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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Jan 22. 2024

또다시 대학병원

아니 폐쇄병동은 최후의 수단이라면서요 최후의 수단이라며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정확히는 다니는 정신과를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게 벌써 몇 번째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곱 번째였나 여덟 번째였나. 아무튼 1차급 개인병원부터 3차급 대학병원까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겨우 정착하는가 싶더니 4년이 되어가는 해에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근래에 자해 관련 이슈나 자살 충동에 이것저것 겹쳐져서 혹시 입원 얘기를 꺼내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지만 의사가 입원을 먼저 얘기하는 경우는 잘 없기도 하고 더군다나 이 의사는 폐쇄병동 입원이란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고 항상 말했기에 먼저 그런 말을 꺼내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을 너무나 쉽게 깨고 바로 입원 얘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금전적 상황도 다른 상황도 안 되는 이 마당에 폐쇄병동 입원은 말이야 쉽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면서 그런 말을 꺼낸 것에 화가 났다. 


 이미 시작부터 화가 났는데 대화의 내용이 계속해서 예민한 부분을 건드는 쪽으로 이어졌다. 나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완전히 무시한 예시를 들어서 그런거 싫고 기분나쁘고 불쾌하다고 했더니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식으로 나왔다가 사람들이 내가 정신과를 다닌다는 이유로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싫다고 했더니 내 생각이 배배 꼬였다며 서로 언성 높이다가 나와버렸다. 


 폐쇄병동 입원 얘기는 사실 대충 예상은 했기에-보통의 정신과 전문의라면 그게 지극히도 일반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이니까- 나의 현재 여견을 고려하지 않고 입원 얘기를 꺼낸 것은 기분나쁘지만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정신과 전문의가 하는 일이고 의무니까. 하지만 후자의 건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이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길거리나 퀴퍼 현장에서 혐오를 외치는 언행에 대해 이해하는게 아니라 ㅋㅋㅋㅋㅋ 저거 병신이네ㅋㅋㅋ 멍청이들 개웃겨ㅋㅋㅋㅋ 하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 괜한게 아니다.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해한다고 한들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으니까. 그래서 납작하고 멍청한 혐오에 내가 입을 열어보았자 나만 손해고 나만 기분이 상할 뿐이니 이해가 아니라 웃고 치우기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혐오적 언행을 하는 것이 내가 꼬박꼬박 가야 하는 병원 그것도 정신과 의사가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정신과 특성상 개인적인 얘기 그것도 취약점에 대해 많이 말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거에 대해 아무리 내가 설명을 하고 말을 해도 먹히지 않으면 그건 내가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 앞서 말했듯 혐오에 이해를 하거나 말을 덧붙여보았자 나만 손해고 기분나쁠 뿐이니까.


 문제는 이제 집에서 버스로 30분 반경 내에 갈 수 있는 정신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을 옮기려면 아예 경기도를 벗어나 서울로 가야 하는데 마침 강동성심병원의 lgbtq+센터에 정신과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 대충 알아보고 진료예약을 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설명해야 하는 복잡한 것들 중 하나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싶기도 하고.


 강동성심병원이라니. 전철 타기가 어렵고 전철을 10분만 타도 하루치 에너지가 쭈욱 빠져나가기에 버스만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를 환승하고 환승해서 가면 2시간 남짓이 걸린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그래도 강동성심병원은 본관 3층에 성당이 있으니 일찍 도착하거나 판공성사-대림과 사순시기 때 의무로 보는 고해성사- 보속기도를 하기에는 좋겠네. 그거 때문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나사 빠진 나름의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지.


 지긋지긋한 분당서울대병원을 떠난 뒤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대학병원 외래를 이렇게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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