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괜찮겠지 좋겠지 라고만 생각했건만
예비신자 시절 세례명을 정해서 나의 주보성인은 어떤 성인이고 왜 이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정했는지를 적어내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받은 적이 있다. 대모까지 미리 구해서 시작한 예비신자교리였기에 세례명도 당연히 정한 상태였고 어렵지 않게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5달 뒤에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천주교 예비신자교리는 한국은 기본 6개월이다- 나한테도 세례명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생겼다.
당시 내가 적어낸 세례명은 '딤프나'다. 성 딤프나는 정신질환자의 수호성인이고 나는 정신질환 당사자이기에 나름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쓰는 세례명을 하면 뭔가 다른 사람들하고 겹치는 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특이하고 희귀한 세례명이라 더 좋아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이 특이하고 희귀하다는 것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성당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성당에는 꼭 성물방이라는 곳이 있다. 이름 그대로 성물을 파는 곳인데 규모가 좀 있는 성물방은 성인의 초상화가 그려진 성인패도 팔곤 한다. 그리고 세례받고 한 달 즈음 지나서 성물방을 구경하다가 성인패 중에 내 것도 있겠지 싶은 마음에 열심히 눈을 굴리며 찾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없었다. 작은 성물방도 아니고 명동성당 부근의 나름 큰 성물방이라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래서 세례명이 희귀하면 그것대로 단점이 있다고 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단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내 세례명을 듣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것을 몇 번 겪고나니 이것도 이것대로 단점이 있구나 싶었다. "세례명 맞아요?"부터 시작해서 "어떤 성인이에요?" "축일은 언제에요?" 심지어 "생일이 언제에요?" 라는 질문까지-생일을 물은 것은 생일과 축일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축일은 5월이고 내 생일은 11월이다- 다양한 질문을 들었다. 정신과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해서 없잖아 부담스러운 "왜 세례명을 그거로 했어요?"하는 질문보다 어떻게 보면 더 힘들다.
당연히도 바꿀 수 없고 바꿀 마음도 없지만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런 질문이 돌아오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덜 희귀한 세례명을 했으려나 싶지만 바꿀 수도 없고 바꿀 마음도 없을 뿐더러 다시 예비신자 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적어낼 것이니 이정도는 익숙하게 받아치는 기술을 익혀야겠다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