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빵인가
어릴 적 역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한 적이 있다.
열 살에서 열한 살 남짓한 나이였다.
아버지를 따라 뷔페에 간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뷔페에 가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욕심껏 담아 마구 구겨 넣었던 음식들이 이미 포화상태였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 앞에서 팔던 달달한 초코 과자 빼빼로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 내가 귀여웠는지 아버지는 흔쾌히 지갑을 여셨다.
그리고 고작 한 입으로 내 몸은 완전히 무너졌다.
아버지는 혼비백산하셔서 급히 택시를 부르고 나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을 그제껏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옅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입에 게거품을 물고 눈알이 돌아가고 있는 딸아이의 뺨을 오열하며 찰싹찰싹 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장폐색증이었다.
다행히 바로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태여서 입원을 하고 며칠 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먹는 걸 너무 좋아했던 어린 나는 하루종일 굶어야 했고, 밤이 되자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진동했다.
아버지께서 슬쩍 내 눈치를 보시더니, '배고프냐' 물어보셨다.
'그럼 뭐가 먹고 싶으냐' 물으시는 말에 바로 떠오른 단어.
고로께요
아빠 나 고로께 사줘
아버지는 그 밤중에 말없이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 오셨다. 그리고 내 손에 꼬옥 쥐어준 따끈한 고로께.
그렇게 내 장은 한번 더 꼬였다. 그리고 나는 또 기절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등짝을 내어주셔야 했을지도. 철없는 이 부녀를 어머니는 얼마나 원망을 하셨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바삭한 껍질에 속은 부드러운 야채가 들어있는 튀긴 고로께. 한 입 베어 물면 파삭하고 부서지면서 동시에 말캉한 속살에 배어든 기름내음과 후추맛이 톡톡히 나는 간간한 야채볶음이 입안으로 들어와 혀끝부터 혀뿌리까지 빼곡히 미뢰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그 맛. 한 입 한 입 사라져 갈 때마다 아쉬워서 입맛을 쩝쩝 다시며 천천히 음미하며 씹어먹던 고로께.
어린 마음에 어렴풋이 다시 아프게 될 것을 알았으면서도 찾았던 고로께.
속 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갈지 모르지만 그것들이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내어 매력적인 맛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고로께.
나는 무슨 빵일까
이 주제에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해 고민이 깊어지던 때,
어린 시절 나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매력적인 맛의 빵, 고로께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나는 늘 호기심이 많았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다양한 것들의 매력에 금새 빠져들곤 했다.
너무 많은 관심사에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져 하루를 멍하게 보낸 적도 있다.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어우러져서 엉망이 된 채로 시간의 저편으로 던져지곤 했었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나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모든 생각의 양면, 측면을 모조리 들여다보고. 다르게, 혹은 같게,
때로는 모순적인 시선조차도 품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도 너무나 다양하다.
하나의 색을 만들어내야 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나의 다채로운 색상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흰 벽에도, 스케치북에도 때로는 자신의 몸에도 물감을 칠해보는 아이처럼 모든 가능성을 두드려보고 싶다. 그저 호기심과 재미에 장난감처럼 그어대던 붓질이 시간이 흘러 원숙해져 어느 순간 작품이 되어 있는 것처럼 쌓여가는 나의 글들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대표하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때즈음이면 여러가지 재료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맛을 내는 고로께처럼,
아플 줄 알면서도 다시 베어 물어보고 싶었던 그 고로께처럼,
내 어지러운 생각들도 각양각색의 색깔을 선명하게 지니며 조화롭게 어우려져
고로께 같은 매력을 뿜어내고 있겠지.
겉모습부터 보통 빵과는 다른 고로께.
그리고 그 속은 더더욱 알 수 없어 신비스러운 매력이 있는 고로께.
먹어도 먹어도 여운이 남아 아껴먹고 싶을 정도로
바삭하고 부드러운 따듯한 한 입이 계속해서 느껴 질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
이번 글은 유난히 미숙하네요.
더 다듬을까 올릴까 계속 고민하다가
능력부족을 인정하고
마무리 짓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나열했지만
사실은 그냥
고로께가 좋아서
고로께라고 했다
라는 고백도 솔직하게 드려봅니다.
(고로케, 커틀릿. 그렇지만 저는
고로'께'가 좋아서 고집스럽게
고로께라고 썼습니다
제목은 고로케 네요. ㅎㅎ)
그날 아부지가 사다주셨던 고로께.
또 먹고 기절하더라도 한 입만 더 먹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