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너와 나

by 캐서린의 뜰


등굣길, 학교로 이어지는 좁다란 오르막을 가득 메운 아이들. 잠깐 한눈을 팔면 키가 작은 우리 아이는 어느새 다른 아이들의 책가방에 파묻혀 사라지고 만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아이를 품에 안으면 어서 키가 자라야 할 텐데 하면서도 내 무릎 위에 앉히면 내 턱아래에 닿는 아이의 정수리, 딱 이만큼에서 더는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때론 들기도 한다.


하교 후 잠들기까지 여전히 엄마가 있어야 안심이 되는 아이라 이제는 나도 혼자 자고 싶다가도 머잖아 큰아이처럼 엄마의 손길이 점점 필요 없어지는 때가 될 때, 나는 작은 아이를 어찌 놓아주지, 다가올 미래를 예행연습 삼아 그려보곤 한다. 잠든 아이의 옅은 숨에서 퍼지는 온기를, 위에서 내려다본 긴 속눈썹의 떨림을 가까이할 수 없는 건 분명 큰 상실이겠지. 그때에 나는 텅 빈 충만감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코끝이 시큰거린다.


로봇은 가지고 놀지 않고 인형을 갖고 노는 아이. 로블록스는 할 줄도 모르고 그 시간 하얀 종이 위에 그림 그리는 아이. 친구들이 게임 캐릭터 모을 때 대신 다이소 스티커를 모으는 아이. 눈이 크고 겁이 많은 아이. 만화영화 등장인물처럼 그 큰 눈에 찰방찰방 눈물이 차오르는 아이. 같이 태권도를 시작한 친구들은 품띠를 진작 땄는데 일 년을 미루고 이제야 국기원 심사를 볼 용기를 내는 아이.


그 아이와 올봄, 매일밤 태극 8장 보충훈련을 위해 도장을 갔다. 저녁을 챙겨 먹이고 정리를 하고 겨우 식탁의자에 앉아 쉬어볼 참에 다시 외출을 하는 건 몹시 귀찮고도 피곤한 일이지만 불 꺼진 미용실과 약국을 지나 이제 막 문을 닫는 꽈배기 가게 앞에서 잘하고 와 하고 아이를 꼭 안아주는 일은 따사로웠다. 한산해진 도로의 붉은 신호등불에 번진 벚꽃 잎은 복사꽃 잎이 되어 흩날리고 몇 걸음 못가 돌아서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자꾸 손을 흔든다. 어서 들어가라고.


아이가 훈련을 하는 한 시간 동안 한낮의 소요가 사라진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하루치 걱정과 슬픔은 날숨에 흩어지고 종일 손에 잡히지 않던 작고 불확실한 행복은 들숨과 함께 명료해진다. 훈련을 마친 아이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엄마, 나는 사춘기가 와도 방문 닫고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그때에도 지금처럼 엄마랑 이렇게 로맨스 할 거라고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나의 아들. 너 로맨스가 뭔지 알아라고 물어보면 이런 게 로맨스라며 내 품에 안겨 순간 내 아랫배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볼을 파묻는 아들. 이 짠챙이 녀석, 아직도 머리가 엄마 배에 닿는구만 로맨스는 무슨. 바뀐 신호등에 걸음을 재촉하며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거칠고 차가운 나의 손이 매끄럽고도 따뜻한 아이의 손을 감싸 쥔다.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명백한 행복.


경적이 사라진 적요한 밤거리, 이 밤의 가로등이 무드등이 되고 그 아래 표표히 흩날리는 꽃잎이, 우리의 볼을 간지럽히는 미풍이 로맨스 영화의 배경이 되어준다는 걸 일러준 적이 없는데도 알고 있는 아이.


그 아이 손을 잡고 걷는 고요한 봄밤, 옷소매 끝을 당기며 주먹 쥐고 홀로 걸어온 내 길이 더는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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