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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16.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 6

스크립 breakdown

시나리오가 다 완성되고 나면 프로덕션 팀은 본격적으로 촬영 준비에 매진하게 되는데요. 이 단계서부터는 모든 부서가 무한 회의와 수정이 오고 가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한 씬 한씬을 보면서 각 씬의 촬영 장소, 캐스팅, 촬영장비, 소품, 의상, 헤어& 메이컵 등 자세한 내용들을 기입하고 나열하게 됩니다. 아래 첨부한 시트에 이렇게 하나하나 아날로그식으로 한 씬 한 씬 적어 나가는 것도 있고 요즘은 컴퓨터로 Final Draft Tagger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각 항목별 색깔을 넣어 각 씬의 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이야기 하기보다 유튜브에도 잘 나와 있어요. 저는 이분 영상이 자세하게 잘 설명해주어서 좋더라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훨씬 쉬우실 겁니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IMep2s_T89c 

Script Breakdown Sheet

이제부터는 제가 겪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올해 초 장편영화 제의가 들어와 미팅을 몇 번 가진 뒤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될뻔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저는 빠지고 그 팀은 지금 촬영을 한참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팀이랑 결과적으로 일을 하지 않게 된 제일 큰 문제는 예산 문제와 법적인 모든 준비가 안된 것 같아서였습니다. 보통 단편영화 15분짜리 영화를 제작할 때 드는 예산이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AFI학생 영화 수준에 단편은 어림잡아도 2만 불-7만 불 사이가 되는데 이 장편영화 EP님은 5만 불에 65분짜리 장편을 찍으려고 하셨었죠. 저도 이왕이면 장편으로 데뷔하고 싶었고 적은 돈이지만 함께 으쌰 으쌰 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뛰어들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나리오 수정 단계부터 4-5시간은 기본으로 감독님, 작가님, 프로듀서님과의 회의가 진행이 됐고 어느 정도 시나리오는 만족할 만큼까지 수정해 나갈 때쯤 저는 이제 슬슬 프로덕션 준비도 함께 해야 돼서 프로덕션 전에 제작팀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리스트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뒤로는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었죠. 일단 프로덕션을 Run 하려면 기본적인 엔터테인먼트 변호사와 상의하에 모든 법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프로덕션 보험도 들어놓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 제작팀은 그런 인맥도 예산도 아직은 없다고 난감을 표했었죠. 저는 프로덕션을 책임지는 자로써 이런 부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고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요. 계약서를 잘못 작성해서 마지막에 법적으로 큰 낭패를 보고나 또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서명을 한 제가 책임을 져야 하기에 저한테는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EP님은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관여할 줄을 몰랐다며 프로덕션을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더군요. 저는 그렇게 몇 주간 일한 수급을 받고 이 프로젝트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장편을 만들어본 경험도 없고 단편 한편 두 편 정도를 친구들과 으쌰 으쌰 해서 만들었던 게 전부라 즈레 겁먹고 이렇게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됐지만 많이 기대하고 있던 저로써는 실망이 될 수밖에 없었었죠. 모든 법적인 제작요소들을 갖춘 상태에서 일을 진행해보신 적이 없으신 분들이어서 어느 정도 이해는 됐지만 그래도 무산이 된 거에 대해서는 실망이 되더라고요. 그때 저는 이미 시나리오를 보면서 Script Breakdown을 다 해 논 상태였고요. 고용할 스텝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스케줄을 물어본 것들도 있고 해서 참 난감하더라고요. 근데 내가 물어봤 던 사람들도 이 바닥이 이렇게 작품이 엎어지고 무산된 경우가 많은지 크게 개의치 않았고 초보인 저만 난감하고 미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아 정말 영화 제작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팀들과의 협업은 좀 힘들 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았었죠. 그렇게 그 뒤로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던 중에 아는 지인들로부터 그 팀이 촬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촬영 현장 사진들을 보는데 뭔가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이 바닥이 큰 것 같아도 이렇게 몇 사람만 건너뛰면 다 아는 사이라는 말이 이래서 있나 보다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 예산에 어떻게 촬영 장소며 배우들이며 그리고 스텝들을 섭외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 촬영이 시작되거 잘 마무리하시길 바랄 뿐 저는 그냥 그 팀에서 빠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를 빼고 다시 프로젝트가 그대로 진행된 거 같아서 서운한 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내가 했더라면 엄청 힘든 여정이었을 거 같아서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영화하는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선배가 그 친구한테 이렇게 조언해 주더래요. "아무 프로젝트나 다 받지 말고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고 그리고 나를 너무 학대하지 않는 그런 팀이랑 일을 하라고요." 우리는 아직 젊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작품이 들어오기만 하면 몸을 혹사해서라도 일을 다 맡아서 하는 편이라 항상 많이 일하고 적게 벌고 또는 몸을 혹사해서라도 일은 완성하는 "프로"다운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던 터라 뭔가 그 조언이 새삼 새롭게 들렸어요. 내 시간은 제한적이고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는데도 굳이 나를 학대해 가면서 혹은 돈을 아예 못 받는 셈 치고 일하는 건 나를 존중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행위인 것 같더라고요. 내가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요. 그래서 부당한 요구나 대우를 받았을 때 일시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No"를 할 수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장편의 기회를 스쳐 지나갔지만 어쩌면 더 준비되고 더 실력을 갖추었을 때 더 잘해나가라고 비켜 간 기회인 거 같아서 속은 좀 쓰리지만 그래도 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열정 페이로 일하자는 프로젝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정말 좋고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런 프로젝트를 받으면 내가 일한만큼 보상을 주는 일들을 못하기에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입니다. 물론 지금은 인맥을 쌓아가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생계는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광고 일이나 그리고 단편 현장에서 악바리 같이 버티고 실력을 쌓아 원하는 프로젝트들을 "골라" 가면서 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다음 편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아직은 고민 중이라 예고는 못 드리고 바로 본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생각해 놓은 주제가 있긴 한데 지금은 확신이 안 들어서 예고를 못 드리겠네요. 그럼 오늘도 제 미숙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이야기들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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