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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Nov 18. 2024

독박육아 대신 독립육아

육아 독립 만세의 그날까지


유치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둘째를 등원시키고 나오는 길, 부서지는 아침 햇살과 흩어지는 낙엽 사이로 두 아이와 엄마가 환영처럼 지나간다. 딸아이는 빨간색 에나멜 도로시 슈즈에 타이즈를 신고 그 위에 체크 주름치마, 브이넥 니트에 꼬마용 트렌치코트까지 제법 차려입었다. 머리엔 커다란 리본핀도 빼먹지 않고. 그 뒤로 아이 엄마가 앞서가는 아이 어린이집 가방 들고, 돌이 막 지났을 법 한 동생을 유모차에 태워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눌러쓴 야구모자 아래 화장기 하나 없는 푸석푸석한 맨 얼굴, 회색 집업 후드티, 검은 트레이닝 복 바짓단에 아래로 나온 철 지난 슬리퍼. 아이 엄마의 맨 발에 내 시선이 머물자 오소소 한기가 전해졌다.  


꽤 힘들었던 시간이었는지 그때의 기억이 통으로 잘려나간 기분이 든다. 서너 살 때의 서영이를 그려보면 도통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다 오늘처럼 우연히 어떤 한 장면을 마주할 때면 기억의 파편들이 바람에 쓸려 뭉쳐지는 낙엽더미처럼 큰 조각이 되어 잔상으로 남곤 한다. 쨍한 구두를 신고 왕머리핀을 꽂은 아이처럼 엄마와 사뭇 대조적인 차림으로 아이를 단장시키진 않은 건 기억난다. 예나 지금이나 치마를 입은 날엔 들떠서 유치원에 가고, 바지를 입은 날엔 입이 댓 발 나와서 결국 꾸지람을 듣고 등원을 했겠지. 그게 꾸짖을 일인가라고 생각해 보면 아이입장에서 생각할 겨를이 조금도 없는, 몸과 마음이 지친 엄마였다고 말할 수밖에.


지금은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독박육아란 말이 서영이가 아기였을때 유행처럼 번져나갔었다. 뭔가를 온전히 다 뒤집어쓴 “독박”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스러움(난 몰라, 네가 다 알아서 해)이 육아와 만나 묘하게 육아의 주체를 흠도 티도 없는 제단의 희생물로 바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언어가 가지는 무시 못할 힘처럼 그래서 독박육아란 말은 쓰면 쓸수록 엄마(혹은 주 양육자)들을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는 못된 주술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힘들었던 육아 시기를 얘기하자면 저마다 책 한 권이 모자랄 서사를 풀어내겠지. 너만 더 힘들었던 것도 아니고 나만 힘들었던 것도 아닌 시간, 이제와 굳이 말한들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해소될까. 내 경우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어 글로 토로하고 싶지 않나 보다. 뒤늦게 육아라는 전선에 비장하게 뛰어든 친구가 생각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 … 응, 둘째 보내놓고 커피나 한 잔 사서 동네 좀 걸으려고 했는데 너 생각나서… 너 전에 우리 서영이 아기 었을 때 기억하지. 집 앞엔 논밭만 있는 외딴 관사에서 집 앞에 김밥천국이랑 메가커피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했던 말… 야, 그땐 커피에 도넛까지 먹을 수 있는 현실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 같았는데… 에이, 고생은 무슨. 마흔 넘어 애 키우는 네가 애쓰지… 하긴 뭐 그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천기저귀 빨아서 쓰고 겨울이면 새벽에 연탄 갈던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고생했겠냐. 진짜 상상조차 안돼. 나 서영이때 땅콩기저귀 3개월 쓰고 포기했잖아… 근데 아무리 세상이 더 좋아지고 내 주변 상황이 좋아져도 결론은, 육아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해도 힘들다는 거… 그래 정말 애쓴다, 수희야. 그저 네 몸 잘 챙겨... 아, 브런치 글쓰기? 맨날 애들한테 화낸 것 밖에 쓸 말이 없어… 이젠 딱 하루 아니 한 시간만이라도 서영이 서너 살 때로 돌아가면 소원이 없겠어. 화 안 내고 그저 둘째 보듯이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게… 그땐 몰랐지… 그래 맞아, 애정도 체력에서 나오더라. 몸 아픈데 애는 돌봐야 하고, 병원이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린애한테 만행을 저질렀지, 내가… 그렇지. 암튼 밥 잘 챙겨 먹어, 한의원도 빠지지 말고 다니고… 어, 얼른 준호 챙겨서 보내… 그래 또 통화하자”


고립무원. 돌이켜 보면 난 독박보다 무서운 고립육아를 거쳐왔고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나를 강인하게 담금질 한 까닭인지 아니면 시류에 튕겨져 나온 탓인지 주변의 흐름에 민감하지 않은 독립적인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남들보다 뭔가 잘 키울 자신이 있어 독립육아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남들이 하는 만큼 쫓아갈 자신이 없어서 외로운 노선을 택한 것일지도. 서영이 반 친구들은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 이번 수학 단원평가에서 100점 받은 친구는 몇 명인지, 아이 친구들은 이번 겨울 방학에 어디로 여행 가는지… 가끔은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하지만 설사 그 궁금증이 풀렸다 해도 나의 반응은 ‘아, 그렇구나’에서 끝날 거다. 동네 엄마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맘카페 근처엔 가지도 않는 나, 만일 내가 주변에 아이 키우는 엄마에게 뭔가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면 아마 ‘근처 비뇨기과 갈만한 곳 어디예요?’ 정도 일거다.


이유식 먹던 아이가 자라서 학교 급식을 먹을 만큼 커도 자식 키우는 게 쉬워지지는 않는 법. 힘든 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리고 어디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그럴 거다. 각자 차원이 다른 개개의 힘듦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겠지. 앞서 자녀를 키운 선배 엄마가 조언을 준 다면 한 번쯤은 귀담아듣긴 하겠지만 그 또한 내 아이에게, 나의 육아 상황에 딱 맞는 해결책은 되지 못할 터, 하물며 우리 아이들보다 더 어린아이를 키운 아이 엄마에게 내가 어설픈 조언을 고한다면 그건 퍽 가소롭겠다. 그래서 말을 아낀다. 다만 독박이 누군가 뒤집어 씌운 수동적인 의미라면 독립은 자발적으로 일어선 능동적인 의미니까 말이라도 번지르르하게 ‘저 독립육아 하고 있어요’라고 하다 보면 여전히 힘든 육아, 좀 나아지지 않을까. ‘독립육아, 만세’ 부르짖다 보면 언젠간 ‘육아독립, 만세’ 하는 날 올 테니까.


여남은 기억의 조각 가운데 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화창한 5월 어느 날이었을게다. 마당 세숫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한가득 채워 놓고 고무호스에 나오는 물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세 살의 서영이. 방금 점심 먹고 갈아입힌 옷이 벌써 젖었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 옷 갈아입고 낮잠 자자고 타이르는데도 꿈쩍 않는 서영이. 뒷산 너머 멀지 않은 곳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오월의 푸르른 풍경 속에 박제되어 있는 고단한 마음의 나.
‘깊어가는 만추의 땅 위로 무채색의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는 그 엄마, 내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리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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