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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10. 2019

할리우드 영화 조연출기 # 5

콜시트 Call Sheet

오늘은 단편영화에 두 번째 조감독 (2nd Assistant Director)로 참여한 프로젝트 콜시트를 보여드리면서 설명을 좀 해드리려고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제가 작업했던 콜시트를 첨부하면서 설명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중요한 장소와 이름을 가리고 올립니다. 콜시트는 두 번째 조감독이 주로 작성하고 조감독과 프로듀서, 감독의 승인을 받고 (때로 필요하다면 스튜디오의 허락하에) 일하는 스텝과 배우들한테 내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페이지는 보시다시피 이 프로젝트의 이름과 제일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요. 프로듀서, 감독, 카메라 감독, UPM(Unite Project Manager,) 조감독, 두 번째 조감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나 스텝들이 필요하다면 첫 페이지를 보고 바로 필요한 사람한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몇 시에 촬영 시작하는지가 스텝들한테 제일 중요한 정보니까 중간에 큼직하게 적어 보이고요. 오늘의 날씨정보와 제일 중요한 점심을 몇 시에 먹는지도 기재합니다. 촬영에 온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이 콜시트를 보고 어떤 장면을 찍어야 하는지, 그리고 장면마다 어느 어느 배우가 나오는지 숫자로 기재되어 있고 밤씬인지 낮씬인지 구분하고 나서 맨 아래에 오늘 촬영 분량이 시나리오 몇 장 정도의 분량인지를 기재합니다. 혹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항상 제일 가까운 병원 주소도 함께 기재해야 하고요. 그리고 그 아래에 보면 배우들의 도착 시작이 다 다르게 나와 있죠. 찍는 씬에 따라 도착시간이 다르다 보니 일단 한번 나간 콜시트는 조감독의 실수라고 해도 그 시간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메일이 한번 나가고 나서 다시 배우들에게 도착시간을 변경하는 일은 극히 드물고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감독이 작성할 때 제일 꼼꼼하게 체크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저희 촬영에서는 미성년자들이 주인공이어서 촬영 기간 동안 학교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미성년자 (Minor) 인지를 Yes 혹은 No로 표시해 둡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촬영에 임하게 될 모든 스텝들의 이름과 도착시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단편 15분짜리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됩니다. 모두 하나의 목적,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그리고 또 감독의 비전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고자 먼길을 운전하고 또 고된 현장의 노동도 감수하지요. 이 영화가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모두 스텝들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기에 자기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콜시트는 또 현장에서 스텝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요긴나게 활용할 수도 있답니다. 각 팀의 막내들 같은 경우 다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막내라고 불리는 것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현장에서 또 얼마나 큰 활력을 불어넣는지 모릅니다. 카메라 팀만 해도 3명의 촬영보조가 있는 이유는 촬영감독님은 전체적인 조명과 그림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하고 첫 번째 촬영보조는 카메라를 직접 Operate 하고 두 번째 촬영보조는 Focus만 책임지고 세 번째 촬영보조는 배터리와 렌즈 교체 등 그 위의 선배들의 촬영을 도와주게 됩니다. 즉 촬영감독이 직접 카메라 만지거나 렌즈 교체하거나 하는 일은 없고 대부분 지시만 하게 됩니다. 이 콜시트가 정말 제일 기본적인 스텝들이 포함된 거라 아직 인원은 50명가량 되지만 정말 큰 세트에는 Production Assistant 들만 60명가량 쓴다고 하니 그 콜시트는 얼마나 더 어마어마할까 기대되면서도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일해야 하는 양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외에 조감독이 챙겨야 하는 건 또 각 씬에 들어가는 소품과 의상 그리고 전체적인 팀의 스케줄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정말 하다 보면 정말 보통 힘든 게 아닐 때도 많습니다. 엄청난 이메일 폭탄과 전화 폭격을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면 전기 소리가 귓가에 웅웅 맴돌고 뇌가 Fully activated 된 느낌이라 쉽게 잠도 안 올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고되고 이렇게 스트레스가 심한 일을 왜 굳이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래도 이 일이 재밌으니까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선물 같은 순간들, 그리고 큰 화면에서 결과물을 확인하는 일, 그리고 큰 극장에서 걸리는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서 나의 이름이 올라 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버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는 그 묘한 연대감, 특히 좋은 사람들과 힘들었지만 함께 무언가 이루어 냈을 때의 쾌감은 확실이 나머지 80%의 안 좋고 힘든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백 프로 다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20% 의 희열과 기쁨이 있기에 그 좋지 않은 80%의 궂은 일들을 감당하게 만드는 거죠. 


이 콜시트는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정말 전쟁을 치르기 직전의 폭풍전야를 알리는 신호탄 같은 거라 이메일 Send 누를 때 정말 떨리고 자꾸 한번 더 확인하게 되고 보고 또 보고 나서 겨우 누르게 되더라고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느낌이랄까요 :) 암튼 이 이메일이 저녁 6시 전에 나가고 나면 모든 스텝들은 내일 촬영 스케줄에 맞춰 준비하고 마지막 자유의 날을 만끽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모든 촬영이 준비되기 전의 시나리오 단계에서 어떻게 촬영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즉 Script Breakdown라고 하는데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각 장면에 들어갈 소품, 의상, 등 자세한 부분들을 기재하는 시트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서가 그 시트를 참고하여 리스트를 만들고 촬영 전날마다 미리 준비하고 구비해서 오게 됩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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