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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14. 2024

성탄판공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순시기와 부활 판공성사의 발렌타인데이라니


 재의 수요일이라 성당을 다녀왔다. 경기도에서 명동까지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에 가야지 했음에도 잠깐 고민했지만 마침 예비신자인 친한 동생이 간다길래 같이 다녀왔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간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순시기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판공성사가 있어서 고해성사를 보고 성당에서 발급되는 판공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판공성사 기록이 3년간 연속으로 없으면 냉담교우로 분류되어 교적이 교구청으로 이관되기에 알아서 잘 관리해야 한다.


 명동성당은 판공성사표를 집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보통 지역 본당에서는 집까지 갖다준다는데 명동성당은 그런 것 없다. 아무래도 명동에 교적을 두고 있는 가구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듣기론 명동에 주소지를 둔 가구 수가 500가구 남짓인데 명동성당에 교적이 있는 가구 수는 거의 20000가구 가까이 된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지역도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 같다. 원칙상으로는 교적을 거주지 관할 성당에 두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명동성당에 교적을 둘 수 있고 수도권은 워낙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다보니 용인이나 수원에서도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들으러 온다고. 하기야 당장 나만 보더라도 경기 광주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명동에서 쭉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고 교적까지 두고 있으니까.


 집 근처 성당에 교적을 두면 판공표를 갖다주는게 좋다고 하지만 지금 이 주소지 관할 성당에 교적을 두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지랖 넓고 바닥 좁은 시골의 특성상 최대한 얽히고 싶지 않다. 나는 조용히 내가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살고 싶기에 그 누구의 터치도 간섭도 오지랖도 최대한 받지 않는 성당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당 사람들과 아예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도 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부담없이 밝힐 수 있고 적어도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혐오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고 나는 어쨌든 최소한의 안전선을 지켜야 하니까.




 근처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성당 사무실에 들러 판공표를 챙기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가 18시 미사를 같이 다녀왔다. 혼자여도 어찌되었던 가긴 갔겠지만 이렇게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그것도 괜찮은듯 하다. 이 친구가 세례를 받기 전에 내가 견진을 받아야 대모를 해줄텐데 제 때 내가 교리 신청을 할 수 있을지 교리 기간동안 몸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려나 싶지만 최선을 다해 버텨야지.


 그나저나 판공성사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 월례미사 때 해결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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