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씨가 원하는 것

by 한유주

철수 씨는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누가 자신을 부르러 오거나 데리러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졌다. 이 혼란스러운 질문과 대답, 고성들 사이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철수 씨의 옆엔 찬영이 앉아 있었다. 문제는 찬영이 철수 씨보다 더 긴장해서 금방이라도 이번주동안 씹어 삼킨 음식들을 토해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철수 씨는 가볍게 주먹을 쥔 손을 무릎에 얹은 채 가만히 앉아 혼란스러운 회의장 안을 이리저리 둘러볼 뿐 별다른 말도, 오가는 고성에 놀라는 듯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 철수 씨. 앞으로 옮겨와 앉으세요.


의장의 말에 철수 씨는 뒷자리에서 조용하게 일어나 한 줄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앞에 놓인 마이크를 유심히 내려다보고는 그대로 멀찍이 정면에 앉은 의장을 바라봤다. 표정에 변화가 없으니 긴장을 한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철수 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철수 씨가 자리를 찾아 앞으로 옮겨 앉은 이후 공간 전체에 적막이 흘렀다.

모두 함께, 동시에, 살면서 처음 보는 존재를 마주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가 느낀 건 다를 수 있었지만 말로 하거나 반응을 보이기 어려운 건 똑같았다.


의장이 잠깐 뜸을 들이고 철수 씨를 관찰하는 듯하더니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 철수 씨. 편하게 질문에 솔직히 답하시면 됩니다.

- 네.


철수 씨의 답은 간결했고, 뒤에 앉은 찬영은 다리를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본인이 다리를 떨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 철수 씨. 연구소에서 산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 제 나이가 에순 다섯이니, 64년 3개월째입니다.


순간 정적이 또 한 번 흘렀다.


- 연구소에서 생활을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 아침에 일어나면 세안을 하고 문진표를 작성합니다. 제출이 완료되면 연구원 중 한 분이 와서 간단히 검진을 하시고 식사를 주십니다. 주 3, 4회 정도 정해진 운동을 하지만 그 이외에 할 일이라고 할만한 건 없습니다. 가끔 새로운 검체가 필요해서 추가 검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드문 일이고, 대부분은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찬영은 철수 씨가 하는 말을 차분하게 들으며 손바닥을 허벅지에 계속 비벼댔다. 손바닥은 건조한데도 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철수 씨를 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보자면, 설명할 수 없이 복잡했다. 새로운 것이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눈, 아이일 적 어린이 과학잡지에서나 나올법한 복제인간에 대한 신기함과 동경, 제각각의 눈을 보고 있자니 찬영은 다시 철수 씨를 바라보게 되었다.


빛나와 선빈도 철수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철수 씨는 담담했고 차분했다. 선빈이 상상했던 것과는 영 딴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심사를 뒤틀었다.


- 뭐가 저렇게 차분해?


선빈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빛나에게 속닥였다. 빛나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선빈을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철수 씨를 봤다. 철수 씨는 조곤조곤하게 일과를 설명했지만 그다지 특별할 건 없었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정년퇴직한 공무원의 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주기적인 건강 확인, 독서,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철수 씨에겐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나 반려자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생활은 연구실 안에서만 수행된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그게 두 사람에겐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은퇴한 노년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듣고 있자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철수 씨의 말을 듣던 선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 뭘 기대했는데?


이번엔 빛나가 몸을 기울여 선빈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 뭐, 더 드라마틱한 게 있지 않을까 했지. 내보내달라거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거나… 그 정도는 되어야 재밌지 않아?

- 그렇게 해서 나아질 게 뭔데? 저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학대를 당했다, 그런 이야기가 듣고 싶어?


선빈의 대답에 빛나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선빈은 예상했던 반응이었는지 피식 웃고는 철수 씨의 뒤통수를 봤다. 흰머리가 희끗한 철수 씨의 뒤통수는 기울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연구소에서의 생활에 대한 본인의 감정적인 평가는요?


찬영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맡은 건 이제 고작 한 달 정도라지만 철수 씨는 64년 3개월 동안 겪은 일이었다. 도하가 이 상황을 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 여러 가지 얼굴이 찬영의 머릿속을 스쳤다.


- 편안했습니다.


웃음이 날 정도로 우스운 반응이었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 ‘헉’ 하는 숨소리를 내는 꼴이 우스웠다.


- 편안합니다, 지금도. 제가 연구소에서 살고 있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머리로는 이해를 합니다만….


철수 씨는 잠시 놀란 얼굴들을 훑어보았다.


- 전 지금 상태도 만족 합니다.


선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자가 내는 귀를 찌르는듯한 소음에 놀란 찬영과 철수가 고개를 휙 돌려 맨 뒤를 봤다. 선빈이 꼿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철수 씨를 보고 있었다.


- 거기 뒤에, 정숙하세요.


의장의 호통에 선빈이 얼른 표정을 정돈했다. 철수 씨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몸을 굽혀 의자를 세웠다. 빛나는 그런 선빈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쳐다봤다. 철수 씨는 잠시 선빈을 지켜봤다. 빛나는 철수 씨의 시선을 관찰했다. 선빈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선빈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철수 씨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봤다.


- 저 사람, 우리 누군지 아는 것 같지?

- 뭐? 누구?

- 철수 씨.


잠깐 시선이 집중되어 민망했던 선빈이 괜히 바지와 상의를 털어내며 빳빳하게 펴내는 데 빛나가 고개를 살짝 돌려 말을 걸었다. 빛나의 말에 놀란 선빈이 다시 철수 씨를 쳐다봤다. 빛나는 철수 씨의 얼굴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찬영은 수상한 두 사람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낯이 익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친분은 아니었기에 곰곰이 아는 얼굴과 이름들을 떠올렸다. 생각을 할수록 헷갈리기만 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철수 씨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괜히 두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의외로 철수 씨는 차분하게 질문들에 답을 해냈다. 한 가지 문제라고 할만한 건, 철수 씨의 답변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딴판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모범답안에서 많이 벗어난 답을 계속해서 쏟아내니 질문을 하면 할수록 어딘가 지도에 없는 길로 가는 것 같았다.


- 연구소에서 감금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인지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 전 감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연구실 밖을 나가본 적이 없잖아요?

- 제가 나갈 생각을 한 적이 없기도 합니다.


자리를 지키고 앉은 사람들은 점점 이 각본 없는 질의응답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금생활을 하고도 자신이 감금되었다고 생각한 적 없다는 둥,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거기서 살았던 것이라는 둥, 물론 어려운 용어나 단어를 사용한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었으나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찬영은 문득, 철수 씨가 도하를 위해 좋은 말만 기록에 남기려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도하와 철수 씨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제까지 도하가 보여준 태도는 그 뒷꿍꿍이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혼란스러웠다.


- 왜 저래?


선빈이 빛나에게 작게 말했다. 빛나는 고개를 저을 뿐 선빈의 말에 별 다른 반응을 해 주지 않았다.


- 연구소에서 뭐 받았나?

- 모를 일이지.

- 김장만은 뭐 하느라 그런 거 하나 단속 못하고.

- 김장만 씨 잘못은 아니지. 연구소에서 거금을 주고 도와달라고 하면 저 사람 입장에선 제안에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선빈은 머리를 굴렸다. 저 말 뒤에 숨은 뜻이 있으려나. 빛나는 철수 씨의 몸짓이나 표정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철수 씨는 움직임이 아주 적었고, 하필이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았으니 표정을 살필 수도 없었다. 찬영은 철수 씨의 옆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수 씨의 표정은 일그러지지도, 그렇다고 어두워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는 듯, 눈치를 보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 철수 씨. 저희는 지금 철수 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연구 행태에 대해서….

-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게 뭡니까?

- 당연히 그 연구소에서 나와 자유롭게….

- 제가 연구소에서 지내는 데에 만족하고 있다면 연구소에서 계속 지내도 되는 겁니까?


철수 씨의 질문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씨발.


원색적인 상스러운 단어가 선빈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빛나는 고개를 숙였다.


회의실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철수 씨가 연구소에서 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철수 씨는 어떻게 하든 밖으로 나와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결정과 판단이 철수 씨에게 주어진 적이 없어, 이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건 철수 씨 본인이 판단하기에 최선이 아니었다.


[김장만 씨, 지금 보고 있죠?]


빛나는 곧장 장만을 소환했다. 장만에겐 답이 없었지만 ‘1’ 표시는 사라졌다. 이게 나름의 답인 걸까. 보고 있다는 거겠지.


[소장님, 혹시 라이브 보고 계십니까?]


찬영도 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많겠네요.]


간단하지만 충분히 복잡한 답이었다.


찬영은 고개를 들어 철수 씨를 봤다. 철수 씨는 이상하리만치 강한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자신에게 최선은 연구소 생활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충격에 휩싸인 눈을 한 사람들을 쳐다봤다.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채긴 한 것일까.


- 전 연구소 생활이 저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그건 철수 씨가 바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고요.


철수 씨는 충분히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의 의미와 무게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달하려는 명확한 의도가 있는 말들이 철수 씨에게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철수 씨는 분명 아주 똑똑하고 분명한 사람인게 틀림없다.


- 의원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 올 해로 육십 일곱 되었네요.

- 그럼 지금 당장 이민을 가야 한다면, 가시겠습니까?

- 예?

-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한 달 안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로 이민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시겠습니까?


쉽게 답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철수 씨는 연구소를 나가는 순간부터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6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노년의 나이에 새로운 걸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많은 용기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당장 철수 씨에게 사회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한들, 무엇을 얼마나 가르쳐야 하는 지도 감당이 되지 않을 텐데, 물 밖에 물고기를 떠서 던져놓는 것에 지나지 않을 상황이 막막할 것이다.

철수 씨는 지금 겁이 난다.


- 김장만은 무슨 자신감이었지?


분노가 느껴지는 작은 목소리가 빛나의 귓가를 스쳐서 고개를 돌려 선빈을 볼 수밖에 없었다.


- 철수 씨가 연구소 같은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엔 아까운 사람이긴 하네.


빛나가 큭큭 웃으며 선빈을 놀리듯 말한다. 선빈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이 도가 넘어섰는지 몸을 한껏 수그리더니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 적당히 해. 고발한 우리도 곧 저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감정 관리 못 하면 큰일 나.


선빈의 분노에 찬 행동에 빛나가 차갑게 일갈했다. 선빈은 그런 빛나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허리를 숙여 앞사람의 등 뒤에 숨어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버릴 기세로 꾹 쥐었다. 두통이 올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제껏 본 적 없는 강도로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꾹 쥐었다. ‘안 뽑히는 게 신기하네’ 싶을 정도였다.


- 머리가 너무 아프다, 언니…. 김장만 이 인간 완전 배신자야.

- 배신자는 아니지, 어찌 됐든 우리 편에 서기로 한 거니까.

- 언니는 진짜….


빛나가 머리카락을 놓고 고개만 슬쩍 돌려 빛나를 노려봤다. 아래에서 위로 쏘아보는 그 눈빛에 섬짓할 법도 한데 이미 많이 겪은 일이라는 듯 살짝 웃고는 말았다. 그 태도가 분노에 불을 더 지필뿐이었지만.


- AI보다 더 한 인간이야.

- 내가 뭘.


빛나가 한쪽 다리를 반대편에 얹어 꼬고는 팔을 얹어 턱을 괴었다. 선빈을 살짝 내려다 보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시선을 털어버렸다.


[김장만 씨. 우리 얘기 좀 해요.]


선빈이 휴대폰을 꺼내 장만에게 메시지를 하나 더 남겼다. ‘1’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메시지 창은 조용했다.


[찬영아. 철수 씨 좀 만날 수 있을까.]


대신 찬영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찬영은 슬쩍 화면에 떠오른 미리 보기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들어 선빈과 빛나를 봤다. 장만의 문자를 보고 나서야 선빈과 빛나가 고발장을 들고 신문 1면에 실렸던 사진이 떠올랐다. 그래서 낯이 익었구나, 생각은 잠깐이었고 장만이 먼저 문자를 보냈다는 건… 찝찝한 기분이 물 위에 뜨는 기름처럼 잔뜩 끼어서 마음을 뿌옇게 만들었다. 심경이 복잡했다. 마음이 잔뜩 꼬여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앉아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불쾌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찬영은 그대로 화면을 꺼버렸다. 순순히 답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다간 답장이라도 보낼 것 같은 기분에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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