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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12. 2024

먼 나라 강 건너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그 0.5%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양극성장애. 흔히 일상에서 조울증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우는 이 병은 우울 상태와 조증 상태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과거에는 양극성장애와 우울장애를 기분장애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했지만 이 둘은 원인, 경과, 예후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재는 양극성장애를 독립된 진단 단 범주로 분류하며 우울과 조증이 나타나는 제1형 양극성장애, 우울과 경조증이 나타나는 제2형 양극성장애, 약한 우울과 조증이 교차하는 순환감정장애로 나뉜다. 양극성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형에서 0.4~1.6% 2형에서는 약 0.5%로 추정된다.


 내가 0.5%의 확률에 들어갈거라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통계상 길가다 새똥에 맞을 확률은 1/540 정도라고 한다. 이를 퍼센트로 계산하면 대략 0.18% 남짓이다. 지금껏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길가다 새똥을 맞은 적도 없는데 하필이면 내가 0.5%의 확률에 걸려들었단다. 그것도 아주 운 없게, 너무나도 재수없게.


 살면서 길가다 새똥에 맞을 확률도 그렇게까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인생을 살면서 내가 정신질환에 걸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다. 아마 보통은 그런 생각을 안 할 것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정신질환은 먼 나라 이야기에 정신과는 남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평범하게 학교도 다녔고 교환학생도 다녀왔으며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인생에서 위기는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너무나 갑작스레 들이닥친 양극성장애2형 발병에 거의 모든 것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마치 고장난 시계초침이 움직이는듯 싶다가 제자리에 멈추어 주춤거리는 것처럼 렉걸린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항상 나빴던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해서 또 괜찮았던 것만도 아니었다.


 이 기록은 수없이 깨지고 깨진 인간조각의 모음이자 꼬박꼬박 약을 먹고 병원을 가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이자 낫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망을 품고 무작정 버티는 인생 기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우울과 병증에 대한 셀프비하나 자기연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좀 더 진솔하지만 마냥 불쌍하고 동정받아야 마땅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스스로에 대한 마지막 남은 예의다. 나는 불쌍하거나 동정거리가 아니라 그냥 도움이 필요한 것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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