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먹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하여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빵을 먹었던 적이 있다. 하루 한 끼 쌀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빵 역시 주식이 되어 아침은 무조건 빵으로, 점심은 밥으로 참으로 규칙적 이게도 먹었다. 빵에 대한, 엄밀히 말하자면 밀가루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기사들을 많이 봐서 그렇지 빵이 그렇게 나쁜 음식인가에 대해선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빵의 주 재료가 정제탄수화물인 밀가루이고 시중에 파는 대부분의 빵은 버터가 아닌 팜유 혹은 마가린을 첨가해서 만드니 물만 넣고 짓는 밥에 비해 건강하지 못한 음식은 맞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주식으로 먹는 빵의 경우는 오래, 자주 먹기 위해 물, 소금, 효모정도가 들어간 곡물빵을 선호한다. 거기에 계란프라이와 채 썬 양배추를 얹어 먹거나, 닭고기가 들어간 마크니 카레를 찍어 먹거나 그 조차도 없다면 바질페스토 혹은 카야잼을 발라서 먹는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부터 국이나 찌개 하나에 밑반찬을 깔아 놓고 먹을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빵을 맛볼 수 있었던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빠가 롤케이크 한 줄을 사 오실 때와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두 불러들이고선 카스텔라를 만들어 나누어 먹는 날 그리고 늦은 봄 딸기가 끝물일 때 엄마가 딸기잼을 만드시는 날 옥수수 식빵에 딸기 잼을 발라먹었던 이 세 날 뿐이었던 것 같다. 설탕을 조금 넣으면 쉽게 변한다고 진한 팥죽색이 될 때까지 딸기 잼을 졸이는 날 집안 구석구석에 퍼지는 단내 때문에 하루 종일 히죽히죽 웃음이 가시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귀한 식빵을 두 장씩 겹쳐서 먹을 수 있어서 더 행복했을지도. 때론 결핍은 집착을 부르기도 하던가. 어쩌면 빵에 대한 집착은 그 시절 마음껏 빵을 먹어보지 못한, 양껏 가득 채울 수 없는 허기짐에 대한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하게 되면서 부터겠지. 엄마의 제철 나물 밥상이 물러난 자리에 참치샐러드나 에그마요를 넣은 샌드위치로 원 없이 아침을 채워나갔던 때가. 간단하기도 했고 매일 같은 메뉴를 먹어도 딱히 질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냉장실에도, 냉동실에도 빵을 채워 넣을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 든든했다. 무엇보다도 빵을 먹는 게 연중행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내 삶을 적잖이 만족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빵이 나쁘단다. 특히 중년의 몸은 나의 빵 섭취 이력에 대한 대가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로 증명해 보인다. 유쾌하지 않은 성적표다. 그래서 가끔 문득 두려운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1년에 손꼽아 먹었던 빵을 내 아이들은 거의 매일 같이 먹었는데 이 아이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어떤 건강 성적표를 받게 될지. 내가 풍족히 먹지 못했던 빵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족하지 않게 빵을 사 먹였던 나다. 간식으로 빵만 한 것도 없고, 또 바쁜 아침 역시 빵만 한 게 없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빵에 의존하는 삶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해서 빵으로 빵빵하게 채워진 일상에서 바람을 빼고 주 1~2회 정도로 빵 섭취를 줄이자고 혼자 다짐을 했다.
빵을 줄이면서 흰 빵대신에 통밀빵, 곡물빵으로 대체해서 먹기도 하는데 사실 건강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통밀이던 호밀이던 결국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이 또한 정제탄수화물이니까. 다만 그 거칠고 고소한 맛이 좋아서 곡물빵을 선호하긴 한다. 아이들은 그런데 아직까지는 하얗고 부드러운 빵을 고집한다. 글로 배운 내 제빵실력으론 2차, 3차 발효까지 하는 빵들은 딱딱한 돌덩이가 되어 나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발효가 필요 없는 스콘, 쿠키 정도는 설탕의 양을 대폭 줄여 만들어 주는 걸로 밀가루 섭취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줄여나간다. 기름에 튀기지 않는 게 어디냐며 건강한 간식으로 추켜세운다. 게다가 밀가루 대신에 아몬드가루를 넣어 만드는 스콘은 칼로리는 높지만 더 고소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발효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니 바쁜 아침에 뚝딱 구워내기도 쉽다. 블루베리 콩포트를 얹어 먹어도 좋지만 갓 구운 스콘은 그냥 먹어도 맛있다. 갓 구운 빵은 언제나 옳으니까.
빵을 끊을 수는 없고(사실 끊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게 맞다) 다만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오래도록 빵을 향유하고 싶다. 빵을 먹지 않고 무병장수 하는 삶이 과연 축복받은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빵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빵을 못 먹어서 아플 수도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럴 것 같다. 비록 매일 먹을 수는 없지만 몸이 아파 밥 차려 먹기 힘든 날에 잘 부푼 빵 한 덩이로 원기를 회복할 수 있기를, 입맛 없는 날 달달한 빵 한 조각으로 집 나갔던 입맛이 되돌아오기를, 마음이 힘든 날 한입 베어문 빵 앞에서 찌푸린 인상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그렇게 앞으로도 난 빵과 쭉 함께 하는 삶을 꿈꾼다. 빵생빵사, 빵야!
제 삶을 어루만지는 빵이 정말 나쁜가요? …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