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날 아침, 아이들 아침으로 계란죽을 끓이다 마지막에 들기름을 한 바퀴 휘 두른다. 그저 그런 계란죽이 들기름 조금 들어갔다고 풍미가 산다.
지난 추석 전, 엄마가 주셨던 들기름 한 병을 아껴 먹다 보니 아직 조금 남아있다. 들기름은 오래 두고 먹으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이번 설에도 새로 짠 들기름을 두 병 주시며 부지런히 먹으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으셨다. 들깨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들깨를 팔아서 아빠와 버스를 타고 방앗간에 가서 기름을 짜 오시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던 지난 세월 앞에 이제는 나도 침묵을 지킨다. 통참깨로 짰다던, 가격이 제법 나가는 참기름을 사 먹어도 봤지만 엄마가 주신 들기름에 비해 형편없다는 걸 굳이 내색하지 않고, 명절 선물로 들어온 배를 감쌌던 완충재로 초록색 소주병 바닥까지 깨지지 않게 포장해 주신 그 세심한 정성을 감사히 들고 왔다. 이번엔 엄마가 방앗간에 함께 가실 수 없어서 아빠 혼자 기름이 다 짜질 때까지 멀뚱히 앉아 기다리다 오셨을 걸 알기에. 게다가 이젠 더 이상 할머니가 주신 들기름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문득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으니. 그래서 신줏단지 모시듯 두 병의 들기름을 김치냉장고 안쪽에 보관해 놓았다.
유진이를 만나는 오늘,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미리 검색해 놓고도 빈손으로 가기 허전하던 참에 때마침 들기름이 생각났다.
자주 만나서 안부랄 것도 없이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있고, 또 한두 해 걸러 한 번씩 만나는 대신 지난 시간을 조심스레 가만가만 짚어보는 사이가 있다. 유진이와 나는 후자의 관계이다. 대학 시절 종로의 한 중국어 학원에서 만난 유진이와 내가 지금까지 뜨문뜨문 만나며 관계를 이어가리라고는, 그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유진이도 나도. 조그만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서로 옆자리 한 칸씩을 비워둔 채 지정석처럼 앉아 수업을 듣던 우리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은 채 몇 주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따로 눈인사도 하지 않고 그저 어느 날 유진이 자리가 비어 있으면 오늘은 걔가 안 보이네 정도에 그치고 마는, 그러나 앞자리에서 등을 보이며 앉아있는 다른 수강생들과는 달리 그래도 조금은 내 시선이 옆으로 기우는 존재였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옆 사람과 짝을 지어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 회화 수업이었지만 책상을 끌어와 의자를 거의 뒷벽에 붙이다시피 앉은 우리 둘은 좀처럼 선생님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고, 그렇게 뒷자리에 남겨진 우리는 자연스레 짝이 되었다. 내가 유진이 자리로 건너갔는지 유진이가 내 옆으로 건너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회화 주제가 이상형이었는지,
- 너 남자친구 있어?
- 아니 없어.
- 나도 없어.
- 정말 너도 없어?
라고 주고받으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유독 긴 손가락 위에 초승달처럼 휘어진 유진이의 눈웃음을 그날 처음 보았다.
수업 내용과 무관하게 우리는 서로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몇 학번인지 중국어로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졸업할 나이에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처럼 유진이 역시 휴학 후 복학한 동갑내기였고, 공교롭게도 둘 다 여대에 다니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공통점이 몇 주간 이어져온 어색한 침묵을 단번에 무장해제 시켰다.
유진이가 나보다 한 살 어렸어도, 공학을 다니고 있었어도 학원 수업때마다 만나는 우리는 이후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을 거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모종의 유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만일 그때 우리 중 누군가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학원을 그만두고도 한 번씩 각자의 학교 앞 구석진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중국어가 전공이 아닌 부전공이었던 우리가 독학서로 삼았던 중급 중국어 교재, 치아오량 1단원 본문을 대화의 주제로 삼을 때는, 유진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깨알같이 재미나던지. 마치 맨투맨 영문법 to부정사의 예문을 외웠던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는 은밀하고도 친밀한 마음이 유진이와 나 사이에 겹겹이 생겼다. 얇은 한지 한 장은 등갓을 감싸고 은은한 빛을 투과시키지만, 한 장 한 장 붙여내면 튼튼한 서랍장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유진이와 나는 처음 서로를 비추는 사이에서 포개진 시간 위로 차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얹어갔다. 굳이 남 앞에 드러내 보이길 꺼려하는 유진이와 나, 스스로에게 엄격한 우리, 약속시간에 늦지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배려만을 바라지도 않는 우리 둘. 친밀함은 만남의 빈도가 아니라 얼마나 진솔하고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느냐에 따른다는 걸 유진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졸업 후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우리의 취업,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유진이는 늘 나보다 한 걸음 먼저였고, 언니처럼 먼저 가본 길을 알려주었다. 내가 중국에서 일과 사랑을 모두 내려놓고 돌아와 웅크려있던 서른 즈음의 어느 겨울 명동에서, 늦었지만 초라한 선물로 유진이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던 그때. 유진이가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나가지 않았을 그 저녁식사 자리에서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내 슬픔은 두르고 온 목도리를 가방 구석에 말아 넣듯 잠시 밀어 넣고 그저 여유가 묻어나는 친구의 행복을 보며 진심으로 축복했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유진이가 이 겨울 춥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질투 나지도 않고,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는 친구라 생각했었다. 언젠가 유진이가 만삭의 몸으로 퇴근 후 우리 회사 근처까지 와서 나와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에도. 그때 난 누군가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시간을 보냈고, 유진이는 곧 만날 아기를 품고 이불을 덮는 시간을 보냈겠지만, 유진이란 친구에 대한 내 축원은 늘 그랬다. 뒤돌아 서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며 느끼는 자괴감이 아닌, 미래의 나를 향한 기대감을 함께 품어보는 염원같은 것.
슬픔의 낙차가 누구보다도 컸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유진이는 누구보다 의연했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한 번씩 유진이를 떠올리며 나는 그 시간 유진이의 평안을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해 왔다. 유진이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로 그 사이 나 역시 들려줄 좋은 이야기가 없어 몇 번의 계절을 망설이고 흘려보내다, 더는 그 마음 아껴두지 말자며 유진이에게 연락을 했다.
지난번 봤을 때 유진이는 내게 나이 들어 여행 다니려면 무릎을 잘 지키라더니, 이번에는 정신건강을 챙기라 한다. 집에 혼자 있지 말고, 혼자 있더라도 지금처럼 읽고 쓰라고. 언니 같은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을 흘려듣지 않았다.
앞으로 차츰 기억을 잃어가실 유진이의 엄마는 유진이에게 들기름을 짜서 주시지 못할 테고, 우리 엄마표 들기름 역시 머잖아 수급이 끊길 걸 안다. 그래서 꼭 나누고 싶었다. 유진이와 사이좋게 한 병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