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함께한 기쁨의 순간이란 주제를 받고 일주일째 아무 생각이 없다. 빵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먹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기뻤으니까. 물론 먹고 나서 대체 몇 칼로리를 먹은거야, 라는 자책은 번번이 뒤따랐지만. 마치 옛사랑 그 나쁜 남자처럼, 너의 배신을 알면서도 너를 끊어내지 못하고 너를 향해 미련하게 서 있는 나.
그래서 빵과 함께 한 기쁨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빵에 대한 나의 애정이 조금만 낮았어도, 생각 없이 먹었던 빵이 너무 맛있어서 기뻐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을 텐데. 빵, 네가 내게 주는 기쁨은 한결같이 벅찼고 또 한결같이 많이 먹고 나는 후회했다.
오래전의 일이다. 브라질의 어느 도시에서 처음으로 빠옹 지 께쥬(bão de queijo)를 먹었을 때가 떠오른다. 옛사랑의 애증을 빵에 빗대다 보니 떠오른 빵, 빠옹 지 께쥬. 포르투갈어로 빠옹은 빵(우리말 빵은 포르투갈어 빠옹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께쥬는 치즈를 뜻한다. 내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이 빵이 최근에 브라질 치즈빵이란 이름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날 빠옹 지 께쥬를 처음 입에 넣었을 때,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치즈의 꼬릿 한 짠내가 코끝에 스쳤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땐 쫀득한 깨찰빵을 먹는 기분이었다. 모짜렐라 핫도그처럼 치즈가 줄줄 흘러나오는 빵은 아니었고, 한 입에 쏙 들어가기 알맞은 크기의 빵이었다. 뽀얀 조약돌처럼 앙증맞은 빵, 빠옹 지 께쥬가 마음 저릿했던 그 시절을 실로 오랜만에 불러일으킨다.
목적지 없는 여행 같았던 사랑의 고단함 때문이었을까. 한낮의 지열이 고스란히 저녁 하늘에 물든 그곳의 벅찬 노을 때문이었을까. 설익은 내 뺨처럼 서툰 내 마음이 너라는 강 언저리 그늘가에 쉬고 싶었던 저녁이었다. 얕은 개울물조차 될 마음이 없던 너를 아마존의 지류 어디쯤이라고 믿고 싶었던 우둔했던 내 한 시절. 연민이 사랑의 동의어라 믿었던 어수룩한 그 시절. 너의 등 뒤로 활활 타오르던 노을빛이 잿빛 초저녁 하늘에 자리를 내어주던 시간, 그날따라 평온해 보이던 네 모습과 우리 앞에 놓인 갓 구운 빠옹 지 께쥬.
너와 헤어지고 문득 차오르는 눈물처럼 주책없이 그 빵이 떠오르곤 했다. 빠옹 지 께쥬가 생각 난 날에는 사탕수수즙과 라임주스처럼 마음 깊이 묻어둔 곳에서 줄줄이 길어 올려지는 기억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파편에 마음이 베이곤 했다.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한 시절을 휘청이며 살아낸 나는, 언젠가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브라질 치즈빵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던가.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과 아득히 멀어져 가는 그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내 시간과 공간이 온전히 너로 가득 채워졌던 내 삶의 한 시절에 대한 회한이 세월이란 지층에 켜켜이 쌓여 추억이란 이름의 그럴싸한 화석이 되어 남겨진 지금. 옛사랑을 다시 만나도 이다지 반가울까. 그때에도 지금에도 우리 앞에 놓인 빵은 잘못이 없었다. 한결같았다. 변하는 건 사람의 마음이지, 그 사람과 함께 나눴던 빵은 아니었으니.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만난 듯 들뜬 마음으로 빠옹 지 께쥬를 만들어보았다. 맛은 비슷했으나 내 혀끝이 기억하던 그 맛은 물론 아니었다. 애초에 그 맛을 재현해 낼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저 그때처럼 훈훈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어느 날, 이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도 빠옹 지 께쥬를 홀로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쁠 뿐. 소리 낼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묻어둔 아픔을, 오롯이 떠안고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 제제처럼 나 역시 잔인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 순도와 밀도 그대로 기쁜 슬픔을 안고서 철이 든 어른이 된 걸까.
일 년에 두 번의 여름을 보낸 그 해였다. 남반구의 달은 우리가 보는 달과 다른 쪽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둥근 달은 둥근 빵처럼 그대로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뿐. 오늘 밤 우리는 각자의 하늘에서 달의 어떤 면을 바라보고 있을까.
치즈로 만들어진 달의 분화구 한 조각을 떼어 구운 나의 빠옹 지 께쥬. 지구 반대편 하늘 아래서 시간이란 마법의 레시피를 더해 만든 오늘의 빠옹 지 께쥬. 잊고 지내던 너를 아프지 않게 들춰낼 수 있어서, 씩씩하게 빠옹 지 께쥬를 먹을 수 있는 기쁜 오늘, tá bom [따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