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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Nov 20. 2024

어학원, 국제학교 안 다니고 쌩으로 한 달 살기

매일 밤 잠 못 드는 엄마


숙소 옥상에 자리 잡은 수영장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시끄럽게 중국어로 떠들어 대는 젊은 커플이, 아빠 품에 안겨 물장구를 치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지닌 중앙아시아의 사내아이가, 히잡을 쓰고 조심스레 발만 살짝 담가보는 무슬림 여인이,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잠영과 접영을 무한 반복하는 벽안의 중년 남성이, 그리고 수영 왕초보 우리 아이 둘과 함께 있는 로하일 선생님까지. 24시간 3인 1조로 붙어있는 두 아이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루프탑 수영장에서 내려다보는 한가로운 오전의 쿠알라룸푸르는 나를 안온한 시간으로 이끈다. 연일 이어지는 한국의 한파는 딴 세상 이야기라 여기며.  


여느 방학과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소화가 될 무렵 수학 문제집을 두 장 푸는 것으로 오전을 시작했다. 여기에 우리만의 한 달 살기 특별 일정이라면 한국에선 비싸서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수영 강습이 포함된다는 거다. 쿠알라룸푸르에 오기 전에 유일하게 준비한 일이 바로 수영 강사 구하기였다. 하얀 눈밭에선 앞사람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했던가. 먼저 한 달 살기를 끝낸 어떤 엄마가 친절하게도 수영 강사 구하는 방법을 블로그에 올려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운동 신경이 없는 데다 겁까지 많은 두 아이들이 수영 강습 하루 만에 수영하기 싫다고 버티면 어쩌지 걱정하며 첫 수업을 맞이했다. 동남아 아이돌 같은 외모에 함박웃음을 짓는, 삼촌 같은 편안한 선생님을 만난 덕에 물을 무서워했던 아이들은 이틀에 한번 있는 수영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수영이 끝나면 시장이 반찬이라,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사 먹고 그날의 목적지 한 군데를 둘러보고 장을 보거나 저녁 군것질 거리를 사 오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5박 6일 일정의 여행이었다면 하루에 서너 곳의 관광명소를 찍고 오는 강행군이었겠지만, 더운 날씨에 징징대는 아이들과 무리하지 않고 하루 한 곳만 다녀오는 한 달 살기를 선택한 나를 칭찬했다.


꽤 규칙적이게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일상 속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곤 했다.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 갑작스레 스콜을 만나거나, 아이의 몸이 좋지 않거나, 애써 찾아간 곳이 휴무이거나 하는 돌발 상황들. 그런 때를 대비하려면 아이들이 곤히 잠든 밤, 엄마의 “심야 폭풍 검색”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유명 관광지처럼 꼭 가야 할 곳, 공원이나 미술관처럼 여유를 두고 가고 싶은 곳, 목적지 근처 평점이 좋은 맛집까지 구글맵에 미리 표시해 두어 언제든 플랜 B를 실행할 수 있게 세팅해 놓기. 그리고 내일의 날씨와 한 주의 날씨를 확인하고 목적지 변경하기, 수영 수업이 없는 날 장거리 투어를 예약하기 등등. 행여 새어 나온 불빛에 아이들이 잠에서 깰 새라 휴대전화 충전기 겸 독서등을 향해 모로 돌아누운 몸을 바싹 붙여가며 무거운 눈꺼풀과 어른대는 핸드폰 화면 사이에서 매일 밤 사투를 벌였다.


그날도 수영 수업을 마치고 2층 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점심을 먹었다. 천장이 뚫린 버스 2층에서 탁 트인 시야로 바라보는 도시의 풍광은 그랩 차 안에서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모습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울창하게 뻗어있는 도심의 가로수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2층 버스, 목을 한참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고층 빌딩들, 차가 정차할 때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를 짓던 무슬림 여고생 무리들.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으면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이라 더없이 좋았다. 딸아이도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바깥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고 아들 녀석은 모자가 날아갈까 봐 한 손은 모자를 꼭 잡고 다른 한 손은 의자 등받이를 꼭 붙들고 즐거워했다.  홉온 버스라 불리는 이 2층 투어버스는 원하는 정류장에 자유롭게 내려서 다음 버스를 또 탈 수 있고 시내 웬만한 곳을 훑고 지나가서 쿠알라룸푸르 여행자라면 한 번쯤 권할만하다. 우리는 서울의 명동 같은 부킷빈탕에 내려서 근처를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타려고 하차했던 장소에서 다시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가 그날의 마지막 버스라 한다. 다행히 발권 후 24시간 유효한 티켓이라 내일 오전에 다시 탑승 가능하다고 하니 마침 수영 수업이 없는 내일은 오전부터 서둘러야겠다.


다음 날, 평소보다 이른 아침을 먹고 외출할 채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가방을 멘 한국 아이와 한국 엄마다. 잠깐의 어색한 눈인사. 문이 닫히고 몇 층 내려가지 못하고 다시 문이 열렸는데 이번에도 한국 아이와 한국 엄마가 탄다. 아래층에서도, 또 아래층에서도 가방을 멘 한국 아이들만 연이어 탄다. 엘리베이터가 한국 아이들과 한국 엄마들로 만원이 되었다. 저층에서 한번 더 문이 열리고 역시나 한국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발딪을 틈이 없어 탑승을 포기한 채 문이 닫혔다. 갑갑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의아해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건물에 한국인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이 시간에 다들 우리처럼 투어버스를 타러 가나.


우리의 한 달 살기는 문자 그대로 순수한 한 달 살기였다. 알고 보니 그들이 그 시간 일제히 향한 곳은 근처 어학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숙소 근처 유명 어학원이 두세 군데 있어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한국 엄마들 사이에선 인기 있는 곳이었다는 걸. 나는 지도를 보고 시내 중심에서 도보 가능하고 내부가 깨끗해 보이는 숙소를 선택했는데 아마 어학원과 연계된 숙소로 선택의 여지없이 머무는 사람들도 있었겠다. 그리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코로나 이전에 유행했던 3~4주 영어캠프가 코로나를 거치며 한 달 살기란 이름으로 바뀌어 진행되고 있던 거였다. 아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건물 현관 앞에서, 근처 어학원 건물 앞에서 아이를 배웅해 주던 엄마들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아이들이 어학원에 가 있는 그 시간 동안 그 엄마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쇼핑몰 천국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보채는 아이 없이 편히 아이쇼핑이라도 할 수 있겠지. 아님 저기 어학원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적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아무런 방해 없이  마실 수 있겠지.


이후로도 한국 엄마들을 만나 잠깐 짧은 대화를 나눌 때면 어느 어학원(혹은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느냐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럴 때마다 난 멋쩍은 듯 ‘저희는 그냥 쌩으로 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하나같이 ‘안 힘들어요?’라며 측은한 눈빛으로 묻곤 했다. 엄마들이라면 안다. 방학 한 달은 엄마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시간이란 걸. 게다가 누가 시켜서 온 건 아니지만 이국에서 종일 아이들과 붙어서 지내는 건 한국에서의 방학과 차원이 다른 부대낌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어쩌랴. 아이들이 어학원에 가 있는 매일 대여섯 시간의 여백 대신, 두 아이와 30일 24시간을 오디오와 비디오가 비어있지 않는 시간들로 꽉 채워나가는 삶을 선택한 나를. 우리의 한 달 살기 목표는 영어 배우기가 아니라 낯선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그 안에서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에 있으니 수고스럽지만 괜찮다. 다만 사서 하는 엄마의 고생이 훗날 아이들에겐 어떻게 기억될지. 그저 조금 더 많은 웃음과 눈물과 땀방울이 추억의 책장에 배어 나오길 바라본다.


“엄마, 우리 내일은 어디가?”
“몰라, 내일 아침에 알려줄게. 어서 자. “
참고로 그날 밤도 어김없이 수면등을 켜고 다음 날 일정을 검색하다 ‘다음 한 달 살기 할 때는 어학원에 등록할까’ 잠시 유혹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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