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느끼시나요?

by 한유주

-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미 밖으로 쏜살같이 나가버린 찬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장만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일 만났던 내가 알아챘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잖아요.

- 그래서 소장님이 곤란해지셨죠.


철수 씨의 말에 도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곤란하지 않다거나 고생하는 게 아니라고 하기엔 지금 자신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해 거짓말을 한다는 게 뻔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을 거예요.

-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대를 거쳐서도 잘 숨겨지고 있었는데도요?

- 무언가를 숨기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 죄책감을 느끼시나요?


철수 씨의 질문은 짧았지만 도하의 침묵은 길었다. 곧장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 어쩌면 철수 씨가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 수 있어요.


죄책감을 느낀다, 아니다, 말을 하기 어려워 괜히 길게 답을 했다.


- 제가 사회에서 지내는 게 소장님의 죄책감을 더는 데 도움이 될까요?

- 그런 걸 이유로 철수 씨의 인생을 결정해선 안 되겠죠?


도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철수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다가도, 무섭기도 했다. 주름이 간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렵기도 했다. 고개를 숙이고 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려 내려다보는 것 말고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감정을 숨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는데 마음이 그리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철수 씨는 도하의 기색을 살피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꺾어가며 살폈다.


- 철수 씨가 여기에서 지내든, 사회에서 지내든, 제 마음은 비슷한 무게일 거예요. 그건 제 몫이에요. 철수 씨는….


도하는 자신을 살펴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철수 씨의 기색을 알아채고 말을 꺼냈다. 도하에게 덧씌워진 건 도하의 몫이다. 철수 씨는 철수 씨의 몫을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철수 씨는 지금 65년 인생의 일생일대의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 철수 씨는 철수 씨의 삶을 생각해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도하는 결국 철수 씨의 눈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말만큼은 눈을 보고 해 주고 싶었다.

도하에게 죄책감이 덧씌워져 있을지언정, 철수 씨라면 도하의 진심 어린 눈을 알아챌 수 있을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눈빛에 덧씌워진 죄책감을 넘어, 그 뒤에 숨어있는 진심. 지금 당장 도하가 철수 씨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이었다. 인생이 뒤집힐 결정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응원.




찬영의 뒤로 쭈뼛거리며 들어온 장만은 꽤나 멀쩡해 보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얼굴이 까끌해 보인다거나, 조금 수척해졌다거나 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인 것 같은데 장만은 그렇지 않았다. 놀라우리만치 이곳에 출퇴근할 때와 비슷한 용모였다.

단 한 가지, 평소와는 다른 점이 있긴 했다. 이 사무실에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냈을 장만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 온 사람인 것처럼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불안함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찬영은 제 뒤에 서 있는 장만이 영 불편했는지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섰다.


- 오랜만입니다, 장만 씨.


철수 씨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장만은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도 앉지 못하고 방금 열고 들어온 출입문 바로 앞에 서서 바닥만 보고 서 있었다. 발도 떼지 못하고 서 있는 와중에도 흔들리는 눈은 도저히 감춰지지가 않는지 조용히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었다.


- 이쪽으로 앉으세요.


보다 못한 도하가 장만이 서 있는 쪽으로 의자를 살짝 돌려주었다. 장만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의자를 보고 조심스럽게 걸어가 앉았다. 도하는 옆으로 살짝 몸을 밀어 철수 씨와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았다. 찬영도 장만이 의자에 앉는 걸 보고 철수 씨의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마치 철수 씨와 철수 씨의 보호자 두 사람이 장만을 상대하는 것 같은 구도였다.


정작 만나자고 한 사람은 말이 없었다.

답답할 뿐이었다.

장만은 말없이 그저 구두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 왜 그러셨어요?


침묵을 견디는 게 힘에 부친 찬영에게서 조금은 날카롭게 쏘아 나간 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만이 눈을 질끈 감는 게 보일 정도로 쿡, 찌르는 말이었다. 장만은 아픈 티를 낼 수는 없어 그대로 작게 속으로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 앉은 철수 씨는 장만을 쳐다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 미안합니다, 철수 씨. 제 욕심이었나 봐요.


철수 씨에게 건네진 사과. 오랜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말이었다.


- 철수 씨가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장만은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괜히 둘러봤다. 남은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사무실은 넓은 공간이었지만 답답했다.


- 철수 씨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장만은 주먹을 꾹 쥐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전완근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사과는 제가 아니라 여기 두 분께 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철수 씨는 장만의 사과를 받는 대신, 교정을 해 주었다. 사과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철수 씨의 말은 장만이 두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도하는 차분하게 찬영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장만을 보고 있었다. 철수 씨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 저를 걱정해서 벌인 일에 괜한 사람들이 휘말렸으니까요.


철수 씨는 재촉하듯 말을 덧붙였다.


- 두 분께도 미안합니다.


장만이 고개를 숙였다.


- 김장만 씨.


철수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장만을 불렀다.


- 김장만 씨는 잘못이 없어요. 다만, 제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랍니다.

- 철수 씨, 그건….


철수 씨의 말에 놀란 도하가 얼른 끼어들었다.


- 안 되는 겁니까?

-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철수 씨를 보던 장만의 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만은 넘쳐나는 불안을 털어내려는지 다리를 달달 털어대며 부산스럽게 굴고 있었다.


- 제가 원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겁니까?

- 철수 씨….


철수 씨의 길을 잃은 눈빛은 처음이었다. 찬영은 조심스럽게 철수 씨의 손을 끌어다 쥐었다. 철수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푹 수그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혼란을 그대로 분출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만은 급기야는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적막 속에 장만의 눈물이 바닥을 톡톡, 치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릴 뿐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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