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씨에게 벌어진 틈새

by 한유주

장만은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철수 씨에게 신문을 건네주곤 했다. 철수 씨가 유일하게 연구실 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다 보니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철수 씨에게는 별미와 같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찬영이 밀고 들어오는 트롤리 위에 철수 씨를 위한 신문 한 부도 같이 얹혀 있었어야 했다.


- 저기....


철수 씨가 조심스럽게 찬영을 불렀다.


- 네?

- 오늘 신문 오는 날인데, 신문이 안 왔나요?


신문이 안 왔냐는 게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이 찬영의 얼굴에 스쳤다.


-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마다 신문을 주셨었거든요, 장만 씨는.


찬영은 장만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오늘 신문은 철수 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 내일 드릴게요.


찬영은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괜히 철수 씨의 얼굴에 스치는 실망스러움을 무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찬영은 트롤리를 마저 밀어 놓고는 별다른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연구실 문을 닫았다.

철수 씨는 어쩐지 조금 기가 죽어 보였다. 책상에 앉아 책을 대신 들어 보지만 별로 끌리지 않았던지 책장에 다시 꽂으려다, 다시 책을 펼쳤다가 결국 덮어 버렸다.


찬영은 괜히 찜찜했다. 여러 문을 거쳐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떨쳐지지 않는 찜찜함이었다. 괜히 철수 씨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려던 찰나 떠오른 건, 이게 오늘 하루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업이라 누군가에게 보고를 할 필요도 없고, 데이터만 잘 쌓아두면 되는 것인데 벌써부터 이런 권태감을 느끼기엔 자신의 젊음이 아깝다는 생각을 고작 삼 일째 아침에 저 문을 드나들 때마다 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자괴감을 느꼈다. 철수 씨를 대상으로 새롭게 업무를 진행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사람을 잡아 두기만 해서 괜찮은 것일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지만, 말할 사람이 없으니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철수 씨가 신문 이야기를 해서인지 사무실 한편 회의용 책상에 놓인 신문에 눈이 갔다. 찬영은 터벅터벅 걸어가 신문을 집어 들었다.


- 양 과장!


멀리서 주은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큰 일이라도 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찬영은 주은이 저렇게 자신에게 다급하게 걸어올 만큼 날 큰 일이라는 게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멀뚱하게 서서 주은을 보기만 했다.


- 너, 장만 선배랑 전화 돼?

- 뭐?


또다시 시작되는 김장만 타령에 찬영의 얼굴이 찌푸려지려던 찰나 주은이 찬영이 들고 있던 신문을 잡아 채 1면을 눈앞에 펼쳐 주었다. 그리고 찬영이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팔을 꾹 쥐어 잡고는 사무실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가 버렸다. 덕분에 찬영은 끌려 걸어가는 내내 신문 1면을 읽어야 했다.


- 이 난리통에 휴대폰도 안 보고 뭐 하고 있어?

- 아, 내 폰....


찬영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봐야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나올 리는 없었다.


- 하... 진짜 내가 못살아.


주은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찬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네이버 메인 뉴스를 장식하는 '[단독]'으로 가득한 기사들은 '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찬영은 가슴이 쑥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졌다.


- 이게... 장만 선배 짓이라고?

- 너 완전 엿 먹은 거야.


주은은 저가 더 화가 난 것처럼 굴었다. 주은의 표현에 따르면 정작 엿을 먹은 건 찬영인데도 주은은 마치 제 일인 양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 장만 선배 너 들어오고 바로 잠수 탔지?

- 어? 아... 그렇지....


보통은 이런 큰일이 일어나면 도파민이 돈다는데 자신에게 닥치는 큰 일은 아득함만 주는가 보다. 찬영이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써 가며 상황 파악을 하려고 애를 쓰는 동안 주은은 옆에 서서 씩씩대고 있었다.

찬영은 문득 주은이 이렇게까지 남의 일에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어 열이 올라 붉어지고 있는 주은의 뺨을 멍하게 쳐다봤다.


- 진짜, 배신자다. 욕을 해도 시원찮아.


주은은 머리를 쓸어 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가며 배신감을 한껏 표출했다. 거기에 찬영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아...' 밖에 없었다.


사실 찬영은 왜 하필 그때 '신문은 내일 주겠다'라고 했던 자신이 떠올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차라리 지금 귀찮아도 가져다주겠다고 할 걸 그랬나? 지금 가져다주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도 상황 파악이 안 됐는데 이런 폭탄을 넘길 필요는 없지' 생각했다.

주은이 짜증을 내며 쌍욕을 하기 시작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직원 한 명이 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확실히 눈이 마주쳤다. 사람이 패닉에 빠지면 이렇게 디테일한 감각까지 살아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연구 과제로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다뤄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찬영은 눈치라면 엿 바꿔 먹을래도 없는 남초 집단에서 살아왔지만 그중에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꽤나 빠삭했다. 그런 찬영은 주은의 그 찰나의 시선, 눈동자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패닉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냥 찬영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된 스킬 같은 것이었다.


- 뭐야?


그래서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평소의 찬영이라면 삼켰겠지만 지금은... 어쨌든 큰 충격을 받아서 자기 절제나 조절이 조금 어렵긴 하니까.


- 뭐가?


주은의 반응이 더 이상했다는 건 찬영의 레이더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주은은 평소보다 더 퉁명스러웠고, 그와 눈이 마주치고 찬영이 '뭐야?'하고 묻자 순식간에 분노를 잠재우고 차분해졌다. 그래, 무언가 주은을 건드린 게 틀림이 없었다.


- 선배 일도 아닌데 뭐 그렇게 화를 내?


찬영은 괜히 주은을 찔러보려고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 야, 넌 화도 안 나냐? 너 대신 이러는 거잖아.


주은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이 의심에 의심을 더했다.


- 내 대신이라고 말하지 말고.

- 뭐, 왜?


주은은 다시 화를 낼 것처럼 반응했다.

그리고 찬영은 확신했다. 이 화는 배신감의 표출이 아니었다. 그냥 장만의 급발진에 꼬여버린 상황에 대한 화다. 주은은 생각보다 속을 읽기 쉬운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한 찬영이었다. 그렇게 한참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게 되었다. 그럴수록 주은은 조금씩 찬영의 눈을 피하고, 딴청을 하려 들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고 찬영의 손에 들려 있던 자신의 휴대폰을 뺏어 들어 무언가 확인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봐야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거나, 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는 의미 없는 행동일 것이다.


- 됐다. 어휴, 넌 너무 물렁해서 문제야.


주은은 괜히 한 마디 던지고는 도망치듯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찬영은 주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자리로 돌아왔다. 괜히 휴대폰을 들어 연락이 온 게 있는지 확인했다. 뉴스 어플에서 내보낸 푸시 알람으로 [단독] 기사에 대한 알림만 잠금 화면에 떠 있고, 별 다른 연락이 온 건 없었다.

카카오톡을 켰다. 장만의 메시지는 정확히 금요일 퇴근 후 시점부터 끊겨 있었다. 사실 퇴근하고 직장 동료와 연락하는 것만큼 불쾌한 일도 없긴 했다. 심지어 금요일 저녁이었으니. 그전 장만과 나눴던 대화 내용도 특별할 건 없었다.

찬영은 잠깐 고민했다. 연락을 취한다고 해서, 되기나 할까? 하는 의심을 하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입력칸을 눌러 키보드 팝업을 올렸다.

[선배, 저한테는 미리 설명이라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서운합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찬영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의 항의였다. 주은의 말대로 너무 물렁한가? 생각도 했지만 자극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눌러 버렸다.


장만에게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뭐, 갇혀 있는 사람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거나, 자신이 가해자처럼 느껴졌다거나,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찬영이 아는 장만은, 뭐랄까 조금 말랑한 사람에 가깝긴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괜찮은 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다 연구실 저 안쪽, 겹겹이 쌓여 있는 문을 지나가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는 철수 씨가 떠올랐다. 정작 이 사건의 중심인 철수 씨는 지금 연구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 모든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도 당사자인데, 설명을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들었지만 또 동시에 당사자라고 해도 사회 경험이라는 게 전혀 없는, 연구실 밖의 삶이 이제까지 전혀 없던 사람인데 이렇게 툭, 대형 사고랄지,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에 던져 버려도 되나. 말 그대로 달리는 버스 밑에 사람을 던져 넣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이 상황에 철수 씨는 상처를 받을까, 기뻐할까, 가늠이 전혀 되지 않았다.


철수 씨는 문진표를 작성하고도 아무도 오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올 때가 됐는데 왜 아무도 오지 않지, 하는 생각을 하고 멍하게 의자에 앉아 빈 허공을 보고 있었다.

철수 씨의 까만 눈동자에는 연구실 천장이 가득 비쳤다.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쓸데없이 비밀스러운 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