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연재하게 될 호주 한 달 살기와 무관하게 영하의 추위 속에 살아가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며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아직 그리워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두꺼운 옷을 걸치고 문을 열고 나서 한두 시간 안에 만나 무릎을 가까이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물리적 거리를 체감케 한다.
이곳은 현재 오후 두 시, 섭씨 42도의 한낮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한낮의 수은주는 20도를 겨우 넘겼는데 하룻밤 사이에, 아니 반나절 사이에 온도가 20도나 훌쩍 뛰어올랐다. 어찌 되었든 이곳은 여름이고, 오늘 아침부터 현재까지 대여섯 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이곳의 날씨는 변덕의 정점을 찍었지만 내가 체감하는 이곳의 40도는, 한국의 습기를 머금은 30보다도 훨씬 수월하다. 바짝 마른 후끈한 사막의 공기가 그늘 없는 곳에 가득 채워져 있지만, 빌딩과 우람한 가로수 그늘 아래서는 오히려 쾌적하다. 42도의 불가마에 있다가 잠시 휴게실로 나와 식혜를 마시는 것처럼.
아메리카노 대신 롱블랙, 라떼 대신 플렛화이트를 먹어봐야 하는 커피에 진심인 도시인데 아직까지 남이 타준 커피 한 잔을 마셔보지 못했다는 건 조금 애석하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날이 더 많으니, 시간이 주는 희망에 기대어 기다려 보려 한다.
즐기기 위해 떠나왔건만 물가가 비싼 나라에 여행자의 신분으로 머무는 건 자꾸만 마음이 옹색해지는 일이다. 분명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인데 거리의 모퉁이에서 노숙인을 종종 마주치는 건 뜻밖의 일이기도 했다. 비싼 집세와 물가 때문일까. 비바람을 막아 줄 그늘막 하나 없이 거리의 모퉁이에 앉아 종일 누군가의 동전 한 잎을 기다리는 일, 어쩜 당장의 허기짐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에 젖어 있는 시간이 더 절망적일 거란 생각을 해본다. 바로 옆 식당에는 이곳으로 돈을 벌러 온 어두운 피부색의 아시안이 조금 어색한 영어로 주문을 받으며, 모국어는 그리움처럼 꺼내 보이지 않은 채 분주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숙소 출입문을 나서면 왼쪽으로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와 티라떼 가게, 중국식 호떡 가게가 나란히 이어지고, 센트럴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그 언저리에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다. 봇짐 하나를 오른쪽에 두고 거기에 비스듬히 기대어, 캡모자를 뒤집어 든 채로 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의 눈앞으로는 일분이면 수백 켤레의 신발들이 오고 가지만, 그의 모자는 늘 비어있다.
이곳에서 1달러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아보카도 한 개 2달러, 쪽파 반의 반단도 2달러, 당근 한 봉 지도 2달러. 재래시장에서 가장 싼 채소들을 읊어보았지만 마트에 가면 더 난감해진다. 아이들은 매일 오고 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그 사내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동전이 없냐고 묻는다. 누렇고 묵직한 1달러 2달러 동전은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인 나에게도 소중하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현금 대신 카드를 받아 환전한 현금이 넉넉지 않기도 하지만,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려면 2달러 동전 세 개가 필요하고, 큰맘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 주려면 8달러가 필요하니 말이다.
계란 한 판과 킬로에 4달러 하는 제철 복숭아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넥타린이라 불리는 이곳 복숭아는 겉은 천도복숭아처럼 매끄러운데 신맛이 없는 딱딱이 복숭아다. 딱딱이 백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데도 지난여름 비싸서 사 먹지 못하다 그만 철을 놓치고 말았다. 이곳에서 뒤늦은 여름을 보내며 그 아쉬움을 달래느라 벌써 세 번째 사서 먹고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저 아저씨께 복숭아를 좀 드리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갖다 주겠다며 손을 뻗는다. 장바구니 속에서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 두 개를 꺼내 아이들 손에 쥐어준다. 아저씨는 나 이거 좋아해 하며 복숭아를 받아 와작 베어무는 시늉을 하신다.
등을 돌려 몇 걸음을 떼다 얼마 전 읽었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복숭아가 불현듯 떠올랐다. 지독한 배고픔 속에서 아이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빅토리아에게 잉가가 남겨놓은 복숭아 두 알.
그의 여름이 무사하기를 당신의 겨울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길고 긴 한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