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철수 씨는 장만이 신문을 가져다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세상이 작은 방 한 칸이 전부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도, 연구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피부로 와닿아 느낄 수 있을만한 일은 없었다. 만나는 사람은 겨우 한, 두 명이었고 그 마저도 간단한 업무만 처리하고 나면 방을 나가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 주고, 책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저 만들어진 세계라는 생각이 앞섰지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알게 하는 매체들은 아니었다.
신문은 달랐다.
책이나 강의에서 나온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 씨를 키운 사람들은 대부분 연구원이나 공학도들이었으니 철수 씨에게 전해진 지식이 과학과 공학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방 한 칸이 그 어느 세상보다 컸다. 철수 씨는 작은 방에서 큰 세상을 껴안고 살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도 바뀌고 그들이 가져다주는 책도 바뀌어 갔지만 철수 씨와 이 방만큼은 지난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모양 그대로를 유지했다.
철수 씨는 그 방 안에서 자랐고, 성장했으며 늙어 가고 있었다.
철수 씨는 신문을 처음 보던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책과는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얇은 종이뭉치에 어쩜 그렇게 새로운 게 가득인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장만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장만은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문을 철수 씨에게 조용히 건넸다. 철수 씨는 이게 책에서만 보던, 드라마,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보던 그 신문이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신문의 그 물성에 감탄했다. 그게 첫 반응이었다.
새해 첫날의 신문이었다. 지나간 한 해의 정리, 앞으로 다가올 한 해의 전망과 희망, 과거와 미래가 담긴 신문이었다. 새해에 꼭 담기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연과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논평가들의 시선까지 다양한 이야기와 말이 담겨 있었다. 철수 씨는 그 얇은 종이 몇 장으로 자신이 모르는 공간과 세계를 처음 만났다.
참 신기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즐거운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장만이 가져다주는 신문을 착실히 읽어 갔다. 철수 씨는 신문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평소 읽는 소설책들보다 문체는 조금 딱딱할지 몰라도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종에 담긴 이야기가 바로 어제, 이 연구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경이로운 감정까지 들었다.
찬영은 이 신문을 철수 씨에게 가져다주는 게 옳은 일일지 고민했다. 확신은 없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 본인의 일이니 알려주는 게 맞겠다 싶다가도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대신 이렇게 폭탄을 투척하듯 신문 한 부를 건네는 게 맞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판단이 속으로 깊은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마주 앉아 설명을 하려니 찬영은 아는 게 없었다. 이제 겨우 이곳에 출근한 지 채 일주일이 안 되었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장만은 도대체 왜, 하필 이런 때에 일을 터트려서는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똥을 던져 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만에게 무슨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했었나 과거를 되짚어 봤지만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돈과 철이 없던 시절에 술에 취한 장만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술값을 계산했던 정도였다.
찬영은 신문 첫 장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고발장을 들고 선 두 사람의 사진을 봤다. 나름대로 장만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일지 장만의 얼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제 얼굴도 이름도 알리지 못할 거면 이런 일은 왜 벌인 것인지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찬영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약속대로 신문 한 부를 손에 쥐고 연구실로 향했다. 찬영이 고른 신문은 어제 있었던 국가대표 탁구 경기 결과가 첫 면에 걸린 스포츠 신문이었다. 이것도 신문이라면 신문이긴 하니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찬영이 출입증을 스캔해 가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한 장면은, 제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이미 보고 있는 철수 씨의 뒷모습이었다.
- 아, 이, 이거.... 누가....
찬영은 스포츠 신문을 등 뒤로 숨겼다.
- 어떤 여자분이 주고 가셨습니다.
- 여자요? 도대체 어떤 미친....
찬영은 노인 앞에서 욕은 할 수 없지, 하고 겨우 튀어나오려던 상스러운 말을 삼켜냈다.
- 연구원이신 것 같은데, 누구신진 잘 모르겠습니다.
철수 씨는 의외로 꽤나 태연해 보였다. 그게 제 이야기인 걸 알기는 하는 걸까 하는 찬영의 표정에도 태연하게 신문을 차분하게 읽고 있었다. 찬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의 명확한 증거가 제 손에 들려 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졌다.
- 장만 씨는 대단하네요.
- 네?
철수 씨가 신문 일 면을 책상 위에 잘 보이게 올려 두었다. 장만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도 직접적으로 쓰여 있진 않았지만 철수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 저 혹시....
찬영이 조심스럽게 철수 씨의 눈을 들여다봤다.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화면에 비친 눈동자, 철수 씨의 발끝이나 손끝만 쳐다봤던 찬영이 처음으로 철수 씨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 실례되는 질문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계신가요?
- 저요?
철수 씨는 잠시 생각했다.
- 알고는 있습니다. 느껴 본 적은 없지만.
- 알고 있다는 게....
- 복제 인간이요. 어떤 분의 유전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복제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곳이 실험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아아, 다 알고 계시군요.
찬영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 감췄던 신문을 연구실 밖으로 휙 던지고 안으로 한 발 들어왔다.
- 저에게 오시는 연구원분들은 많진 않지만 모두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다릅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찬영이 한 발 더 내딛으려던 발을 멈췄다.
- 예를 들면, 장만 씨는 이 방에 들어오는 출입증을 스캔하기 전에 노크를 해 주십니다. 처음이었어요, 그런 분은.
찬영은 자신도 모르게 연구실의 문을 볼 수밖에 없었다.
- 찬영 씨는 느릿하게 걸어 들어오고 절 잘 쳐다보지 않으시죠.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찬영은 조금 당황했다. 이런 말을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지식을 전달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철수 씨의 태도를 받아들이는 게 조금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수 씨는 자신을 보는 찬영의 얼굴을 처음 보듯 의아하고 신기한 눈으로 봤다.
- 철수 씨.
- 네.
찬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 혹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철수 씨는 선뜻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 내가 왜 들어가면 안 되는데요?
철수 씨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살짝 열린 문 틈으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찬영이 잠깐 연구실 안을 훑어보고는 문 쪽을 쳐다봤다.
- 잠시만요.
찬영은 철수 씨에게 미안한 표정을 일부러 더 과장되게 지어 보이고는 연구실 밖을 살짝 내다봤다.
- 비켜요.
- 안됩니다, 소장님.
도하와 주은이 연구실 첫 입구 앞에 서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찬영은 문을 아주 작은 틈만 남기고 닫은 채로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무슨 일이십니까?
찬영의 말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휙 돌았다.
- 양찬영 씨?
- 네.
- 소장 진도하에요.
-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찬영은 도하의 요구 사항이 무엇일지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오히려 주은이 저기 서서 도하를 말리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 저도 철수 씨를 좀 만나야겠는데요.
역시나 예상 대로였다.
- 안 된다고 할 겁니까?
- 소장님, 철수 씨의 존재는 기밀에 부쳐져 있어서....
찬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주은이 가로챘다.
- 더 이상은 아니죠? 그 기밀이라는 거.
도하는 주은의 말꼬리를 끊어먹고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사진에서만 봤던 짧은 단발머리를 묶은 채로 청바지에 흰 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모습만 보자면 평범한 회사원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또 동시에 잘 다려진 셔츠와 꼬질한 명품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 철수 씨에게 저를 만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해 줘요.
찬영은 생각지 못한 도하의 요구에 조금은 당황했다. 원한다면 사람들을 다 치워버리고 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법적으로나 절차상으로 이 연구소의 주인이니 하고 싶다면 철수 씨를 밖으로 내보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분명 철수 씨에게 의사를 묻고 있었다.
- 잠시 기다려....
찬영이 뒤를 돌고 멈춰 섰다. 열린 문을 잡고 아웅다웅하는 세 사람을 보고 있던 철수 씨와 눈이 마주쳐서였다. 찬영은 순간 심장이 퉁, 떨어졌다가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기분을 느꼈다.
- 철수 씨... 어, 여기는....
- 누구신지는 압니다. 들어오시겠습니까?
철수 씨의 정중한 초대였다. 아, 초대하고 하긴 조금 어폐가 있긴 했다. 도하는 철수 씨와 눈이 마주쳤고 말없이 잠시 그의 눈을 쳐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철수 씨가 도하를 만나겠다고 결정한 이상 주은도 도하를 말릴 방법은 없었다.
도하가 연구실로 들어가자마자 주은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찬영을 원망하듯 노려봤다.
도하는 조심스럽게 연구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 안이 도하의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쩐지 손 끝이 굳어가는 것 같아 손 끝과 발 끝을 꼼지락댈 수밖에 없었다.
- 앉을만한 곳이 이 의자뿐이라, 앉으세요.
철수 씨는 이 방에 하나뿐인 의자를 흔쾌히 도하에게 내어 주었다. 도하는 천천히 의자가 있는 쪽으로 향하며 방의 중심을 가로질러 걸었다. 철수 씨가 6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이 방은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도하가 전혀 모르던 공간이자 세계였다. 철수 씨가 쓰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이 작은 방에서 철수 씨는 자신의 세상을 살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의자에 앉으니 방은 더 작아 보였다.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는 사무실 보다도 작은 공간이었다.
- 저에 대한 일로 곤란하신 건가요?
철수 씨는 다른 말을 붙이지 않고 간결하게 물었다. 도리어 도하가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 이건....
철수 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도하가 철수 씨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리를 내는 대신 조용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 철수 씨는 여기서 나가고 싶으신가요?
- 왜 모두 그걸 물어보시는 걸까요?
도하는 입을 다물었다.
철수 씨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이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집이자 철수 씨의 세상이었다.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서 철수 씨의 삶이 나아질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며 철수 씨는 생각해 볼 일이 없는 경우의 수 중 하나였다. 철수 씨는 가만히 서서 도하의 신발 코만 내려다봤다.
- 철수 씨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도하는 침묵을 견디다 먼저 입을 열었다.
- 제가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문제가 될까요?
철수 씨가 고민하다 질문했고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이 휘몰아치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에 철수 씨가 계속 이 안에서 살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얼마나 될까,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게 되었다.
- 공론화가 된 이상 여론을 살피긴 해야 할 텐데, 이곳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묻는다면 실례가 될까요?
-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단순하게 대답하기엔 조금 어려운 질문이긴 하네요.
철수 씨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다. 아무리 이곳에서만 살았다고 해도 60년의 세월을 간단하게 답 하라는 건 누가 봐도 무리가 있었다.
- 제가 무례했어요. 죄송합니다.
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가 지금은 시간을 많이 내기 조금, 어려운 상황이에요. 내일 별 다른 일정이 없.... 아니지, 내일 저와 이야기 나눠도 괜찮으신가요?
- 그럼요.
-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하가 걸음을 옮기려고 몸의 중심을 움직이니 철수 씨가 잠깐 멈칫,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저기 혹시....
철수 씨의 흩어지는 말꼬리에 도하가 움직임을 멈췄다.
- 김장만 씨와는 대화를 하시나요? 김장만 씨가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 장만 씨는 이제 연구소 직원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미 곤란한 상황은 많이 겪고 있을 거예요. 본인 선택이긴 하겠지만.
도하는 최대한 철수 씨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건조하게 말했다.
- 김장만 씨가 곤란한 일을 당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가능한 선에서 김장만 씨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볼게요.
도하가 철수 씨의 눈이 흔들리는 걸 분명히 봤다. 철수 씨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도하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실험체의 모습은 없었다. 도하는 괜히 로봇처럼 기계적인 사람을 상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