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씨가 머무는 연구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찬영은 어쩐지, 자신이 철수 씨를 가두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겹겹이 닫혀 있는 문들을 열고 마지막 문 앞에 섰다.
찬영은 노크를 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그 문에 노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 들어갈게요.
찬영이 밖에서 기척을 하고 문을 조용히 열었다. 철수 씨는 책상 앞에 앉아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다.
- 소장님 하고 함께 왔어요.
찬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니 도하가 뒤따라 연구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추운 곳은 아니지만 어쩐지 서늘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도하는 저도 모르게 팔을 손으로 비벼 열을 내려고 움직였다.
- 우리 어제 뵀죠?
- 네.
철수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나름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 오늘 이야기 나누기로 했었잖아요.
- 기억합니다.
도하가 방 안을 둘러봤다. 철수 씨가 방금 일어난 의자 말고는 앉을만한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 혹시, 우리 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선 말은 전달할 수는 있어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 잠시만요.
도하의 말에 찬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애초에 모두 퇴근하고 난 후에 도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으니 비어있는 게 당연했다.
- 회의실… 괜찮으실까요?
문 앞에서 찬영이 말을 건네자 도하가 빠르게 몸을 돌려 찬영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회의실… 요?
철수 씨가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 발을 뗄 생각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서서 흔들리는 눈으로 문 너머에 선 찬영과 도하를 쳐다봤다.
- 아, 괜찮아요. 밖에 지금 아무도 없기도 하고, 아주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이 방 바로 앞에 작게 회의실이 하나 있어요.
찬영은 철수 씨가 멈춰 선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이런저런 말을 건네본다. 철수 씨는 여전히 나란히 선 두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다리에 도하도 조금은 당황했던 지 뒷 목을 긁적였다.
- 제가 여기서 나가도 되는 걸까요?
철수 씨의 물음에 찬영의 말문이 막혔다. 오히려 찬영보다 도하의 반응이 더 빨랐다.
- 나가도 되죠.
주름진 얼굴에 스친 두려움을 먼저 발견한 도하가 활짝 웃으며 문턱을 다시 넘어 철수 씨에게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 천천히 합시다. 괜찮죠?
도하가 손을 내밀었다. 철수 씨는 가까이 선 도하를 한 번, 멀리 선 찬영을 한 번 봤다. 내민 손을 잡을 생각도, 발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던 철수 씨를 가만히 기다리던 도하가 먼저 손을 잡아챘다. 그렇다고 힘을 주어 끄는 것도 아니고, 미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을 잡고 가만히, 철수 씨의 옆에 서 있었다. 철수 씨는 조용히 도하의 얼굴을 살폈다.
철수 씨가 먼저 발을 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물론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철수 씨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철수 씨가 천천히 발을 떼어 문 가까이로 다가섰다. 이렇게 훤하게 열려 있는 문도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문턱을 넘어 반대편으로 발을 내디뎠다.
- 괜찮죠?
도하가 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철수 씨는 다른 쪽 발도 문 바깥으로 내밀어 디뎠다.
- 그렇네요. 그래요.
철수 씨의 말에 도하가 다시 웃어 보이고는 손을 놓았다.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방 안을 봤다.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볼 수 있었다. 문 바깥에서 자신의 세상을 봤다.
철수 씨는 천천히 겹겹이 둘러친 문을 건너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문을 넘어 발을 딛자마자 처음 보는 사무실 풍경을 눈으로 훑었다. 공간 가득 늘어 놓여 있는 불편해 보이는 책상과 의자들을 본 철수 씨는 딱딱한 책상과 의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중간중간 푸릇한 화분이 보였지만 그다지 생글해 보이지 않았다. 찬영이 회의실 문을 열고 잡아 주었다. 방에 있는 푹신한 의자와는 다른 딱딱한 의자들이 놓여 있는 회의실이었다.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느낌이 이상했다. 이제껏 철수 씨가 앉아본 의자라고는 방 안에 있는 조금 쿠션감이 있는 책상 의자, 매트리스가 얹혀진 자신의 침대뿐이었다. 찬영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도하가 철수 씨의 눈치를 살피며 애매하게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찬영은 물 세 병을 가지고 들어와 각자 앞에 하나씩 놓고 철수 씨와 조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우선,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도하가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철수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정신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아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조금 놀랐던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하를 쳐다봤다.
- 혹시, 여기가 아니라 아주 밖에, 사회에 나갈 수 있다고 하면 나가고 싶으신가요?
철수 씨는 도하를 보던 시선을 거둬 다시 회의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도하의 말 뒤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철수 씨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마치 알고 있는 사람처럼 고개까지 까딱거려 가며 철수 씨의 대답을 기다렸다.
- 한 번 나가면 돌아올 수 없나요?
- 예?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듯 도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 전 여기가 좋습니다.
도하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자면 아마 나가고 싶어 한다는 쪽에 기울어 있었던 것 같다. 찬영이라고 해서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찬영도 도하와 마찬가지로 철수 씨는 갇혀 있는 게 답답하고 싫을 테니 나가서 살고 싶어 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 여, 여기… 저 방에서 지내겠다구요?
- 나쁘지 않았어요, 이제까지. 물론 중간중간 절 이용해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있는 동안 잘 자랐고, 잘 살았어요. 전 저 방이 좋습니다. 제 집이에요.
철수 씨는 발랄하게 말했다. 그 발랄함을 보고 듣는 도하와 찬영만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철수 씨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 나온 길과, 그 길 끝에 있는 자신의 방을 쳐다봤다.
- 전 지금도 만족합니다.
- 철수 씨.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도하는 꽤나 당황스러워서인지 철수 씨의 말을 막았다.
- 철수 씨. 철수 씨의 의지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저희 쪽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돕긴 하겠지만, 일단 좀 지켜보고 나중에 저희한테 말씀해 주셔도 전혀 문제 될 것 없어요.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다지 마음이 편해 보이진 않았다.
철수 씨는 난생처음으로 고민이라는 걸 시작한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모종의 시험을 보고, 지적 수준을 확인하고, 이런 종류의 시험에 따라오는 종류의 고민을 하면 충분했는데, 지금 이 고민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정답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보통 이런 종류의 고민에 정답이란 건 없었다. 철수 씨는 살면서 처음으로 모범답안이 없는 고민을 시작한 것이었다.
- 상황 설명을 좀 해 드릴 필요가 있어서 찾아왔어요. 당사자시니까.
도하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찬영은 철수 씨의 반응을 살폈다. 찬영이라고 철수 씨를 오래 본 건 아니어서 도하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감사가 시작될 거예요. 철수 씨가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도하는 단순하게 상황을 언급하듯 말했다. 감정을 실어봐야 철수 씨에게 좋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너무 간단하게 말하면 나중에 일이 더 진행되고 나서 그 진도를 따라가느라 벅찰 게 뻔하니, 할 수 있을 때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상황을 설명하니 듣기엔 굉장히 쉬운 일인 것처럼만 느껴졌다. 물론 들리기에만 간단한 일이었다. 그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하는 철수 씨에게 연신 미안하다,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 철수 씨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을 거예요. 전 감사를 잘 마칠 의무와 계획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수 씨의 입을 막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요.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철수 씨.
철수 씨는 도하의 얼굴을 바라봤다. 철수 씨는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도하는 아니었다.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 철수 씨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시면 돼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 제가 솔직하게 말해서 도하 씨가 곤란해지는 상황이 생긴다면요?
- 어쩔 수 없죠.
도하의 대답은 체념이 아니었다. 듣기엔 체념하는 것 같아 보여도 도하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철수 씨가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면 더 큰 파장으로 자신을 덮치게 될 거라는 걸 도하는 잘 알고 있었다.
- 전 최대한 원하시는 대로 따를 생각이에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구요.
도하의 말에 철수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 혹시… 많이 불편하시다면 노력은 해 볼게요. 최대한 노출되지 않는 쪽으로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어딘가 공개된 장소에 출석해서 스스로 발언하셔야 해요.
- 제 생각을 직접 이야기한다면 도하 씨에게 도움이 될까요?
- 음… 철수 씨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도하는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솔직했다. 이런 상황에선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민망한 듯 살짝 웃어 보이는 도하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밝진 않았다.
- 소장님께 도움이 된다면 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여기서 안전하게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었던 건 소장님 덕분이기도 하니까요.
- 그것보단….
도하는 양손을 책상 위로 올려 맞잡았다. 철수 씨의 착한 말씨에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엇보다 앞으로 철수 씨가 겪어야 하는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지금 느끼는 이 기분과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더 쉽지 않아 착잡해졌다.
-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 혹시, 김장만 씨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철수 씨의 부탁은 도하가 흔쾌히 들어주기엔 무리가 있었다. 지금 장만과 그나마 연락할 수 있는 창구는 찬영이었다. 철수 씨는 도하에게 말해 놓고 찬영을 쳐다봤다. 도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찬영이 철수 씨에게 물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철수 씨를 보던 찬영은 무언가 마음이 복잡해졌던지 고개를 살짝 떨구고 손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찬영은 차마 묻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철수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 어떤 마음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 철수 씨.
찬영이 고개를 숙인 채 철수 씨를 불렀다.
- 혹시, 지금 이 상황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도하와 찬영 둘 다 철수 씨에게 물어봐야 하지만 차마 그 말이 목에 걸려 튀어나오지 못해 담아두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철수 씨의 시선을 피하려는 것처럼 다른 곳을 쳐다봤다.
- 전....
철수 씨의 마음속에는 많은 생각이 떠다녔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는 사람은 자신의 앞에 앉은 두 사람이 처음이었다. 이 일의 원인이 된 장만도 철수 씨에게 묻지 않았던 것이었다.
- 전 그냥, 지금이 좋아요.
철수 씨의 말에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항체 검사를 추가로 실시할 생각이에요.
통보에 가까운 찬영의 말에 도하와 철수 씨의 눈이 커졌다. 철수 씨에게 시선을 고정한 찬영은, 도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제 앞에, 주름이 가기 시작한 얼굴에 고정했다.
- 연구소 밖을 나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든 청문회든 밖에 나가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테니까요.
찬영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철수 씨에게 좋은 선택이란 어떤 것일까. 정보나 경험이 제한적인 철수 씨에게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찬영의 마음은 수도 없이 깜빡거렸고, 흔들렸다.
- 소장님.
회의실을 떠난 찬영의 뒷모습을 보던 철수 씨가 도하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 그… 전 소장님을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 아, 아버지요?
- 아버지십니까?
도하가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철수 씨가 이렇게 갇혀서 살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든 신분을 만들어 내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 소장님과 닮지 않아서, 아버지라곤 생각을 못 했네요.
-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았나 봐요.
철수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 김장만 시를 만나는 건 영 힘든 일일까요?
- 아… 그건.
- 곤란해지신다면 만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그게 아니라…. 음….
도하가 잠시 생각했다. 장만과는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도하가 약속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 저는 연락을 따로 하는 사이는 아니라서요. 찬영 씨에게 다시 이야기해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번은 보게 되실 것 같기도 해요. 따로 독대하는 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철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처지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찬영의 문자를 받은 장만은 마음이 불편했다. 속이 시끄러운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철수 씨가 만나고 싶어 해요.]
별 다른 해석도 , 숨은 뜻도 필요 없는 간단한 문자였지만 장만을 흔들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 김장만 씨?
빛나의 목소리가 장만의 머릿속을 통화하고 나서야 장만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시간 됐어요. 들어가야 하는데요, 우리?
선빈은 여전히 뭐가 못마땅한 것인지 장만을 대하는 말투가 날카로웠다.
- 네. 갑니다.
장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진짜 괜찮은 거 맞아?
- 뭘 어떻게 할 거야. 이미 일은 벌릴대로 벌려 놓고.
선빈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빛나가 태연하게 답했다. 선빈은 한껏 예민해져서는 걸어가는 장만의 뒷모습을 보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빛나는 주차하고 가겠다고 말하며 선빈을 먼저 보냈다.
카페 안에는 장만과 기자 몇이 앉아 있었다. 거창한 기자 회견을 하지 않은 건 장만의 뜻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렇게까지 국가적인 사태로 번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말에 선빈은 장만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여러 번 내쉬기도 했다. 관련이 없는 사람도 장만이 입을 열자마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알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사자인 장만이 그럴 줄 몰랐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한없이 유아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선빈은 장만이 자신의 뜻에 맞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는 마음이 약해져서 오질 않나, 뭐 하나 상의 할 때마다 잔뜩 겁에 질려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 저렇게 무른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까?
주차를 마치고 카페로 들어온 빛나와 눈이 마주친 선빈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선빈의 말에 빛나는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저 옆으로 나란히 멈춰 섰다.
- 마지막 양심이었겠지.
빛나의 말에 선빈의 시선이 다시 장만에게로 옮겨갔다.
장만은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장만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들은 타자를 치고 있거나 노트에 필기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녹음기를 더 가까이 가져다 대며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각자의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장만은 오로지 한 가지에 몰두하고 있었다.
철수 씨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철수 씨에 대한 이야기를 오롯이 전하면서도 집중하는 그들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는 눈빛이 바쁘게 움직였다.
- 김장만은 부드러운 사람일지언정 물러 터진 사람은 아닌 거야.
선빈이 빛나의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툴툴대는 태도는 그만두기로 했는지 더 말을 얹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