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씨는 누구인가

by 한유주

온통 하얗거나 회색인 방은 단촐했다. 한쪽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큰 거울. 성인 남성 한 명이 넉넉하게 쓸 크기의 침대, 적당한 크기의 책걸상, 작은 행거, 스탠드 조명 하나. 그게 철수 씨가 사는 방의 전부였다.

똑바르게 누워 잠을 자던 철수 씨는 알람이 울리기가 무섭게 눈을 떴다. 물론 나이가 어느 정도 차다 보니 눈이 한 번에 떠지는 건 아닌지라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대체로 철수 씨는 알람에 맞춰 생활을 잘해 나가는 편이었다. 철수 씨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고 일어서서는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갔다.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이를 문지르며 거울을 본 철수 씨는 괜히 퉁퉁 부은 눈두덩이도 한 번 만져보고 입을 더 길게 늘여 이-하는 소리도 내어 본다. 매일 보는 거울이고 자신의 얼굴이긴 한데 어쩐지 더 낯선 느낌이 드는 아침이었다. 양치를 개운하게 하고 세수까지 잘 마치고 나서 화장실을 나온 철수 씨는 행거에 걸린 진회색 맨투맨, 진회색 고무줄 바지를 손에 들었다. 고를 것도 없이 딱 떨어지게 한 벌씩 걸려 있는 옷들이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은 철수 씨는 터벅터벅 걸어 나와 행거에 잠옷으로 입었던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걸쳐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철수 씨의 또 다른 아침 일과는 문진표 작성이었다. 아침마다 자면서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 밤 사이 몸에 이상한 느낌은 없었는지 하는 일상적인 질문들이었다. 아, 몇 년 전부터 은근슬쩍 인지 기능과 정신상태에 대한 질문들이 추가되었다. 매일 보는 질문이지만 꼼꼼하게 읽고 답안을 작성해 채워 넣었다. 이 안에서 철수 씨에게 주어지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문진표는 매일 아침 여덟 시, 태블릿 pc에 알람이 뜨면 작성해 전송했다.


익숙한 손길로 스마트 펜슬을 손에 쥐고 차분하게 답을 적어 넣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이 방으로 들어와 철수 씨의 상태를 직접 살필 예정이었다. 이전에는 이런저런 시험도 보고 체력 검진도 하고, 무언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았던 철수 씨는 이 방에서 산지 55년이 지날 쯤부터는 체력 검진도 하지 않고 이렇게 업무도, 임무도 없이 매일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역시나 철수 씨가 '전송'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처럼 보였던 작은 틈이 벌컥 열렸다.


- 철수 씨, 안녕하세요.


철수 씨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 아, 장만씨는 어디 갔습니까?

- 네?


철수 씨가 놀란 건 문이 열려서가 아니었다.


- 아, 앞으로 장만 선배 대신 제가 올 거예요.


철수 씨의 시선은 앞에 선 남자의 명찰로 향했다.

철수 씨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답한 사람은 찬영이었다. 철수 씨는 질문을 덧붙이는 대신 의자에서 일어나 찬영의 앞으로 가서 섰다. 간단하게 외형을 확인한 찬영은 인바디 기기를 향해 손짓했다.

철수 씨는 익숙하게 슬리퍼를 암전하게 가지런히 벗고 기계 위로 올라섰다.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핸들을 잡으니 작게 음성 안내 소리가 흘러나왔다. 찬영은 철수 씨를 보는 대신 열린 문 쪽으로 걸어가서 행거를 끌고 들어왔다. 철수 씨가 갈아입은 옷이 걸린 행거는 밖으로 꺼내고 그 자리에 똑같은 옷이 걸린 새 행거를 가지고 들어와 밀어 두었다. 철수 씨가 인바디 기기에서 내려오니 찬영이 들고 있던 태블릿에 진동이 울렸다.

찬영이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며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 있는 사이 철수 씨는 슬리퍼를 조용히 신고 처음에 앉았던 의자로 돌아가 엉덩이를 붙였다. 혼자 분주하게 무언가 확인을 하던 찬영이 철수 씨에게 시선을 옮겼다.


- 오늘은 홍채 스캔도 한 번 할게요.


찬영의 말에 철수 씨는 대답 대신 끄덕끄덕 하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 각도를 맞춰 주었다. 찬영은 태블릿의 렌즈를 철수 씨의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철수 씨는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고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장만보다 키가 조금 쓴 찬영 덕에 고개를 살짝 더 위로 들어가며 스캔을 마치니 알림음이 들려왔다. 찬영은 철수 씨에게 되었다, 어쨌다, 별 다른 말을 해 주지 않고 그저 렌즈를 치우고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는 행위만을 반복했다. 화면을 유심히 보여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터치를 하며 무언가 확인했다. 철수 씨는 절차가 끝난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건지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책상 앞으로 돌아 앉았다. 찬영은 신발을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저벅저벅 걸어가 트롤리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 철수 씨가 어제 하루 종일 먹었던 식량이 들어 있던 트롤리는 대충 밖으로 밀어 놓고 그 자리에 새 트롤리를 가져다 놨다.


철수 씨는 혼자서 말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찬영을 눈으로 좇았다. 찬영은 철수 씨를 다시 쳐다보지 않고,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버렸다.

철수 씨는 닫힌 문을 잠시 보다가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읽다 만 책 한 권을 꺼내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의자를 조금 당겨 책상과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앉은 자세를 하고 나서야 책을 펼쳤다.




찬영은 트롤리를 발에 걸리적거리지 않을 정도의 구석 자리에 대충 밀어 놓았다. 내일이 되면 어차피 누군가가 새로운 트롤리를 준비해 둘 것이었다. 행거도 옆으로 슬쩍 밀어 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연구실 밖으로 나오려면 문 몇 개를 지나가야 했다. 문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신분증을 태그 해야 하는 번거로운 출입 절차였다.

찬영은 마지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는 한 숨을 살짝 내쉬었다. 앞으로 매일같이 이 과정을 거쳐서 아침마다 저 방을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해지려던 참이었다. 마지막 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넓은 공간의 사무실이었다. 바로 앞에는 불투명 시트지를 붙인 유리벽을 둘러친 작은 회의실이 있고, 칸막이가 쳐져 있는 책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예전에야 연구 장비들도 많고 사람도 더 많은 공간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연구 장비들도 줄고, 사무실에 더 가까워 보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장만은 '예전엔 꼿발로 다녀야 했어, 비싼 장비들이 워낙 많아서.' 하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찬영은 구석진 곳의 제 자리를 찾아갔다. 자리에 앉아 태블릿의 자료들을 노트북에 연결하니 무언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지 노트북 쿨링팬 소리가 작게 웅웅- 울렸다. 말도 안 되는 구식 노트북으로 뭘 하라는 건지, 하는 생각도 잠시 뿅뿅 떠오르는 화면의 팝업창을 확인했다. 무언가 업데이트가 되었다. 보충 정보가 필요하다, 입력이 필요하다, 하는 걸 하나하나 누르다 보니 어느새 데이터 이동은 완료되었다.


- 첫 만남은 어떠셨나?


주은이 찬영의 근처를 지나다 슬쩍 말을 걸었다. 찬영이 갑자기 들린 소리에 고개를 훅 들어 보니 파티션 옆에 선 주은과 눈이 마주쳤다.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까딱 하고는 시선을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옮긴 찬영에게 '싱겁기는' 하고 툴툴대는 주은은 찬영의 옆을 떠날 줄을 모르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곁눈질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 할아버지 건강은 좀 괜찮으시대?

- 뭐, 매일 똑같은 것 같은데? 체형 변화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주은은 본격적으로 찬영의 옆에 붙어서 화면을 살폈다.


- 어유, 정정하시네.


주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장만 부장님 그만둔 건 별 반응 없으셔?

- 뭐, 아무 말 없던데? 몰랐던 거 같긴 해.

- 그래?


주은이 의아한 지 고개를 삐뚜름하게 하고는 끄덕였다.


- 있다가 점심이나 같이 먹자.

- 왜?

- 이직 기념으로 누나가 맛집 소개 해 주려고 그런다. 너 어차피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잖아?

- 그렇긴 해. 알겠어.


주은은 찬영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고는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찬영은 화면을 다시 보고 있었다.


사실 찬영은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꼼짝없이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짜증이 올라오던 참이었다. 장만이 급하게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데리고 들어와 놓고는 주말 사이에 순식간에 발을 쏙 뺀 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런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불만스러웠다.

사실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뭐, 이직하고 첫 1년은 적응하는 데 바쁘다고들 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이런 허드렛일이라니, 게다가 혼자 담당하는 프로젝트라 누구에게 넘길 것도, 넘겨받을만한 일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직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구직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만이 주말 사이에 일을 그만둔 것도, 장만이 아닌 다른 직원에게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들었다. 혹시 저 안에 들어가 계신 노친네한테 귀띔을 했으려나 했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장만이 슬쩍 흘린 '복제인간'에 홀려서 오겠다고 한 것도 있었다. 복제인간에서 파생된 연구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새로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할 텐데, 그 일을 담당한다는 꿈에 부풀어서 자세히 묻지 않고 덥석 문 자기 잘못도 있긴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꼬치꼬치 캐물을 걸 그랬다.

금요일 오후에 출근해 장만에게 간단하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복제인간을 만날 수 있겠냐 물었을 때는 검진 시간이 지나서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러면서도 검진 때 할 일을 전달해 주는 걸 보고 의심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자며 다가온 주은도 귀찮았다. 기분만 따져서는 점심 따위는 거를 것도 같았는데 그래도 선배라고 주은이 먼저 다가와 챙겨주는 건 고마운 일이긴 했다. '난 성인이다', '난 어른이다'를 속으로 되뇌며 잡쳐버린 기분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 장만 선배 연락은 해 봤어?


역시나 밥 먹으면서도 주은은 장만 이야기를 했다. 물론 졸업 후에 오랜만에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이랄 게 많지 않으니 이미 자리를 비운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제대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있을 리가 없었다.


- 연락할 게 뭐가 있어. 나 여기 버리고 혼자 쏠랑 도망갔는데.

- 에이, 그럴 사람은 아니다.


주은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찬영의 속을 긁었다.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뜨끈한 우동을 앞에 둔 두 사람이 괜히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으며 애매한 분위기를 풍겼다. 찬영은 속으로는 제가 그런 건 이해하겠지만 주은은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구나 싶었다.


- 그럴 사람 아니야. 뭔가 이유가 있겠지.


주은은 우동 면 한 가닥을 건져 숟가락에 얹으며 작게 말했다.

찬영은 순간 머릿속으로 꾸리한 생각이 스쳤지만 어른이니 남의 일에 말 얹지 말자 싶어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누가 들어도 의심 갈 만한 일이었다. 아, 주은이 결혼을 했던가? 장만은 혼자이긴 한데.


찬영은 멍하게 화면을 쳐다봤다.

인수인계 일이라고는 저 겹겹이 둘러쳐진 연구실 안에 들어가 살고 있는 철수 씨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뿐이었다. 사실상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숨겨진 복제인간이라니, 이게 실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드디어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다고 철썩같이 믿으며 쾌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학교 다닐 때 장만이 그리 눈에 띄던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큰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하는 건방진 생각도 잠깐 했더랬다.

철수 씨의 나이는 환갑이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 사이에 새로운 복제인간은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더 이상 철수 씨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철수 씨 이후로는 복제인간 프로젝트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비밀리에 복제인간을 만들고 있는지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지금 당장은 이 세상 유일한 복제 인간이 찬영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는 게 중요했다. 저 작은 원룸 크기의 연구실 안에 들어가 살고 있는 저 복제인간.


찬영이 이제까지 본 철수 씨의 데이터는 균일했고, 특이점도 없었다. 하지만 철수 씨의 전후로 진행되었던 연구작들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조물주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온갖 시행착오가 컴퓨터 하드 몇 개에 담겨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수 없이 많은 실패가 가득했다. 배아 자체가 제대로 발달을 하지 못하거나, 발달하고도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의 장애가 발견되어 그대로 폐기되기도 했다. 처참하다는 말도 부족하려나 싶은 성과였다. 사실 철수 씨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데이터를 볼 수록 찬영은 절망을 느꼈다. 여기서 했던 모든 실패들을 피해 새로운 연구를 하려면 일단 이 방대한 실패작들에 대해 모두 공부해야 했다.

장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았다.

문제는, 철수 씨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의 데이터에도 큰 발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철수 씨가 태어났다면 그 성공을 발판으로 무언가 해 봤을 텐데 왜 또 다른 복제 인간은 만들어지지 못했을까. 그 뒤에도 수많은 실패의 기록들이 찬영이 폴더를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터 상으로는 문제가 될 부분이 없어 보였는데 모두 실패라는 게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