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씨의 파격적인 발언에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
처음에야 고발장이 나오고 선빈과 빛나의 인터뷰들만 봐 왔으니 사건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말을 보탰었다. 갇혀 사는 게 불쌍하다느니, 실험체로 만들어내놓고 인권 따윈 무시한다느니, 노인학대라는 말까지 비난하기 쉽고 좋은 소재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불쾌한 감정까지 묻어두기엔 사람들의 반응은 원색적이었다. 연구소가 다 그렇다면서 인체 실험 같은 걸 하는 건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하는 이런 원초적인 비난들에는 대응하지 않기로 결정해 놓고, 신뢰성에 금이 가서 연구소 문을 닫게 되는 건 아닐까 긴장에 속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연구를 기획하고 실행해 성과를 낼 사라밍 가장 중요한 자원이니 여론이 좋지 않다면 있는 연구원들도 떠날 결심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았다. 물론 철수 씨의 존재가 오래전부터 거의 잊힌 수준이어서 연구소 안의 연구원들도 철수 씨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기밀 프로젝트로 분류되어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 데다, 애초에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검색을 해 보려 드는 사람도 없어진 지 꽤 되었다. 거기다 분과가 다르다면 서로의 연구를 잘 모르는 게 일반적이기도 했다.
철수 씨는 이젠 회의실 의자가 익숙해진 건지, 조금은 풀어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철수 씨의 파격적인 발언에 예상보다 조금 더 길게 진행된 질의응답에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야 연구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회의실에 있는 작은 모니터에 뉴스를 연결해 보고 있던 도하는 두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오고 나서는 가만히 앉아 고개만 숙이고 말이 없었다.
공기가 어색해질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동하였다.
- 고생 많으셨어요. 갑작스럽게 이런 식으로 출석 요청을 할 줄은 몰랐어요.
- 그러게요. 첫 순서로 불러 낼 줄은….
찬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질려버렸다는 듯 한숨까지 푹 내쉬는 게 퍽 우습기도 했다.
- 소장님은 언제 출석이세요?
- 전 내일모레요. 그 사이에 아마 권리보호보장연합 쪽 사람들 출석 있을 거예요.
철수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척 해도 꽤나 피곤했던 경험이었는지 철수 씨는 순식간에 도하를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봤다.
- 그분들은 만나 보신 적 있습니까?
- 누구요? 권보연이요?
- 권보연 씨요?
아, 철수 씨가 알아채기엔 너무… 싶었던 도하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 권리보호보장연합이요. 권보연.
- 아아….
- 만난 적은 없어요. 저도 신문으로만 봤어요.
도하의 대답에 철수 씨의 시선이 찬영에게로 옮겨 갔지만 벌써부터 고개를 젓고 있는 얼굴만 있을 뿐이었다.
- 김장만 씨하고 같이 움직이는 분들이신 거죠? 그… 권… 권보연이요.
- 네. 그런 것 같아요. 김장만 씨하고 고발장을 같이 작성해서 제출하셨을 테니까요.
철수 씨가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도하는 면전에 한숨을 쉬긴 불편했던지 몸을 틀어 고개를 돌리고는 불편한 숨을 몇 번 내쉬었다.
도하는 철수 씨가 최대한 안정적으로 질의응답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었다.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며, 질의응답 내용이 어떻게 될지,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 크게 있을지 등등 벼락치기 과외를 하듯 모든 정보를 주입해 내기에 급급했었다. 이제 와서 철수 씨를 걱정하는 마음이 든다는 게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둘걸 하는 마음에 들었다가도 곧장,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철수 씨가 편하게 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라이브를 보는 내내 여러 명의 도하가 함께 하는 기분을 느꼈다.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어쩐지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수 씨는 지나치게 솔직해서 사람들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왔다.
나름 성공적이었을까?
- 솔직하고 싶었어요. 첫인상이니까.
철수 씨는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도하와 찬영은 알겠다, 잘했다, 같은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 김장만 씨는 제가 안쓰러웠던 걸까요?
철수 씨는 아무래도 장만에 대한 생각을 떨치긴 어려운 것 같았다. 찬영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이 느껴졌다.
- 저기….
찬영이 쭈뼛대며 운을 떼자마자 철수 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누군가 입을 틀어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이기도 했다. 철수 씨가 원했던 것이기도 하니까.
- 철수 씨는 결국 연구소를 나가게 될 거예요. 오늘 철수 씨가 청문회에서 솔직하게 말해준 덕분에 그 사람들의 의도를 알았거든요.
찬영이 입을 얼기도 전에 도하가 새치기를 해 버렸다. 눈을 질끈 감아버린 찬영이 안중에도 없는지 도하는 책상 위로 손을 올려 맞잡아 깍지를 꼈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러는 걸 보면 습관인 것 같기도 했다.
철수 씨는 도하의 말에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긴 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 오늘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도하의 말에 찬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꾹 쥐었다.
- 솔직한 심경이었어요. 이제 와서 사회에 나가 살기엔 너무 늙었죠. 새로운 도전을 하려니 60년이 넘어가도록 제한된 공간에서만 살았으니 두려운 마음에 더 커요.
- 밖에서 사는 삶은 이곳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어요.
도하가 철수 씨를 설득하려는 듯 한 마디 거들었다. 철수 씨가 곧장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지만.
- 가능성이죠. 제가 적응하지 못하면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연구소로 다시 들어올 수 있나요?
찬영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어깨에 이어 머리까지 짓누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무거운 머리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제가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 도울 거예요. 어쨌든 연구소에도 책임 소재가 있으니까요. 돕고 싶기도 하구요.
도하의 말에도 솔직한 철수 씨는 불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도하는 깍지 낀 손을 맞잡은 채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수 씨의 존재를 몰랐다고 말은 했지만… 처음 철수 씨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계속 생각해 왔어요. 원하는 대로 해 드려야겠다, 하고. 막연하게 철수 씨가 나가서 사는 삶을 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철수 씨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전 천성적으로 모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연구소 자료에도 나와 있을 거예요. 성격 검사, 기질 검사, 안 해본 검사가 없을 테니까요.
-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고 자라면서 성격이 변하기 마련이죠. 철수 씨도 심경의 변화가 있지 않으세요?
- 그건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면서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죠.
뜨끔했다.
사실 도하나 찬영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은 원인을 제공했다기보다는 이 사태를 함께 맞이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뜨끔할 수밖에 없다. 지금 두 사람의 앞에 앉은 이 사람은, 냉철한 사람이었다.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자신을 정확히 진단했다. 나이가 많다, 사회 경험이 없고, 지극히 제한적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철수 씨가 이외에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건 또 뭐가 있을까.
- 전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경험을 하고,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고 살아왔습니다. 이제까지 큰 문제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연구소에서 생활은 따분한 적은 있지만 괴로웠던 적은 없었어요.
-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긴 하지만….
도하는 찬영도 한 번 쳐다봤다. 이제 겨우 한 달째 철수 씨를 담당했지만 가장 큰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이제껏 철수 씨를 거쳐간 수많은 연구원들의 노력이 철수 씨의 안온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준 거란 생각이 드니 도하는 연구원들, 특히 이런 혼란이 가득한 상황에도 곁을 쉽게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찬영이 고마웠다.
- 김장만 씨가 왜 찬영 씨한테 그 자리를 맡겼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네요.
도하의 갑작스러운 말에 힘겹게 무거운 머리를 버티고 있던 찬영이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 김장만 씨는 제가 새로 올 연구원과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찬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앞이 번쩍했다.
- 김장만 씨가 그만둘 거라는 건 몰랐지만, 누군가 새로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미리 언질을 줬거든요.
장만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어요. 아마 찬영 씨가 절 쉽게 포기하거나 혼자 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죠.
찬영의 휴대폰에 진동이 붕붕 울리는 것 같았다.
- 저….
찬영이 휴대폰을 꾹 쥐어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김장만 씨가 철수 씨를 만나고 싶어 해요.
참을 수 없었다. 꼭 말해야 했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말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 만나고 싶으신가요?
찬영의 물음에 철수 씨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해갔다. 반가운 것인지, 싫은 것인지, 알아채기 어려웠으나 심경이 복잡하다는 것만큼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찬영은 이제껏 꾹 쥐어 액정에 손자국이 남은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 아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거든요.
도하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한껏 치켜올려 찬영을 봤다. 몰래 연락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하는 생각 반, 그 사람은 왜 이제 와서 철수 씨가 만나고 싶을까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 철수 씨가 연구소를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한 게 좀… 놀랐나 봐요.
도하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철수 씨는 찬영의 얼굴 대신 휴대폰을 쳐다볼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 가능하다면, 빠르게 만나보고 싶기는 합니다. 대신 여러분 다 같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철수 씨가 도하와 찬영을 번갈아 쳐다봤다. 찬영은 철수 씨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켰다. 덩그러니 하나 남은 미리 보기를 눌러 메시지 창을 켰다. 화면을 톡톡 누르는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 언제가 좋으세요?
- 글쎄요. 오늘은 좀 늦은 것 같고, 내일은 그쪽에서 출석하는 날이라 안될 것 같고, 모레는 제가 출석하는 날이네요….
도하가 뺨을 손으로 짚으며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 그냥 오늘 뵙는 건 안될까요?
철수 씨의 제안에 시선은 도하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뭐… 시간 괜찮으시면 전 상관없는데, 소장님 괜찮으시겠어요?
- 네, 뭐. 저야 상관없어요.
찬영이 다시 휴대폰을 톡톡 두드렸다. 진동 소리가 붕붕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출입증 발급하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