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영과 도하

by 한유주

- 감사가 시작될 거 같아요.


도하의 말에 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되는 수순이긴 했다. 기밀 사항이 많은 연구소, 외부에서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가능하면 이리저리 이용할만한 것들을 모두 뽑아내려고 혈인일 것이다.


- 철수 씨를… 최대한 보호해 보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노력만큼 되긴 힘들 수 있어서….


도하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이었다. 그 걱정이 도하 자신을 향한 것인지 철수 씨를 향한 것인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도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니, 어두웠다. 목소리도 잔뜩 가라앉고 갈라져 있었다.


- 장만 선배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찬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대뜸 던졌는데, 도하의 표정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알 수 없이 일그러지지도, 찌푸리지도, 인상을 쓴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었다.


- 뭐라고 하던가요?

- 미안하다고, 그냥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철수 씨와 잠깐 통화를 했습니다.


도하가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의 앞에 쌓인 종이들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무언가 생각하는 눈치였는데, 그 복잡한 속내를 찬영으로서는 알기 어려워서 그저 질문이 먼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철수 씨가… 부탁한 일일까요?

-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도하는 상체를 한껏 뒤로 밀어 소파에 푹 기대어 앉았다.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푹 내쉰 도하가 눈을 뜨고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봤다.


- 그럼 김장만 씨는 왜 그랬을까요?


찬영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 철수 씨가… 철수 씨가 김장만 씨한테 그런 부탁들 했을 가능성은 정말 없나요?


왠지 바라는 답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찬영은 잘 보이지 않는 도하의 표정을 살피려다가 금세 포기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내가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 당장 찬영이 할 수 있는 말은 단순했다.


-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했다. 솔직해지는 거 말고는 찬영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철수 씨에게 죄책감이라도 있는 걸까요?


도하는 또다시 찬영이 ‘모른다’고 답 해야 하는 질문을 했다.


- 철수 씨가 만약….


도하가 몸을 일으켰다. 팔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머리를 짚은 채 삐딱하게 앉아서는 잔뜩 지친 기색으로 소파에 모로 기댔다.


- 만약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걸 왜 찬영에게 묻는 것인지, 도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내보내기로 마음먹었다면 내보내면 될 일인데. 심지어 그 결정은 도하가 해야 하는 수많은 결정 중 하나였다.


- 몇 가지 검사는 필요할 겁니다. 항체 검사라던가….

- 아….


찬영의 엉뚱한 대답에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철수 씨를 내보내고 싶으신가요? 찬영 씨는?


도하의 질문은 또 한 번 찬영이 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찬영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실 철수 씨가 아니었다면 찬영이 이 회사에 이 연봉을 받으면서 들어오긴 어려운 일인 게 사실이었다. 대단한 연구 성과가 있는 것도, 무언가 업적을 세웠거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적도 없이 그저 조용한 석사 출신 연구원에 지나지 않은 찬영이었다. 찬영은 그렇게 조용하게, 가늘게 인생을 살아나가다 문득 인생의 가는 선을 휘청일만한 거대한 비바람을 만난 것이었다.


도하는 이미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해 본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벌어질 수 있는 일, 가능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늘어놓고 이리저리 꼬아가며 생각을 하느라 요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검토를 하고 경우의 수를 따진다고 해서 그게 마음처럼 흘러가는 것도 아니거니와,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세상 그 누구도 존재를 몰랐던 복제인간이 나타나 몇 사람의 인생을 뿌리부터 흔들어대고 있으니, 지금에 와서 60년 이상 먹은 그 어떤 것을 도려낼 수도 없었다. 뿌리부터 파내고 들어내야만 하기 때문에.


- 철수 씨가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던가요?


도하가 다시 물었다. 찬영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답했다. 사실이었다. 장만에겐 뭐라 말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찬영의 앞에선 밖에 나간다거나, 연구소 밖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 저 잠깐… 솔직해져도 되나요?


도하가 몸을 바로 돌려 앉았다.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니 찬영과 거리가 조금 좁혀졌다.


- 이 자리에 올라와서야 철수 씨의 존재를 알았어요. 아버지는 아셨겠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지만. 철수 씨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건 기사가 나가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냥 뭐 어디 있는 복제 양이나 복제 강아지처럼, 잘 살고 있거나, 복제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만 하고 폐기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잔인한 생각이죠?


도하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철수 씨는 평생 이곳에서 살았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바라는 게 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철수 씨가 원하신다고 하면….


도하가 고개를 숙이고 잠깐 숨을 골랐다.


-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어요.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땠을지 전 잘 모르지만 원하는 대로 들어주고 싶어요.


도하의 말이 멎고 찬영은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을 머릿속에 복기해 내고 있었다. 철수 씨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 마음만 먹으면 평생 잡아놓고 이용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오늘 철수 씨를 만나려고 했던 것도 그걸 묻고 싶어서였는데, 갑자기 감사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도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스피린 상자를 집어 들었다. 찬영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그대로 도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날것 그대로의 표정이 도하에게 드러났을 거라 생각한 찬영이 민망해져서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제가 한심하시겠죠. 소장씩이나 되어서 이런 일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 아닙니다. 저나 소장님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시작된 일이니…. 그럴 수도 있죠.


찬영의 위로는 표면적이었다. 수박 겉핥기보다도 못한 위로를 받은 도하의 속이 달래질 리가 없었다. 찬영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이었으나 그게 그다지 좋게 작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하는 제 앞에 앉은 젊은 연구원을 바라봤다.


- 찬영 씨는 왜 이쪽으로 이직하셨어요?

- 네?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 전…


도하는 대답을 기다릴 생각인지 아스피린 한 알을 꺼내 입에 머금고 물이 든 컵을 집어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물과 약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여전히 찬영은 입을 열지 못했다.


- 뭐 큰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철수 씨의 존재를 알아서도 아닙니다. 그냥… 먹고는 살아야죠.


찬영은 제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사실 장만 선배랑 아주 가깝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서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믿음이 있긴 합니다. 그게 가장 컸어요. 마침 일 할 곳을 찾고 있었고, 선배한테 연락이 왔죠. 선배는 철수 씨를 믿고 맡길 사람이 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어요. 무슨 뜻인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찬영의 차분한 말에도 도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딱히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장만을 탓하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장만은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 우리에 갇힌 인간에게 자유를 주자. 허울 좋은 말 뿐이라고 하기엔 이미… 장만은 너무 많은 것들을 해 냈다. 그게 찬영에게 좋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언가 해내긴 했으니….


- 우선… 철수 씨에게 가볼까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침묵이 이어지자 도하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앞에 놓여 있던 종이 뭉치를 골라내어 품에 안고는 찬영에게 고갯짓을 했다. 찬영은 도하의 품에 들려 있던 한 뭉텅이를 제가 빼앗듯 넘겨 들고는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권리. 철수 씨에게 처음으로 붙은 권리는 알 권리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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