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와 부활 판공성사의 발렌타인데이라니
재의 수요일부터 40일간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순시기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판공성사가 있어서 고해성사를 보고 성당에서 발급되는 판공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판공성사 기록이 3년간 연속으로 없으면 냉담교우로 분류되어 교적이 교구청으로 이관되기에 알아서 잘 관리해야 한다.
명동성당은 판공성사표를 집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보통 지역 본당에서는 집까지 갖다준다는데 명동성당은 그런 것 없다. 아무래도 명동에 교적을 두고 있는 가구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듣기론 명동에 주소지를 둔 가구 수가 500가구 남짓인데 명동성당에 교적이 있는 가구 수는 거의 20000가구 가까이 된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지역도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 같다. 원칙상으로는 교적을 거주지 관할 성당에 두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명동성당에 교적을 둘 수 있고 수도권은 워낙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다보니 용인이나 수원에서도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들으러 온다고. 하기야 당장 나만 보더라도 경기 광주에 주소지를 두고 있지만 명동에서 쭉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고 교적까지 두고 있으니까.
집 근처 성당에 교적을 두면 판공표를 갖다주는게 좋다고 하지만 지금 이 주소지 관할 성당에 교적을 두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지랖 넓고 바닥 좁은 시골의 특성상 최대한 얽히고 싶지 않다. 나는 조용히 내가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살고 싶기에 그 누구의 터치도 간섭도 오지랖도 최대한 받지 않는 성당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당 사람들과 아예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도 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부담없이 밝힐 수 있고 적어도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혐오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고 나는 어쨌든 최소한의 안전선을 지켜야 하니까.
근처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성당 사무실에 들러 판공표를 챙기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가 18시 미사를 같이 다녀왔다. 혼자여도 어찌되었던 가긴 갔겠지만 이렇게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그것도 괜찮은듯 하다. 이 친구가 세례를 받기 전에 내가 견진을 받아야 대모를 해줄텐데 제 때 내가 교리 신청을 할 수 있을지 교리 기간동안 몸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려나 싶지만 최선을 다해 버텨야지.
그나저나 판공성사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 월례미사 때 해결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