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가을의 나무를 그리다

by 캐서린의 뜰


반납일이 하루 지난 도서관 책을 이고 가 무인반납함에 털어 넣고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하다. 반납일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사서 선생님을 마주할 면목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양어깨를 짓누르던 책의 무게가 멍에를 얹고 가는 소의 고단함과도 같아서, 오늘치 삶의 부담을 덜어낸 것처럼 돌아가는 걸음은 자못 가볍다.


땅을 보고 걷느라 올 때는 보지 못했던 세상의 풍경이 되돌아가는 길에는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진 산책로 위로는 가지런히 하늘길이 열려 있고, 어느 해엔가 부러진 가지 끝에서도 깃털처럼 앙증맞은 메타세쿼이아 새순이 다시 자라고 있었고, 빛을 받지 못한 몸 한쪽에 낀 이끼는 계절과 상관없이 시간의 궤적을 몸 밖에 새기고 있었다.


대왕참나무의 새순은 새끼손톱 한마디 밖에 되지 않는데 일곱 개의 뾰족한 모서리가 분명히 갈라져 있었다. 자이언트 팬다가 200그람으로 태어나 100킬로그램이 넘는 성체로 자라는 것처럼 머잖아 손바닥만큼 다 자랄 나뭇잎의 미니어처를 보는 일은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작고 여리지만 모든 걸 다 품고서 천천히 펼쳐 보이는 식물의 세계를, 그 시작과 끝을 모르는 계절의 순환과 성장 앞에서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들른 카페 이층 창가엔 지난겨울 가지치기를 한 은행나무가 보인다. 몸통 서너 군데에서 앙상하게 자라나는 가지 끝엔 어김없이 새순이, 마지막 잎새가 아니라 최초의 잎새가 떨고 있다. 그 작은 잎새 역시 부채모양의 완벽한 곡선을 갖추고선.


오후에는 아이들 담임 선생님과 상담 일정이 잡혀 있다. 봄꽃 나무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새순이 돋는 나무들의 여리지만 완벽한 한 세계를 놓칠 뻔 한 이 계절의 한 복판에서, 아이들 역시 각자의 온전한 한 세계를 품고 눈에 띄지 않게 자라고 있을테지.


전봇대의 전선 끝에 닿을 듯 말 듯 자라는 어린 은행잎을 한 번 더 눈에 담는다. 곡우의 실빗금 같은 빗줄기에 흩어지는 꽃잎대신 이 비를 맞고 한눈금 더, 눈치채지 못하게 자랄 잎들을 침묵으로 응원한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나무, 주황 메타세쿼이아 그리고 갈색 대왕참나무 아래서 걸음을 또다시 멈추고 나는 한참을 우러러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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