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이 자리로 돌아왔을 땐 사람들의 눈초리가 노골적으로 변해 있었다.
장만과 무언가 따로 작당모의라도 한 것처럼 쳐다보는 눈들이 찬영의 뒷덜미를 쑤셔대는 느낌이었다. 불편한 기운을 오롯이 느끼면서도 대응할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견디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 눈빛에 반응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떳떳하기 때문도 있었고,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의미 없는 데이터만 눈앞에 떠다니고, 정작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은은 보이질 않았다. 주은과 비밀스럽게 눈을 마주치던 그 누군가도 함께 사라져 있었다.
찝찝한 기분에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선명한 게 하나도 없었다.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먼저 하는 것 말고는 지금 당장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데이터만 차곡차곡 서버에 저장해나가고 있었다.
장만의 양 옆에 선빈과 빛나가 서 있었다. 장만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잡은 채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 꼭 해야 합니까?
- 그래야 신뢰도가 올라가죠?
빛나의 단호한 목소리에 장만의 눈이 절로 꾹 감겼다. 심지어는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했다. 순간 불안이 선빈의 목덜미를 스쳐서 선빈이 손을 내어 뒷목을 쓸었다.
- 김장만 씨, 김장만 씨가 도와달라고 저희한테 먼저 연락을 주셨잖아요. 저희는 절수 씨를 돕고 싶어서 이 일을 같이 하는 거고요.
- 그렇죠, 예…, 예.
- 김장만 씨가 직접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할 필요가 있어요. 뭘 보고, 뭘 들었는지 다 중요한 사안이잖아요?
- 예, 그건 이해합니다.
장만의 목소리엔 확신이 없었다. 답답한 장만을 상대하느라 선빈은 서늘한 뒷목을 쓸다가 이제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는지 주물주물, 뒷목부터 어깨까지 손으로 꾹꾹 눌러댔다.
장만은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거라고 당연히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가 자신이라는 것이 꽤나 불편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서 모두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장만이 손에 꾹 쥐어 잡고 있는 휴대폰은 꺼진 지 벌써 며칠째였다.
선빈과 빛나를 앞에 둔 장만은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답답한 꼴을 보고 있자니 소리라도 질러버릴 것 같은 기분에 두 사람은 뒤를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고함을 치자니 이미 잔뜩 쫄아든 모습을 한 이 사람이 어디론가 도망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만은 무심코 휴대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표시와 쏟아지는 문자. 대부분은 주은이었다.
[선배, 이건 진짜 아니죠.]
[선배, 진짜 너무하네.]
대부분은 원망이 섞인 비난이었다. 장만은 주은이 보낸 문자 몇 개를 읽고 그대로 화면을 넘겨 목록을 살폈다. 대부분은 연구소에서 얼굴만 트고 지낸 사람들이었는데 딱 하나 걸리는 이름이 있었다. 기사가 나간 그날 보낸 메시지 한 개.
[선배, 저한테는 미리 설명이라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서운합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미리 보기에 떠 있는 차분한 말들은 조용하게 장만의 머리를 때렸다.
- 전화 한 통만 해도 되겠습니까?
- 지금요?
선빈이 저도 모르게 장만에게 날카롭게 말을 던졌다.
- 아, 제가 있던 자리에 밀어 넣은 후배가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연락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선빈과 빛나는 눈을 잠깐 마주쳤다. 선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 하세요.
빛나가 대신 그 앞을 지키고 서서 장만을 내려봤다. 선빈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장만의 처지에 지금 당장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진동을 느낀 찬영이 바지 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적인다. 바지 앞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찬영이 화면을 확인하더니 멈칫했다. 어쩐지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무실이 크지만 혹시나 싶어 한쪽 구석으로 총총 걸어 들어갔다. 작게 심호흡을 하고 잔기침까지 하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 네, 선배.
침묵을 잠시 견디다 찬영이 답답해져 먼저 입을 열었다.
- 찬영아.
장만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찬영의 고막을 강하게 때렸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근 일주일 동안 연락 한 번 안 되던 사람이었으니 혹시나 또 숨어버릴까 싶어 입술을 꾹 깨물어 닫았다.
- 미안하다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내가 면목이 없다.
찬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은 저질러놓고 이제 와서 사과를 하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지, 답답함을 내뱉듯 한숨을 푹 쉬었다. 찬영의 한숨에 장만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 저는 왜….
- 미안해. 진심이야. 믿을만한 사람이 너 밖에 생각이 안 났어.
- 믿을만한 사람이요?
- 철수 씨… 믿고 맡길 사람이 너밖에 없어.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찬영은 그 순간 연구실 출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 선배.
장만은 찬영이 욕을 하면 하는 대로 받아들일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듣긴 해야겠지, 싶었지만 죄책감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만한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 선배, 철수 씨랑 통화해 보시겠어요?
- 뭐?
찬영의 제안은 장만의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찬영은 이미 연구실로 들어가는 문에 출입증을 태그하고 있었다. 장만도 찬영이 문을 열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매일 아침마다 들었던 그 알림음이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장만은 철수 씨가 두려워졌다. 매일 아침 만나던 철수 씨는 평온하고 차분한 어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자신이 어쩌면 철수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사고를 쳤는데, 원망하려나? 아니면 싫어할까? 고마워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피어올랐지만 당사자에게 듣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장만은 그래서 철수 씨와 통화를 한다는 게 두려웠다.
- 철수 씨.
- 예? 웬일이십니까?
- 전화 잠깐 받아 보시겠어요?
- 제가요?
- 예, 반가운 사람 전화라서….
장만의 귀에 속닥이듯 들리는 전화 너머의 짧은 대화가 뒷덜미를 잡아 누르는 것 같았다.
- 여보세요.
전화가 익숙하지 않은 철수 씨는 어색하게 손에 휴대폰을 들었다. 귀에 가까이 대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여보세요-‘ 하고 건네듯 말했다. 철수 씨는 장만이 답을 해 주기를 기다렸다.
- 철수입니다.
다시 한번 답을 하라는 듯 철수 씨가 자신을 소개했다.
- 장만 씨.
장만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철수에 놀라 움찔하고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 철수 씨…. 미안합니다.
- 장만 씨 잘 지내시죠?
철수 씨는 장만의 안부를 물었다. 매일 아침 있었던 그 일처럼 장만의 안부를 묻는 철수 씨의 목소리는 밝았다. 머릿속의 열이 가라앉고 따뜻해졌다. 적당하게 따스한 온도. 장만은 가라앉았다.
- 미안합니다, 철수 씨.
- 매일 보다가 못 보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철수 씨는 장만의 미안하다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차분하게 안부를 물었다.
- 저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닐지 걱정입니다.
- 잘 지내고 있어요. 찬영 씨도 잘 챙겨주고 있구요.
찬영은 무언가 속에서 자신을 꾹 찌르는 기분을 느꼈다. 장만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인지,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으나 분명 철수 씨는 찬영이 자신을 ‘잘’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찬영의 속이 울렁거렸다. 장만과 철수 씨가 저렇게 살가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면 자신도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철수 씨…. 제가 잘, 잘해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 제 걱정은 말고 장만 씨 원하는 걸 하세요.
철수 씨는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언제 다시 통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 그렇게 따스하게, 원하는 걸 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