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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15. 2024

이제는 정착을 해볼까봐

여전히 세상은 위험하고 인간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지만


 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 중에 "나는 인간 안 믿어 인간이 제일 싫어" 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략 초등학교 2학년 남짓부터 가졌던 이 생각 덕분에(?) 미애니 중 스폰지밥에서 징징이가 난 사람이 싫어♬ 하는 노래를 부르는게 상당히 공감되었다. 나 역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너무나도 징그럽고 가장 싫기 때문이다.


 개신교와 교회에 미친 부모님과 교회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상처와 배척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불가지론으로 빠졌고 인간은 신과 진리를 알기에 너무 작고 볼폼없는 존재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종교 저 종교를 찌르고 다녔다. 사이비를 제외하고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알아가기도 했고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있었다. 가톨릭은 마리아를 숭배하는 종교, 불교는 부처와 잡귀신을 숭배하는 종교라는 말을 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듣고 자라왔기에 그게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저런 계기가 되었고 이왕 갈거면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가면 비빌 언덕이 하나라도 있겠지 싶어서 성당을 가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환경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다보니 사람을 불신하고 혐오하며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개신교에 미친 부모님이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지켜주거나 보호해주기는 커녕 지지도 해주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 의해 교회만 알고 살았고 교회 내 인간관계밖에 허락되지 못했는데 그 교회 사람들도 너무나 당연하게 비슷했다. 그런 주변 상황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너무나 핑계스럽고 자기합리화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항상 떠돌아다니는 인생, 정착은 커녕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생활을 하며 내내 경계를 하고 공격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당하니까. 그 쪽은 나한테 좀 물려도 나를 미친 정신병자 취급하며 떠나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당하면 기본적인 생존이 어려워지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조금은 자리를 잡고 정착을 해볼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세상은 위험하고 모든 사람은 경계해야하고 내가 물리기 전에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서인가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은 안전지대를 갈망하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소공동체가 그런 곳임을 근래 어느정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성소수자여도 정신질환자여도 있는 그대로 내 모든 정체성을 드러내고 나와 같은 분들 그리고 우리와 연대해주시는 분들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이제는 나도 늙은건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그럭저럭 방랑자 생활을 버틸만했는데 30대에 접어드니 그것도 쉽지 않아서 안전지대이면 어느정도 정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큼 내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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