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도 고정장치를 돌리면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는 짙은 쪽빛 대문의 집. 마당 한쪽 감나무만 푸른 하늘로 앙상한 팔을 펴서 반긴다. 손때묻은 안방 문고리엔 차가운 자물쇠만 굳게 채워져 있고 뒤꼍에는 버석이는 감잎 몇 장만 흩어져 있을 뿐이다. 마루 옆 부엌으로 향하는 저 쪽문으로 ‘누구요’ 하고 굽혔던 허리를 펴고선 손에 묻은 물기를 입고 계신 조끼 앞자락에 닦으며 나오실 것 같은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부엌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보려 해도 안쪽에서 잠겨졌는지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문풍지만 양 틈에서 스치다 만다.
멜버른에서 야간 기차를 타고 시드니에 도착하고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어느 여행자가 그렇듯 오페라 하우스였다. 시드니에 왔다는 티를 내려고 모두가 오페라 하우스가 잘 보이는 위치에서 다 각도로 사진을 찍고, 프로필 사진에 업로드하는 그 일련의 자랑질. 그래, 열 시간의 비행 후 티브이에서만 바라보던 오페라 하우스를 실제로 마주하고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도 난 이곳 어디에선가 우리 할머니께서 사진을 찍으셨을 테지 하며 어느 쪽에 서서 그 사진을 찍으셨을까 혼자 가늠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해외여행이 전무한 시골 할머니가 칠순에 가까워 처음 해외여행을 가시는데 그 여행지가 호주 시드니였다. 장거리 비행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이십여 년 전 우리 할머니가 당시 효도여행으로 흔하디 흔한 중국 장가계나, 베트남 하롱베이가 아니라 대양을 건너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가신다는 사실이 마냥 흐뭇했다. 이번에 호주로 떠나기 전 그때 할머니께서 호주 여행을 마치시고 돌아왔을 때 해주셨던 말씀이 뭐냐고 엄마에게 묻자 비싼 소고기를 실컷 잡수시고 오셨다고.
시드니에 머무는 내내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볼 때면 으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할머니도 여기에 와 보셨겠지. 소고기를 먹지 않는데 소고기 말고는 한국보다 싼 게 없는 호주에서 마음 졸이며 지내다 혹여 여기서 부음을 듣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순간들도 문득문득 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 닷새째 할머니는 호주보다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이 여행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실걸 안다. 지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어딘가로 다시 떠나는 날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슬라이드 쇼처럼 지나간다 하지. 할머니의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그날, 할머니 머릿속에는 어쩜 시드니에서의 어느 한순간을 담은 필름도 지나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그곳의 푸른 하늘과 그 하늘색보다 더 깊고 짙게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닷물을 어느 탁트인 언덕에서 평화롭게 내려다보는 우리 할머니 자신을.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모가 우리 엄마 멋쟁이였잖아. 노래도 잘 하시고 당신 취향도 확고하고. 맞다, 엄마 시드니도 다녀왔었지. 엄마가 시드니 다녀와서 그렇게 좋다면서 늬들도 나중에 꼭 가보거라 했었어…
하얀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할머니가 사시던 집 앞산에 할머니를 묻어드리고 친척들은 장례차를 타고 모두 떠난 뒤 주인 없는 빈 집에 마지막으로 가 보았다. 여전히 반들거리는 문틀, 벽에 가지런히 걸린 빗자루와 쓰레받기. 한겨울 오후 네시의 햇살은 처마 비스듬히 툇마루 안쪽으로 파고들고 고무털신이 없는 휑한 섬돌에 서서 ‘할머니’ 하고 부르지 못하고 눈물만 그렁그렁. 등을 돌려 나왔다.
지금은 유원지로 바뀌어 버린 옛 곡성역 앞 오른쪽 길 모퉁이, 그곳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맞이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벽화처럼 지워지지 않은 채 한 폭의 아릿한 풍경으로 남아 내게 늘 자리했었다. 그 뒤로 사십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나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나는 이번엔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어떤 따스한 기억을 붙들고 남은 생을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