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는 사실 어젯밤부터 두통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장을 달자마자 '기밀'이 붙은 파일들을 끌어다가 샅샅이 훑어가며 읽었어야 했나, 혹시 철수 씨 말고 다른 기밀 프로젝트가 있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이 부유했지만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려면 눈 돌릴 틈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부임하자마자 생긴 것인지, 상황이 참 엿같았다. 이렇게 큰일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쉬쉬하고 조용히 넘기려고 했던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소장인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상황이 절망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이었다는 그 내부자는 왜 자신이 아닌 외부인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 것인지, 하나같이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도하의 위치는 알고 싶지 않다고 해서 몰라도 되는 자리도 아니고, 알고 싶다고 해서 모든 걸 알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소장인데도, 손 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그저 누가 떠 먹여 주는 것만 먹고 있었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
우선 남겨진 보고서를 읽었다. 양이 꽤나 방대했다. 물론 60년이 넘는 아니 어쩌면 70년, 80년 치의 자료이니 방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밤을 꼴딱 새워 가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은 공부해야 했다. 최근으로 올 수록, 아니 철수 씨의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갈 때쯤부터는 새로운 내용이랄 게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철수 씨의 생성 전 후가 굉장히 복잡했다. 60년도 번에 철수 씨가 생겨날 때까지 이어진 끊임없는 실패의 기록. 철수 씨가 완성된 이후 또다시 이어진 실패의 기록. 철수 씨의 성장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성격이나 신체적 결함이 있는지 기록한 것, 유전자의 원 주인과 비교한 기록. 다양한 게 남아있긴 했지만 사실상 프로젝트를 폐기하기로 한 이후는 기록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고 철수 씨를 이용한 새로운 연구를 한 흔적도 크게 눈에 걸리지 않았다. 엄연한 한 생명이니 마음대로 착취할 수 없었던 연구자의 티끌 같은 양심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철수 씨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연구소 안에서도 많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보고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철수 씨를 만나지 않고는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하는 철수 씨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철수 씨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그 긴 시간 연구실 안에서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 원망을 들을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두려웠다. 자신의 존재가 철수 씨에게 혼란만 주는 게 아닐지,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을 대한다는 건 어떤 태도라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극단적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니 어떻게 대하는 게 예의 있는 첫 만남일지 고민했다.
그러나 철수 씨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철수 씨를 만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터져버린 이상 철수 씨가 외부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전에 철수 씨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려준다거나, 필요하다면 경고를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물론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린 장만을 법적으로 조치하기에도 난감한 부분이 있다. 장만의 내부 고발의 이유가 아주 확실했기 때문이고, 도하 자신을 장만의 자리에 놓는다고 하면 응당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철수 씨도 독립된 한 생명이며 개체이니 그의 인생을 주고 싶다는 것, 연구실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걸 믿는다면 충분히 장만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문 기사에 나온, 대리인의 입장 표명문에 걸린 한 줄이었지만 그래도 장만의 의도를 읽은 도하의 눈과 머릿속에는 강렬하게 박힐 수밖에 없었다.
도하는 밤새 씻지 못해 찝찝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이대로 샤워를 했다가는 내일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뜰 것 같았고,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질끈 동여 묶었다.
도하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