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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an 28. 2024

모태신앙은 무엇일까

개신교 모태신앙이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최근 친한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이의 어머님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시지만 본인은 유아세례도 안 받았고 종교는 스스로 원할 때 가지는 것이며 성당을 가더라도 너가 원할 때 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면서 동시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보다는 많이 바뀌었다 해도 여전히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 내지는 트로피나 명품백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렇게까지 오픈 마인드를 가진 분이 계시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부모님에 의해 강요된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시절이 있는 입장에서 부럽기도 해서 묘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내가 어릴 때에도 부모님은 개신교에 미치다 못해 개신교 근본주의 그 자체에 절여진 사람들이었다. 무조건 부모님이 가는 교회만이 맞다고 우겼고 나는 그에 억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더는 내가 이 곳에 있을 수 없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몇 년간 떡밥을 깔다가 대판 개싸움을 하고 개신교를 벗어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집안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대다수인 이 곳에서 정말로 유일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억지로 교회에 끌려가야 했던 어린 시절과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부모님조차 나를 외면하며 교회 사람들 편을 들기에 급급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이런저런 안 좋은 기억과 정신과를 다닌다는 이유로 병력을 까발림당하고 끝까지 교회에서는 숨겼지만 나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혐오발언을 던지는 인간들에 질린 스무 살 이후부터 대략 10년 남짓의 시간 동안 그야말로 강요된 신앙을 갖고 살아야 했다. 1은 알지만 2는 모르는 부모님과 멍청하다못해 사람을 열받게 하는 교회 사람들에 지겨워졌고 나도 참기 싫어졌다. 참을 이유도 없지만 참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온갖 나쁜 말을 들으며 개신교를 벗어났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여전히 나는 지금도 모태신앙에 의심 아닌 의심을 갖고 있다. 모든 모태신앙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겪은 사례 중 모태신앙이면서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경우는 몇 만나지 못했다. 당장 나만 해도 개신교 모태신앙임에도 교회를 때려치고 나와서 다른 종교를 갖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종교는 결국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부모가 무슨 권리로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한단 말인가. 일반적인 부모라면 자식에게 당연히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겠지만 강요된 것은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한다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좋다고 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스럽고. 외력으로 강요된 것은 그나마 있던 순기능마저 없어지게 하니 말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자인 부모가 자식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가르친다. 무슨 의미인지는 어느정도 알겠지만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인 사람들이 더 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걸 괜찮다고 할 수 있는걸까 싶다. 아마 앞으로도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듯 싶다. 강요된 신앙은 인생에서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내가 겪었고 너무 잘 알고 있으니.



 p.s. 어쩌다보니 개신교를 까는듯한 내용이 들어가긴 했지만 개신교를 벗어난 것은 그 교회가 나와 너무나도 맞지 않음과 동시에 여러 혐오가 대놓고 당당하게 판치는 곳에 있고 싶지 않아서다. 성소수자 환대 사목으로 감리교에서 종교재판을 받는 이동환 목사님을 후원하기도 했고 인스타를 팔로해서 후원 관련 글이 올라오면 소액이라도 보내려고 하고 있다. 나는 떠나온 곳이지만 내가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길 원하는 것처럼 다른 성소수자도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킴과 함께 개신교 신자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이런저런 여러 이유로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누군가는 그 가시밭길에서 우리와 연대해주시고 어려움에도 도와주시기에 종교를 떠나서 이를 외면하는 것은 내 양심상 허락할 수 없다. 적어도 그런 분들이 계시는 한 나도 작지만 도움을 보태는 것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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