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비밀스러운 접선

by 한유주

눈이 비와 섞여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도심 한 복판의 24시간 프랜차이즈 카페 안 2층에 앉은 장만은 멍하게 밖을 보며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무엇인가 불안하다는 표시를 팍팍 내면서도 표정만은 태연한 척,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게 연기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한가득인 걸 감추고 있다는 내용의 지문을 어딘가에 써붙이고 앉아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창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 카페 안을 한 번 둘러보고, 이 두 가지 행동만을 반복하는 김장만은 시선을 절대 한 곳에 두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동안 밤을 즐기는 사람들은 장만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누고, 그 와중에는 취한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조금이라도 술에서 깨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술에 취해 언성이 높아진 채 대화라는 걸 시도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 김장만 씨?


장만은 유리창에 비친 두 여자를 보고 고개를 휙 돌렸다.


- 맞으시죠? 김장만 씨.

- 아아, 네.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나는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 맞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장만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 그냥 계세요.


긴 머리를 낮게 대충 묶은 여자는 하얀 패딩 안에 체크무늬 셔츠를, 진한 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옆에 다른 여자는 짧은 숏커트를 하고 검은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 잠근 상태였다.


- 장선빈입니다.


숏커트를 한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장만은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을 맞잡았다.


- 저희한텐 어떻게 연락 주시게 된 건가요?

- 여기서 이야기합니까?

- 그럼요?


두 사람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봤다.


- 사무실로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 아.... 저희가 사무실 월세를 빼 버려서....


퍽 난감한 표정을 한 선빈을 보는 장만의 눈초리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소개도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옆에 자리를 잡은 여자에게 시선이 옮겨지는 게 자연스러웠다.


- 김빛나입니다. 변호사예요.

- 변호사요?


갑작스러운 '전문직'의 등장에 장만이 조금 당황하려던 찰나 빛나가 손을 내저었다.


- 저희 둘이 매일 같이 다닌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세트.


그 말이 진정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지 장만은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을 하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 사무실은 없구요, 여기서 이야기 나누는 게 정 불편하시면 저희 집으로 가시겠어요?


장만은... 영 표정을 감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너무 투명했다.

사무실도 없는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게 선빈의 눈에 너무 잘 읽혀서 기분이 상할 참이었다.


- 저희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김장만 씨가 저희한테 먼저 연락 주셨잖아요.

- 그렇긴 합니다만....


빛나는 선빈보다는 이런 상황을 잘 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선빈은 이미 기분이 상해서인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은 채 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태도가 장만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긴 했지만,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았다.


- 가시죠.


선빈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빛나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고, 두 사람 모두 선 채로 앞에 앉은 장만을 내려다봤다. 장만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언가 결심했다는 얼굴을 하고 엉덩이를 뗐다.

속으로는 '1대 2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여차하면 내가 어떻게든 떼어놓고 도망은 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앞서 가는 두 사람을 따라갔다. 별 대화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걷는 두 사람은 편안해 보이기도, 데면데면해 보이기도 했다.

어느 골목 구석의 공영 주차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장 구석 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차 10대를 세우면 꽉 찰 정도의 아주 작은 주차장이었다.


- 잠시만요.


빛나가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더니 장만에게 말했다. 차를 빼고 타라는 말인 건 곧잘 알아들어서 장만은 뒤로 조금 물러났다. 빛나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고 나왔고 선빈이 자연스럽게 조수석 쪽으로 걸어갔다.


- 타세요.


빛나가 창문을 열고 장만에게 말했다. 장만은 하는 수 없이 뒷자리 문을 열었는데 서류가 한가득이라 차 트렁크 쪽을 뺑 돌아 다른 쪽으로 타야 했다.


- 사건이 좀 있어서, 금방 가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차에 겨우 몸을 구겨 탄 장만을 룸미러로 슬쩍 본 빛나가 무심한 말투로 장만에게 툭, 말을 걸었다. 장만은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인사치레로도 하는 그런 말을 돌려주진 않았다.

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반동으로 서류가 앞으로 쏟아지려고 울렁 하니 장만은 반사적으로 서류를 잡아 다시 제 자리로 세워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손을 다리 사이에 끼워 모은 채 창 밖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나 음악도 틀지 않은 차 안은 너무 조용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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