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빵
크리스마스 캐럴 들으시면서 읽으시면 더 좋아요!
슈톨렌을 처음 만난 것은 어느 추운 겨울날, 파주 프로방스 에서였다.
독일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이라고 해서
궁금증에 사 본 슈톨렌은..
피클 맛이 났다.
피클을 만들 때 들어가는 향신료인 정향이 건포도 대신에 들어가 있는 건지...
한 입 씹어 넘기기도 어려운 그 빵은 그대로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졌다.
두 번째 만남은
몇 년 전 코스트코에서였다.
알면서도 또 넘어가는 나.
꽤나 큰 사이즈인데,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인기품목이란다.
궁그미는 또 손을 내밀고야 말지.
그래 그래야 나지.
익숙한 듯이 지켜보는 남편의 건조한 표정을 모른 체 하며 집에 데리고 온 슈톨렌.
오? 뭔가 매력적인 맛인데?
가족들 중에 오로지 나만 그 매력에 빠진 것 같았지만.
식감이 쫄깃한데, 안에 들어있는 견과류와 건포도와의 조합도 괜찮고,
향신료도 너무 강하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때까지 신나게 혼자 끝까지 잘라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연말마다 슈톨렌이 코스트코에 출현하기를 설레이며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코스트코에서 언제부터인가 슈톨렌을 더 이상 팔지 않았다.
이탈리아빵 파네토네는 파는데...
안돼... 내 슈톨렌.
이제 어디서 사 먹지!!!
그 사이 몇 번 다른 곳의 슈톨렌을 먹어봤는데
매 년 가격만 비싸지고, 늘 무언가 아쉬운 맛..
코스트코의 슈톨렌도 갓성비 말고는 아쉬운 맛이라는 것만 알아버렸다.
무엇보다 코스트코의 슈톨렌은 마지판이 없었다..
마지판
아몬드가루로 만들어졌어요(+설탕, 계란흰자) 달달하고 맛있음 아무튼 맛있음
요게 들어가 있는 슈톨렌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슈톨렌 유목민으로 지내던 내게
새로운 사랑으로 찾아온 그 아이.
정말이지 그 맛은..
말도 못 하게 맛있는 맛!!!
(물론 남편은 동의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럼주에 절인 과일과
견과류, 쫀쫀한 식감, 달콤한 마지판.
그렇다고 너무 달아서 힘들지는 않은.
겉에 묻은 슈거파우더까지도 맛있는.
커피 한잔 진하게 우려서
슈톨렌 두 조각 얇게 잘라서
슈톨렌을 드실 때는 가운데에서 끝으로 가게 먹는 게 좋대요
가운데부터 아주 얇게 잘라서 먹고, 자른 뒤 단면을 밀착시켜서 마르지 않게 해서
두면 마지막까지 그 풍미를 잃지 않고 먹을 수 있대요.
포크로 한 입, 한 입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가 쏘옥 넣는다.
나는 와구와구 먹는 것보다
한 입씩 이렇게 야물야물 먹는 것이 더 좋다.
씹을 때마다 쫄깃한 식감과 풍미를 가득 느끼면서.
우물우물. 또 우물우물.
음~~ 음~~
그렇게 한 조각 씩 매일 먹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
다 먹고 나면 어느새 신년을 맞이하게 된다.
매 년 12월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내가 대체 이 일 년 동안 무얼 했지.
하릴없이 시간만 가는구나.
갑자기 밀려오는 허무함에 우울해질 때,
이 작은 빵 한 조각으로
마음에 작은 빛을 비춘다.
아주 작지만, 충분히 따듯하고 밝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연말분위기를 즐기고
허전함 보다는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으며,
그동안 가정을 열심히 일구어내느라 수고했노라고
나에게 인사를 보낼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 또한 일 년 동안 열심히도 살아낸
우리 가족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계획한다.
수고했어요! 모두들!
모두모두 수고했어요.
올 한 해 꽉 채워서 열심히 살아내느라
얼마나 고생했어요.
올해 잘 보내주고
내년을 맞읍시다.
설레임으로 맞은 내년에는 반드시
행복한 일들이 가득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