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이양 Aug 26.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 7

프리랜서의 삶

오늘은 영화를 하고 있는 나의 프리랜서 삶, 그리고 나의 동료들의 프리랜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들어가는 바람에 경황에 없어서 글 올리는 것도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새로 들어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글 끝부분에 가서 더 자세히 나누겠습니다. 우리 프리랜서의 삶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가끔은 심리적으로도 불안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 꿈을 향해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노력하는 이 모든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낭만스럽게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 나 자신을 이렇게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며 이 길을 가고 있지만)  그래도 통장잔고가 바닥이 나고 당장 갚아야 할 지난달 카드 빚 같은 현실을 마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이 프리랜서의 숙명이 참으로 참담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꿈을 좇아 사는 것은 어쩌면 가난을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아직은 내가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돼서 초보여서 가난한 거일 수도 있겠고요.


오늘도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과 모여 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몇 달 전 같이 일을 했던 Production Assistant를 이번에 제가 맡은 프로젝트에 불러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는 원래 브라질에서 카메라 감독을 하던 친구라는 것입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죠. 몇 달 전 AFI 단편영화 촬영장에서 저는 두 번째 조감독이었고 이 친구는 이틀만 나오는 PA 였는데 일을 너무나 빠릿빠릿하게 잘하고 태도도 좋았던 기억이 나서 이번 프로젝트에도 부르게 되었는데 이력서를 받고 보니 이 친구의 경력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브라질에서는 이미 몇 편의 영화나 광고를 만들었던 촬영감독인데 엘에이로 오면서 인맥도 쌓을 겸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그때 우리가 단편영화 현장에서 만났던 거죠. 저도 그때는 페이가 없는 상태로 그 단편에 참여한 거고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죠. 그 뒤로 다행히 저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통해 돈이 되는 일들을 받았고 공짜로 일하는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하다 보니 단편 현장에서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었던 거죠.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물었더니 그동안 자기도 바쁘게 지냈고 미국으로 와서 처음 한 일이 저랑 만난 그 단편영화 현장이었고 그때의 인연이 좋아서 오늘 할 일이 프로덕션 막내 포지션이지만 참여하기로 했다는 거예요. 오늘은 내가 불러서 프로덕션 막내로 일을 하지만 다음 달은 브라질에 촬영 일정이 있어서 간다는 거예요. 그것도 무려 촬영감독으로 말이에요. 그래도 오늘 이 만남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고 느껴던 게 오늘 우리 촬영을 맡았던 촬영감독님이 또 일을 엄청나게 많이 하시는 분이라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번호를 교환하게 되었으니 그 친구에게도 이 일은 그냥 온 일이지만 또 다른 일로 연결이 되는 그런 감사할 수 있는 자리인 셈이 된 거죠.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일이 연결되는 게 이 바닥의 생존 방식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일을 하다 보면 정말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한지만 같이 어울리기 좋은 사람인가, 그리고 태도가 좋은가, 성실한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한번 일해서 좋았던 사람들은 그 뒤로도 쭉 팀으로 같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이 친구가 저의 첫 번째 초이스는 아녔습니다. 다른 프로덕션 막내를 고용하려고 했던 친구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급하게 대타로 부른 건데 이 인연이 이 친구에게는 또 다른 일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아 내가 처음에 부르려고 했던 그 친구는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을 상상도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저에게도 새 일을 연결시켜줬고 그 안에서 서로가 다 아는 사이고 언제든지 새 프로젝트에 불러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같이 일했던 현장에서 만난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새로운 일을 연결해줄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인연이라는 게 그리고 만남이라는 게 참 묘한 것 같습니다. 누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회가 스쳐갔고 누구는 기대하지 않고 왔다가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갔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어떤 자리에 있던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누군가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다음에 자기 프로젝트가 있을 때 불러서 함께 일하게 되는 거죠. 오늘 제가 이 친구를 기억하고 다시 불렀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이번에 장기 프로젝트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인연도 참 감사해 던 게 올해 3월 초에 아이를 입양하는 캠페인 광고를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딱 하루 촬영뿐이었고 저는 이 촬영에서  Key Production Assistant를 맡았었죠. 그날은 아침부터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Crafty( 간식) 테이블은 비바람에 날아가고 내가 주문한 스텝들의 점심은 픽업을 간 막내가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될 뻔했고 내 바로 윗 사수였던 두 번째 조감독은 비 오는 날에 우비도 챙겨 오지 않아 스웨터가 폴싹 젖어서 자신이 아프다고 집에 가겠다고 하는 황당하고 정신없는 촬영장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고 내가 새로 뽑은 차는 프로덕션 막내가 몰고 나갔다가 흠집을 내서 돌아와 저한테는 뭔가 참 어려웠던 촬영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고 성실하게 내 맡은 바 임무를 다 완성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기특해서였던지 저를 고용했던 프로듀서는 그날 내가 받기로 한 Rate의 1.5배로 주면서 고생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에 그 종이에 적힌 액수를 봤는데 내가 상상했던 액수보다 훨씬 큰 액수였어요. 지금까지도 일하면서도 그날 하루 받은 액수가 제일 큰 일당인 만큼 그날 제가 받은 액수는 제 사수(두 번째 조감독) 보다도 더 높은 액수였습니다. 그리고 차에 흠집이 난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 미안하다고 하면서 모두 배상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결국에는 다 보상받지 않고 조금만 받는 걸로 마무리했지만 그래도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거에 대해서 남 탓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 태도로 바로 뒤처리를 해주는 모습에 감동했었습니다. 그렇게 이 사람들과 첫 인연을 맺었는데 그 마무리를 정말 잘해주었고 일한 만큼 보상해주는 것과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들이라 아 처음으로 이 일을 하는 게 힘들어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그래도 일한 보람을 느낄 수가 있구나를 느꼈었었습니다. 그 뒤로 이들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종종 나를 불렀고 오늘까지 같이 한 프로젝트가 4-5개가 되는 인연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팀은 항상 같은 촬영감독과 포토그래퍼를 쓰다 보니 이제는 이 팀을 만나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팀워크가 좋고 편안한 사이가 되었죠.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더 감사한 일은  처음에 나를 고용했던 여자 프로듀서의 남편이 큰 쇼에서 일하는 프로듀서인데 이번에 넷플렉스 시트콤을 맡게 되었는데 마침 프로덕션이 막내가 필요했고 그 와이프 추천으로 저는 넷플릭스 쇼를 담당하는 팀이랑 인터뷰를 가졌고 결국 그게 제가 앞으로 몇 달 동안 할 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주부터 촬영을 시작한 새 넷플렉스 시트콤 The Expand Universe of Ashley Garcia 팀에서 프로덕션 막내로 넷플릭스 본사가 있는 Sunset Bronson Studio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보러 갔을 때에도 이미 아내한테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남편인 프로듀서가 말했고 그 윗선의 사람들도 모두 다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인터뷰는 사실상 내가 바보 멍청이 같은 대답만 하지 않으면 그냥 프리패스할 수 있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도 보았었죠. 사실 Netflix는 정말 제가 일하고 싶은 회사여서 제가 수도 없이 이력서를 뿌렸던 곳입니다. 그 높은 장벽을 뚫을 수가 없어서 그 앞을 지나가면서 여기서 일하면 참 좋겠는데 라고 속앓이만 했던 회사이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렇듯 연초에 맺은 인연이 지금 나에게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이어 줄 거라고는 그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 사진과 이름이 박힌 사원증과 주차장 패스를 받아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그 길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정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모든 취준생이 그러하듯 내 이름을 가진 사원증을 받기까지 정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이 있었는지는 다들 이해하실 거라 믿어요. 저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일 년 동안 이력서 500장은 넘게 보냈거든요. 매번 인터뷰에서도 최종으로 가지 못했고 간간히 하고 있는 광고 촬영으로 생계를 유지했었고요. 그런 모든 고생 끝에 드디어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에 한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페이도 상관없고 고된 일정도 다 감사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아직은 프로덕션 막내이지만 그래도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이 고돼도 너무 기쁩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보고 배우는 이 시간이 그리고 몇백 명이 붙어서 일하는 쇼에 내가 한 일원으로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촬영 스튜디오들이 즐비한 넷플릭스 본사 건물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을 감격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프로덕션 막내라 몸이 고된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배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발이 불어 터져라 걸어도 행복하더라고요. 실제로 너무 걸어서 발에 물집이 잡혀 저녁에 집에 오면 발바닥이 불이 날 것 같을 때도 많습니다. 하루에 만 오천 보는 기본으로 걸으니 불어 터질 수밖에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영화 일을 내가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랑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직은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힘든 날들도 있겠죠.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도 힘들게 버티고 가난했던 프리랜서 때를 기억하고 오늘 하루의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해봅니다.


우리 모두가 프리랜서로써 불안하게 때로는 조급한 마음으로 다음 일이 연결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근데 그렇게 작은 움직임이라도 하고 있으면 그것이 어떤 좋은 인연으로 나를 성장시켜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앞으로 나아가길 멈추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저도 그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통장잔고가 바닥이 나 학자금도 못 내고 카드에 수수료 붙은 적도 많았고요. 일은 했는데 그 돈이 한 달 뒤에 들어오는 거라 발을 동동 구른 적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인맥을 쌓고 영어라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돈이 안 되는 일을 12시간 넘게 하면서 애써 웃은 적도 많았고 하루에 정말 밥 한 끼 값에도 일을 하겠다고 나갔다가 이상한 컨섭을 찍는 감독을 만나 된통 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몇몇 이상한 사람들을 빼고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고 오늘 이 일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저의 일년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웃으며 누렸던 기쁨의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닥이 넓은 것 같아도 한 다리 건너면 다들 아는 사이 임을 요즘 들어 더 실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이력서만으로 뚫으려 했던 그 높은 장벽은 애초에 그렇게 뚫을 수 있는 장벽 아니었고 인사이드에서 이렇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이번에 더 실감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경로로 일을 새로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 대로 생각해야겠지만 그래도 절대 내부인의 소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 것임을 이번에 경험했습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나니 더 실감이 나는 듯합니다. 이번에 새로 만난 나의 동료도 새엄마의 친구가 넷플렉스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 일에 고용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아름아름 인맥을 쌓아가면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다 보면 오늘 만난 그 촬영감독인 친구도 저도 시간이 조금은 걸려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자리에 가 있을 수 있지 않을 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모든 프리랜서 분들, 남들 성공하는 것, 남들이 나보다 더 빨리 치고 나아가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나의 페이스대로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 나간다면 몇 년이 지난 뒤에는 나도 남들이 봤을 때 성장했구나를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까지 갈 수 있으니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가끔은 그 비루한 일상이 아주 보잘것없는 일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이죠. 제가 이제 이 쇼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맡은 이상 몇 개월은 이 일에 매달릴 것 같아 예전처럼 한주에 한편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충들, 고민들 그리고 생생한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큰 프로젝트 안에서 프로덕션 막내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최대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이 조금 늦어지더라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이해해 주시면 더 풍성하고 생생한 현장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프리랜서들이여! 파이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