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은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찬영을 봤다.
- 너 제정신이야?
- 뭐가?
- 그렇게 그냥 들여보내면 어쩌자는 건데?
- 뭐가 문젠데?
찬영은 진심으로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기밀 프로젝트인데, 저렇게 마음대로 연구실에 드나들었다가는...!
- 소장이잖아, 이 연구소.
찬영이 주은의 태도와 눈빛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주은은 확실히 장만의 퇴사 이후 철수 씨의 존재에 관심을 키웠다.
- 선배 혹시....
찬영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또 동시에 확인은 해야 한다는 직감이 있었다.
- 저 안에 있는 신문, 선배가 가져다 둔 거야?
- ... 뭐?
주은은 정말 잠깐, 찰나의 침묵을 가졌을 뿐인데 찬영은 배신감을 느꼈다.
- 선배, 철수 씨한테 뭐 했어?
- 무슨 소리야?
- 철수 씨한테 과하게 집착하잖아.
찬영의 눈빛이 매서웠다.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주은을 보니 조금 더 압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확인하는 거? 어렵지 않아. 소장님한테 요청해서 출입 기록만 받아도....
- 너 지금 날 뭘로 보는 건데?
- 솔직하게 말하면 조용히 넘어갈게.
- 야, 너 엊그제 들어와 놓고 선배인 것처럼 굴지 마.
- 엊그제 들어왔어도 철수 씨 연구 담당은 나야. 선배가 아니라.
주은은 무언가 분한 표정으로 찬영을 노려봤다. 주은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주은은 그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꾹 쥔 주먹으로 미루어 보자면 이미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 너, 솔직히 말해. 장만 선배랑 뭐 짜고 치는 거 아니야?
- 뭐?
- 순서로만 따지면 다음이 나였어. 네가 끼어든 거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찬영의 고개가 삐뚜름해졌다.
- 무슨 순서?
- 장만 선배가 싸고도는 바람에 다 망했어.
-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설명 똑바로 해.
주은은 다급하게 자리를 벗어나 보려고 했지만 찬영의 손에 붙잡혔다. 거칠게 화를 내며 손을 뿌리치던 주은은 씩씩대며 찬영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 니가 뭘 알아? 들어온 지 겨우 일주일도 안 된 자식이.
주은은 손을 내저으며 찬영의 손목을 비틀어 뗐다. 찬영은 멍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주은의 뒷모습을 봤다. 굳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주은의 표정을 알 것도 같았다.
- 저하고 잠시 이야기 나누실까요? 시간 괜찮으세요?
도하의 목소리가 찬영을 돌아서게 했다.
도하는 권유했지만 찬영은 권유로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서 걷는 제 상사의 뒷모습을 보자니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다. 원래 윗사람 걱정은 하는 거 아니랬는데, 이건 걱정할만한 일이긴 했다. 그것도 제 전임자가 친 사고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니 어떻게 엮여 들어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마침 조금 전 주은이 던진 작은 의심 때문 에라도 눈치가 더 보였다.
도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우리만치 태연해 보였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허리와 어깨는 꼿꼿했다.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 단 둘이 서 있으려니 어색했던 찬영은 도하의 옷차림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웃음을 감추기 어려워졌다. 도하의 양말 길이가 달랐다. 운동화와 색을 맞춰 신은 와중에 양말 발목의 길이가 확연히 달랐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많이 닿았다. 갈만한 곳이라곤 도하의 사무실뿐이었다.
- 불편하진 않으시죠?
- 괜찮습니다.
도하는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면서도 찬영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찬영은 적당하게 고갤 숙이고 도하를 따라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발소리가 울릴 정도로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문이 무겁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찬영이 살짝 움찔하며 한 발 앞으로 더 디뎠다. 도하는 조용하게 찬영을 지나쳐 사무실 한중간에 놓인 소 파러 걸어가 앉았다.
- 하아….
도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꺾어 머리를 소파 등받이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부하 직원 앞에서 이렇게 지치고 풀어진 모습을 보일 생각은 애초에 없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몸이 움직였다. 찬영은 어쩔 줄 모르고 들어왔을 때 서 있던 그 자리에 멀뚱하게 서서 도하를 바라봤다.
- 아, 앉으세요. 이쪽.
도하가 눈을 떴다가 찬영을 보고 놀라 얼른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찬영은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도하가 가리킨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소파가 생각보다 푹신해 엉덩이가 밑으로 훅 꺼지는 느낌에 놀라 움찔하며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도하는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여 머리를 짚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정말 모르셨나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엔 원망이 아주 조금 섞인 것 같았다.
- 김장만 씨가 추천해서 입사하셨다고 들었어요.
찬영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손바닥에 땀이 축축하게 고여 자꾸 허벅지를 문지르게 되었다.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주시면 원망하지 않을게요. 두 분이 뭔가 계획한 게 있으시다면….
- 그런 것 아닙니다! 전혀… 전혀 아니에요.
찬영이 손사래까지 쳐가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는 사람은 장만뿐이라는 것인가 싶어 도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차라리 앞에 앉은 찬영도 함께 계획하고 가담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구슬려 앞으로 뭘 할지 캐물을 수 있겠으나, 아무리 봐도 찬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 혹시… 김장만 씨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아실까요?
도하는 잠깐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찬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저도 메시지는 보내 봤는데 답장이 따로 오진 않아서요….
- 예상하시겠지만 제 연락은 전혀 받질 않아서… 지금 당장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진 않네요.
- 예, 아마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한숨을 내뱉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 철수… 씨?
- 예?
- 철수 씨라고 칭하면 되는 걸까요?
-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철수 씨를 어떻게 호칭하면 좋을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 일이 터져버렸다. 그동안은 부를 일도, 호칭할 일도 없었으니 이제 와서 무언가 조치를 하기엔… 무언가 양심에 채찍질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하는 철수 씨를 지칭하는 데에 망설임을 잔뜩 내보였다. 실험체인지, 인격체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분명 이 연구소에서 창조해 냈지만, 누가 봐도 인간이었다. 철수 씨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거기서 왔다. 태어난 인간이 아닌 ‘만들어진’ 인간. 어쩐지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차라리 동물을 만들지 그랬니, 하는 생각이 스쳤다가 또 한 번 숨은 양심을 찔리고 말았다. 동물이라고 다르겠니,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건 똑같은데, 속으로 자신에게 책망의 말을 뱉었다.
도하는 철수 씨를 어떻게 대하고 처리할지를 고민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처리’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되는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연구소 시스템 안에만 비밀스럽게 남아있는 철수 씨의 존재감은 아주 작으면서도 너무 컸다. 동시에 철수 씨가 뭘 원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데이터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 철수 씨, 를 담당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 이제 일주일째…입니다.
- 정말 얼마 안 되셨군요.
찬영은 대답을 하면서도 민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하는 이제 고작 일주일째라면 자신이 궁금한 건 찬영이 대답해 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다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
장만과 연락이 되기만 한다면 모든 게 쉬워질 것 같았는데 정작 그 당사자가 꽁꽁 숨어버려 어디에도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도하나 찬영 두 사람 모두 따지고 보면 장만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장만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현 사태가 꽤나 문제적이었다.
- 내일 철수 씨와 이야기 나눌 텐데, 동석해 주세요. 담당 연구원이시니까.
- 네.
또 한 번 권유처럼 들리는 지시에 찬영은 대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바쁘실 텐데 쓸데없이 잡아두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내일 출근하실 때쯤 연락드릴게요.
- 예, 가보겠습니다.
찬영이 간결하게 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설 때까지도 도하는 머리를 짚은 채 정신을 차리기 힘겨워했다.
윗사람 걱정은 하는 거 아니라지만 지금은 너무 걱정스러웠다. 철수 씨와 찬영의 명운을 쥐고 있는 사람의 정신상태가 기울어간다면… 큰일이 날 게 분명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