션 미팅과 대본 리딩 세팅 및 촬영하기

6. 촬영 일지 만들기

7. 배우들 계약서 및 다른 프로덕션 계약서 정리하기 등등

8. 작가들, 프로듀서들의 취향에 맞는 간식 및 음료 주방에 매주 채워 넣기


이 일들을 하면서 보고 배운 것은 큰 프로덕션 일 수록 정말 디테일하게 관리하는구나 였습니다.

배우들은 무조건 발레파킹 시켜주고 감독은 촬영장과 가까운 곳에 파킹 자리를 내어주고

작가들, 프로듀서들의 취향에 맞게 점심을 꼼꼼히 체크해서 주문하고

음식을 찾을 때에는 하나라도 빠지지 않게 잘 체크하는 것과

서류를 정리함에 있어서도 주어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파일 정리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 위에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People Skill"인데

이것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어쩌면 Next job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태도"더라고요.

빠릿빠릿하게 자기 일을 꼼꼼히 실수 없이 빨리 처리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와 어울리기에 편한 사람들을 선호하더라고요.

실력이 뛰어나도 같이 어울리기 힘들고 can not take the direction 한다면

같이 오래 일하기는 어렵겠죠. 내가 들어오자마자 잘린 사람도 그래서 잘렸습니다.

원래는 이 쇼의 프로듀서의 소개로 들어온 사람인데 업무태만과 불성실한 태도로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일하던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이직을 선택하게 만들었고

윗선에서도 자르고 싶었으나 프로듀서와의 관계 때문에 바로 자르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2달을 못 버티고 자르기로 최종 결정이 났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같이 일할 때는 다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긴 하나

이들의 경력과 이들의 수입을 생각하면 아 정말 나랑은 다른 세계사람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희 프로듀서 중 한 분은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프렌즈"의 프로듀서였고

아까 위에서 이야기했던 책임자 UPM/Producer는 내가 태어난 해부터 이미 프로듀서로 일을 했으니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는 것이고 내가 매일과 같이 인사하고 마주치는 작가들은 한 회당 어마어마한 수입을 받으면서 일하는 정말 한마디로 "그들이 사는 세상" 그 자체였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인데 다들 자기 이름 걸고 일하는 완전한 프로 들인 셈이죠.


세 번째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잘 Mingle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요.


저희 팀에 작가들만 거의 10명 넘게 되는데 보통 일하는 방식은 같은 방에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그 에피소드의 메인 작가가 중간에 앉고 다른 작가들이 옆으로 둘러앉아 같이 의견을 내고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으로 일을 합니다. 우리 팀은 유독 여자 작가들이 많은 편인데 지난주 정말 보고 싶은 영화 "Hustlers"를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같이 나갔었는데요. 일단은 영화 시작하기 전 대기시간에 Bar에 잠깐 들러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어색할 수가... 간단하게 서로의 호구조사를 하고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고 싶었으나 이게 문화가 달라서 인지 정말이지 자연스러워지지가 않은 거예요. 이런 일상적인 대화들이 자연스러워지려면 진짜 미국인과 사귀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내 울타리에만 갇혀서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금방 들어온 백인 얘는 처음 본 사람들과도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화기애애하게 잘도 하던데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상냥하게 웃을 뿐 잘 어울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참... 내가 편한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데 아무래도 같은 직장동료이고 상사이고 아직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니 아직은 많이 어색한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 girl's night out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은 작가들이 나의 영화티켓값을 내줬는데 이게 보통 말하지는 않지만 그냥 룰처럼 지켜지는 전통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 전통이라 함은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과 같이 나가서 놀고먹고 할 때 보통은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이 돈을 낸다고 하더라고요. Bar에서도 영화티켓도 돈을 많이 버는 작가 두 명이 냈고 팀 막내인 우리는 뭐라도 사고 싶었지만 다들 못 내게 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이튿날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니 그게 이 바닥의 전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원래 다들 이렇게 하는구나. 어디서부터 유래된 룰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은 룰인 것 같습니다. ^^


그동안은 7-8만 불 정도 되는 예산의 단편 및 광고 촬영만 하다가

한 회당 25만 불 때쯤 되는 쇼에 참여하게 되니 무언가 내가 원래 일하던 boundary를 훨씬 넘긴 일이라

매일 배울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 미생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일하러 오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 영화 쪽이나 티브이 쪽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월급이 한주에 한 번씩 나오는데 매주 나오는 그 월급이 있는 것도 참 감사하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한테 드릴수 있는 용돈이 있다는 게

그리고 부모님이든 나한테든 작은 선물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영화 바닥이 험하고 질 안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좋은 사수 만나고

좋은 팀을 만나서 좋은 업무환경에서 일할수 있음에도 너무 감사한 요즘입니다.

매일매일 바쁘게 하루가 지나가고 지금도 저녁 10시 반인데 이번회 시나리오가 이제야 완성이 돼서 야근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 평범한 일상이 주는 평화에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끼며 요즘은 살고 있답니다.

아직은 영어도, 실력도 부족한 미생이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조금씩 배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노력의 시간 끝에 언젠가는 나도 나의 사수 같은 그리고 그 너그러운 총괄 프로듀서 같은 자리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천천히 하지만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